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앞둔 떡마을, 한과마을, 엿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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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앞둔 떡마을, 한과마을, 엿마을


옛날 우리네 어머니께서는 명절날이면 어김없이 떡을 하고, 유과를 만들었다. 조청을 고아 엿도 만들었다. 팥고물이 묻어나는 시루떡과 대추를 넣고 찐 백설기, 콩고물을 묻혀낸 인절미에다 방금 기름에 지져낸 아삭아삭한 유과의 맛은 우리에게 이제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으로 남아 있다.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파는 지금의 떡이며, 한과는 기계와 방부제, 수입쌀과 수입곡물로 만든 탓에 옛날 어머니의 손맛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옛날 손맛을 지켜가는 전통 떡마을과 한과마을, 엿마을이 여기 있다. 양양군 서면 송천리 떡마을과 봉화군 봉화읍 닭실 한과마을, 전남 순천 구산리 엿마을이 바로 그 곳이다.

 

옛날 손맛을 지켜가는 떡장수 부부


송천리 떡마을은 30여 가구 가운데 10여 가구 이상이 우리네 전통 떡을 만들어오고 있다. 송천리를 떡마을로 만든 장본인은 탁영재 씨와 김순덕 씨 부부. 이들 부부가 20여 년째 마을에서 전통적인 방식인 떡메로 쳐서 만든 떡을 내오면서 오늘날 떡마을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처음 떡을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은 부인인 김순덕 씨로부터 나왔다. “우리 떡은 이 안반하구 떡메하구 이래 딱딱 붙으면서 이래 하기 때문에 끈기가 있구 부드러운데, 기계루 하는 거는 쌀알이 차지지를 않구, 똑똑 끊어지니까 쌀이 굳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 떡은 이래 놔 두면 이게 내일 저녁까지 둬두 요대루 그냥 있어요.”



송천 떡마을 탁영재, 김순덕 씨 부부가 메로 인절미를 치고 있다.


아무래도 기계가 편하기는 해도 맛에 있어서는 떡메로 치는 떡을 따라올 수가 없다. 메로 친 떡이 기계로 뺀 떡에 견주어 찰기가 더하기 때문에 냉동을 시켰다가 먹을 경우 20일 정도 넣어놓고 먹어도 굳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기계보다는 메로 치는 것이 손도 많이 가고, 불편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탁씨에 따르면 보통 떡이 많이 나가는 추석과 설, 정월 대보름 때가 되면 하도 메를 쳐서 어깨가 굳을 정도란다. 이들 떡장수 부부가 만드는 떡은 인절미, 송편, 기정, 백설기, 계피떡(바람떡), 옥수수 경단, 영양떡, 찹쌀떡을 비롯해 10여 가지가 넘는다.


오로지 떡메로 쳐서 떡을 낸다


“송편에는 콩두 들어가구, 깨두 들어가구, 밤두 들어가요. 송편은 콩 는 게 젤 맛있어. 찹쌀떡두 이래 쳐가지구 해야 맛있어요. 영양떡은 찹쌀만 이래 갈어가지구는 거기다가 마른 호박 있쥬. 그거 부풀려가지구 넣구, 서리태콩이라구 속 파란 거하고 밤, 대추 넣구 찌면 너머 맛있어.” 여러 떡 가운데 이들 떡장수 부부가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떡은 역시 인절미다. 메로 쳐서 손맛을 내기에는 인절미만한 게 없다 “인절미는 먼처 쌀을 하루 전날 담거놔요. 쌀은 푹 불어야지 떡이 맛있어. 인절미 할 때는 아이밥(애벌밥)이 됐을 때 소금간을 해요. 너머 소금물을 많이 넣으면 질어서 못쓰고, 쪼금 넣으면 또 꼬두밥이 돼서 못 써요. 아이밥이 되구서두 한 15분 정도 더 불을 때 뜸을 들여요. 그거를 인제 안반에 놓구 치는 거쥬”



명절을 앞두고 김순덕 씨가 마루에서 온갖 떡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이들 부부가 떡을 칠 때 보면, 뚝, 딱, 뚝, 딱 박자가 착착 맞는다. 보통 아무것도 넣지 않는 인절미는 10~15분 정도, 쑥이나 취가 들어간 인절미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쳐야 한다. 김씨에 따르면, 콩가루 고물은 맛있기는 해도 빨리 굳으므로 금방 먹을 때만 하고, 오래 두고 먹을 때는 팥고물로 해야 한단다. 사실 떡이라는 것이 손맛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똑같은 쌀을 가지구 똑같은 재료를 써서 해도 어떤 것은 맛있고, 어떤 것은 맛이 없다. 때문에 이들 부부는 지금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450년의 역사, 닭실마을의 한과


