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젖먹이는 할머니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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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젖 먹이는 할머니 고양이

 

 

옛 축사고양이 대모가 개울가를 어슬렁거립니다.
새끼들도 없이 혼자서
개울가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개울가에는 커다란 하수도관이 놓여져 있습니다.
하늘은 어둑해져서 조금씩 눈발이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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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관 속 밥 먹는 길고양이 너머로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진눈깨비.
대모를 위해 하수도관 속에 한 움큼 사료를 넣어줍니다.
개울을 헤매던 대모는
나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하수도관을 향해 걸어옵니다.
녀석은 잠시 하수도관에 앉아서 사료를 먹습니다.
바깥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사위는 조용합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앉은 화이트홀.
그저 가슴이 먹먹해지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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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화이트홀. 눈발 날리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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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가 밥 먹는 모습을 뒤로 하고,
길을 달려 돌담집 인근의 급식소로 갑니다.
꼬미와 대모의 새끼인 노랑이 한 마리가
장독대에 앉아서 사료배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새 대모도 밥을 먹다 말고 왔는지
논자락을 걸어 이리로 옵니다.
진눈깨비는 거세게 바람에 휘날리는데,
그 눈발 속을 헤치고 대모가 걸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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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대모가 새끼들이 기다리는 급식소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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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열 마리의 자식들을 거느리고
축사에서 행복하게 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식들 축사가 철거된 이후 뿔뿔이 흩어지고,
더러는 고양이별로 떠나고
이렇게 지금은 대모도 새끼 두 마리와 꼬미를 키우며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본래 처음 대모가 새끼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새끼는 세 마리(노랑이 두 마리에 고등어 한 마리)였으나,
최근에 혹한기가 계속되면서
노랑이 한 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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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집에 앉았다가 눈밭을 걸어가는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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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날리는 논자락에서
대모는 자신이 낳은 두 마리의 새끼와 손주인 꼬미와 함께
들밥을 먹습니다.
진눈깨비를 맞아가며 들밥을 먹습니다.
저녁이 되면서 진눈깨비는 함박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밤새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또 몇 며칠이 지난 어느날입니다.
대모의 손주인 꼬미가 혼자서 먹이원정을 왔습니다.
녀석은 혼자서 들밥을 다 먹고는
눈밭을 바삐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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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을 달려가는 꼬미.

녀석이 도착한 곳은 옛날 축사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밭으로 변해버린 곳입니다.
밭가에는 판자며 비닐과 같은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꼬미가 서둘러 도착한 곳에는
놀랍게도 대모가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꼬미는 앙냥냥 울더니
곧바로 대모 품을 파고듭니다.
설마, 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꼬미는 할머니인 대모의 젖을 빨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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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인 꼬미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할머니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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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는 지금껏 그래왔다는 듯
편안한 자세로 꼬미에게 젖을 물리고 있습니다.
꼬미의 어미인 여리가 고양이별로 떠난 뒤,
할머니 고양이 대모는 이렇게 지금껏 손주인 꼬미를 보살펴왔습니다.
먹이원정을 데려오고, 젖도 먹이고
품안에 안고 잠도 재우면서...
할머니 고양이가 손주에게 젖을 먹이는 이 갸륵한 풍경을 보면서
공연히 나도 눈시울이 젖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길고양이의 세계에도
분명 이런 사랑과 측은지심은 존재합니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 트위터:: @dal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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