사라진 등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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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등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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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등잔 옆에서 몽당연필 꾹꾹 눌러가며 숙제를 하노라면, 어머니는 그 옆에서 구멍 뚫린 양말이며 맨드라미색 속옷을 늘어놓고 바느질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둠침침한 등잔살이를 어찌 견뎠을까 싶다가도 공연히 그 때의 일들을 심지 돋우듯 되새기며 아련해질 때가 있다. 숙제를 다 하고 나면 언제나 콧구멍에 시커먼 심지 그을음이 앉았던 어린 날의 등잔살이. 내가 좀더 밝게 하려고 등잔 심지를 길게 빼 놓으면, 석유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는 어머니가 어느 새 심지를 도로 짤막하게 해 놓곤 하던…….

궁벽했던 우리 마을에 처음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똑딱이 단추 같은 스위치를 꾹 누르자 형광등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방안을 밝혔다. 등잔불만 켜 놓고도 어두운 줄 모르고 살다가 전깃불이란 것을 보니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하여 그 순간부터 방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등잔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헛간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모르긴 해도 다른 집들의 등잔도 대부분 이와 같은 까닭으로 방안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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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네 등잔은 재료에 따라 나무, 토기, 사기, 철 등이 있었으나, 근래까지 가장 많이 사용했던 등잔은 역시 사기로 된 것이었다. 한지와 솜 따위의 심지꽂이를 한 등잔이 바로 그것으로, 위에는 심지를 꽂은 뚜껑이, 아래쪽엔 손잡이가 달린 기름 넣는 잔이 한 쌍이었다. 반면 등잔대는 나무로 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등잔대는 크게 등잔받침, 대, 밑받침으로 나뉘었으며, 밑받침은 재떨이의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홈을 파 놓는 경우가 많았다. 본래 우리네 전통적인 등잔은 기름을 담은 접시 모양의 그릇에 달랑 심지를 올려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는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심지를 꽂은 사기 등잔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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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등잔에는 심지가 하나인 외심지를 썼지만, 환하게 불을 밝히기 위해 간혹 쌍심지를 켜기도 하였다. 옛말 가운데 ‘눈에 쌍심지를 켠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어쩐지 요즘 시대에는 ‘쌍심지를 켠다’는 말이 별로 실감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등잔이란 것을 아예 볼 수 없을뿐더러 더더욱 심지에 불을 켜는 모습은 구경도 못해 봤으니,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아울러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조차 요즘 아이들은 이해조차 못할 것이다. 등잔불이 뭔지도 모르는데 등잔 밑인들 알 리 없잖은가.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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