양양에 떡마을이 있다면 봉화에는 한과마을이 있다.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 요즘 한창 설날을 앞두고 닭실마을은 한과를 만드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땅모양이 마치 금닭이 계란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의 마을이라고 하여 ‘닭실’이란 이름이 붙은 마을. 안동 권씨 집성촌이기도 한 이 곳 한과의 역사는 무려 45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충신이었던 충재 권벌 선생(1478~1548)이 돌아가시면서 그 젯상에 유과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제사 때 종가에서만 한과를 만들었는데, 10년 전부터는 부녀회관에서 여럿이 모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손계순 씨의 설명이다.


 

한과마을인 닭실마을 안동 권씨 종택 맏며느리 송재규 씨가 유과를 바구니에 담아 대문을 나서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 부녀회관에 들어서자 유과를 튀겨내는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코 끝에 감겨온다. 너댓 개의 기름냄비 곁에는 방금 튀겨낸 입유과(크고 넓적한 유과)들이 납작납작 쌓여 있다. 한쪽에서 튀겨내면 한쪽에선 그것을 받아 물엿을 바르고, 또 다른 쪽에선 옷일 입히듯 유과에 ‘박산’(쌀튀밥가루)을 바른다. “쌀을 담아 놓고 이틀 정도 불거 내서 방앗간에다 빻아와요. 그걸 솥에 넣고 3시간 정도 쪄서 반죽기에 넣고 친 다음, 손으로 한번 더 반죽을 해서 안반에 놓고 눌러가꼬 썰어요. 잔유과(엄지손가락만한 유과)는 잘게, 입유과는 넓게 썰어요. 그걸 이틀 정도 온돌방에 또 말려서 쌀가루에 녹이요. 녹인다는 것은 너머 딱딱하니까 그걸 몰랑몰랑하게 만드는 거죠. 녹인 다음 기름에다 지져내 물엿을 바르고, 박산이나 까만깨, 흰깨를 묻히면 다 끝나는 거죠.” 손씨가 들려준 유과 만드는 과정이다. 


유과에 꽃을 놓다


유과를 만들 때 맨 마지막 과정은 ‘꽃을 놓는 과정’이다. 꽃을 놓는다는 것은 찹쌀튀밥으로 유과에 꽃 모양을 장식해 넣는 것인데, 보기에 좋으라고 하는 것이지만, 이 과정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꽃을 놓을 때는 우선 유과를 놓고 그 위에 엿물을 살짝 묻힌 찹쌀튀밥을 꽃 모양처럼 네 개를 붙인 뒤, 모양 한가운데다 까만 깨 몇 개를 얹거나 대추를 잘게 썰어 얹는다. 꽃 놓는 과정만큼이나 어려운 과정이 ‘반죽 과정’이다. “물을 너무 많이 부어도 안되고, 너무 적게 부어도 안돼요. 적당히 부어야 되는데, 그게 경험 없이는 안되는 거죠.”



찹쌀 튀밥으로 유과에 꽃을 놓고 있다.


약과 또한 유과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 처음에 밀가루와 찹쌀가루, 튀김가루, 계피가루, 생강과 정종, 설탕, 기름 등을 넣고 적당한 물로 반죽을 하는데, 유과와 마찬가지로 반죽기에 넣고 ‘치는 과정’을 거쳐야 약과가 맛있어진다고 한다. 다 쳐낸 반죽은 다시 한번 안반에 놓고 밀어서 만들고 싶은 모양을 찍어낸다. “그 다음에 젓가락으로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기름에 튀겨내요. 그리고는 이제 엿물에 생강도 좀 넣고 거기에 약과를 넣어 이래 저어서 건져내면 되는 거죠.” 약과의 마지막 과정도 꽃을 놓는 과정인데, 유과와는 달리 잣과 대추, 건포도 등으로 꽃모양을 만든다.


닭실마을의 한과가 다른 지역의 한과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 오랜 맛내림 전통에 있지만,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까닭으로 명절이 가까워오면 여러 곳에서 주문이 들어오거나 직접 와서 사 가는 통에 그야말로 닭실마을 아낙들은 눈코 뜰 새가 없어진다. “이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는 거니까 많이 못 빼요.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방부제 넣거나 기계로 돌리는 게 아니니까, 또 여기서는 유과 반죽을 할 때 참기름을 한 되에 한 숟가락 정도 넣어요. 그래야 훨씬 더 많이 일고, 고소해지거든요.” 송재규 씨의 설명이다.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요즘에는 결혼식 때 이바지 음식으로도 닭실 한과를 많이 찾는다.


