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나무는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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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젖는다


                                                                    이준규


그것은 뒤척이며 누워 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간직한 것처럼 누워 있다
그것은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다
그것은 누워 있다
얼마나 소중한가 누워 있는 그것은
그것은 누워 있는 살아 있는 간단한 죽음이다
죽음은 하강하지 않고 오직 상승할 뿐
양장의 청년이 현관에 서 있다
기다림의 전형처럼
그의 시를 흉내낸 그의 시처럼
나는 볼펜과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에 대해 생각할 수 없고
묘사하지 못한다
목운동을 할 것
아령을 한자로 표기한 시를 읽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무언가 부끄러운 모양이고
늙었고 서가에는 책이 많다
네모 선장과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부를 소유한다면
나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보료라는 낱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비가 내린다
겨울 나무 위나 봄 나무 위나
아무 나무 위로 비가 내린다
나는 저 비를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젖겠지

-- 이준규 시집 <흑백>(문지, 20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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