전통 방식으로 엿을 만든다


전남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는 엿마을이다. 150여 가구 중 몇몇 집을 빼고는 모두 조금씩이나마 엿을 만드는 집이다. 물론 이 가운데 일 삼아 엿을 하는 집만 해도 대략 50여 가구에 이른다. 더군다나 이 곳에서는 아직까지 기계를 전혀 쓰지 않고 처음부터 마지막 과정까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2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마을에 이르자 때마침 들머리쯤에 자리한 조휴한 씨 집에 품앗이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엿을 만들고 있었다. 엿물을 고느라 방고래가 뜨거워진 방안에서는 마을의 여러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두명씩 짝을 이뤄 엿늘이기 작업을 하고 있었고, 마루에서는 늘이기가 끝난 엿을 손가락 굵기로 길게 잡아당긴 뒤 문틈으로 받아내 자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방안에서 엿을 늘여 마루로 내놓으면 마치 새끼줄 늘이듯 엿가락을 빼낸 뒤, 가위로 똑똑 잘라낸다.


부엌에서 엿반죽을 방안으로 들여보내면, 방안에서는 늘이기 좋은 크기로 엿반죽을 떼어내 애벌늘이기 하는 쪽으로 보내고, 이것을 다시 마무리 늘이기 하는 쪽에서 받아 엿늘이기를 끝낸 다음, 방문을 열고 마치 새끼줄 늘이듯 엿가락을 빼 자르기 하는 쪽으로 보낸다. 그러면 자르는 쪽에서 다시 그것을 받아 가위로 똑똑, 잘라낸다. 애당초 엿을 만드는 일은 하루 전날 쌀을 물에 불렸다가 그것을 다시 가마솥에 넣고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짓는 일로 시작된다. 이렇게 쪄낸 고두밥은 다시 끓인 물에 엿기름과 섞어 식혜를 만들고, 삭히고, 체로 건더기를 걸러낸 뒤, 가마솥에 넣고 조청이 될 때까지 달인다.


100번을 잡아당겨야 엿이 된다


조청이 엿이 되기 위해서는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넘칠 때 엿물을 떠서 함지에 퍼담아 따뜻한 방안에 두면 이제 알맞은 엿반죽이 된다. 엿만들기의 절정이라면 아무래도 엿늘이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거무스름했던 엿반죽은 잡아당길수록 하얀 엿으로 변한다. 보통 엿반죽에서 엿이 되기 위해서는 적게는 50회, 많게는 100회 정도 잡아당겨야 한다. 구산리에서는 엿늘이기 작업의 맨 마지막에 늘어진 엿반죽 사이로 통참깨를 넣어 맛을 더한다. “잡아댕길 때 여기다 깨를 넣어야 꼬시고 맛나지요. 이 반죽이 약간 꼬드르르해야 빼기가 좋아. 너머 깡깡하면 안 좋지라. 너머 물컹해도 안 좋고.” 엿늘이기 작업을 하던 문상금 씨의 설명이다. 지역에 따라 엿가락을 자른 뒤 콩고물을 묻히기도 하지만, 구산리에서는 아무것도 묻히지 않은 채로 엿을 내는 편이다. 콩고물을 묻히면 잘 엉기지 않는 장점이 있고, 그냥 내는 엿은 엿 본래의 맛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엿늘이기 작업.


보통 구산리에서는 농사철이 끝나는 시점인 10월부터 3월까지 약 6개월 정도 엿을 내며, 한 집에서 적게는 70~80킬로그램, 많게는 100킬로그램 이상씩 엿을 낸다. 마을 전체로 보면 200가마가 훨씬 넘는 쌀을 사용하는 양이다. 오늘 찾아온 조휴한 씨네도 올해 모두 14가마의 쌀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한 가마에 약 24킬로그램 정도의 엿을 내는 것으로 계산해보면, 한해 약 300킬로그램 이상의 엿을 낸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정도면 마을에서도 무척 많이 내는 양이다. 구산리 엿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다 방부제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엿의 옛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입안에 들어가서도 잘 들러붙지 않고 연해서 이가 약한 어르신들도 즐겨 먹을 수가 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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