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고가촌 고택 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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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왕곡마을: 전통 고가촌 고택 스테이

 


왕곡마을 기와집 앞마당 툇마루에서 기와집 주인과 체험객이 어울려 맷돌로 두부콩을 갈고 있다.

 

속초에서 간성 쪽으로 이어진 7번 국도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청간정과 삼포를 차례로 지나 풍경이 아름다운 송지호를 만나게 된다. 소나무숲이 울창하다고 하여 송지호라 불리는 이 곳은 겨울에는 고니의 집단 도래지로, 여름이면 맛깔진 재첩잡이로 유명한 곳이다. 자연 호수로서 그 둘레만도 십리가 넘고 주변 경치가 좋아 최근에는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7번 국도를 벗어나 이 경치 좋은 송지호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가면 지척에 수십여 채의 옛 기와집이 즐비하게 들어선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오봉리 왕곡마을이다.


기와집 주인 김애자 씨가 맷돌로 손수 두부콩을 갈고 있다.

 

왕곡마을은 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통가옥보존지구(1988)로 지정된 곳이다. 마을에는 옛빛이 가득한 유서 깊은 문화재로 가득하다. 사실 왕곡마을이 오늘날까지 전통가옥보존지구로 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주변의 지형지세에 도움을 받은 바 크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다 송지호가 도로와 마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어서 실제로 한국전쟁 때에도 폭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가마솥에 콩물을 한참 끓여낸 뒤, 간수 대신 바닷물로 두부를 만든다(위). 왕곡마을의 전통 짚불구이. 생선살이 타지 않고, 짚에서 나는 연기로 훈제 효과까지 있다(아래).

 

최근 여러 차례 일어났던 산불도 용케 마을을 비껴갔다. “6.25 때 그렇게 함포 사격을 하고 기랬는데, 이 마을엔 포탄이 하나두 안 떨어졌어. 비행기가 이래 와서 시찰하러 왔다 가면, 빙 돌다 그냥 돌아가. 그러다 인민군대가 물러갈 때 아군덜이 이 동네 집들 태우고 그랬어. 그 때는 어느 사람이 아군인지, 어떤 사람이 적군인지 몰라요.” 마을에서 처음 만난 남숙정 할머니(78)가 들려준 이야기다.

 

체험객들이 손수 깻잎 등을 따며 저녁 찬거리를 준비한다.

 

왕곡마을은 전통적인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 왕곡마을이 처음 생겨난 것은 600년 전 쯤이며, 마을에는 현재 20여 채가 넘는 전통가옥이 남아 있고, 최근에도 가옥 복원 사업으로 전통가옥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 곳의 초가집과 기와집은 방과 마루, 부엌과 외양간이 한 건물에 붙은 겹집(양통집)에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형태인, 산간지방에서 흔했던 ‘ㄱ’자형, 즉 전형적인 북방식 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마을 앞 개울은 아이들에게 가재잡기 체험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곡마을의 특징은 집안의 숨구멍인 ‘굴뚝’에 있다. 굴뚝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옹기굴뚝과 와편굴뚝인데, 이 마을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기와조각(와편)과 흙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옹기(오지) 항아리를 얹어 굴뚝을 올리는 것이 전통이다. 다양한 굴뚝이 보존돼 있는 덕에 왕곡마을은 ‘굴뚝마을’로도 불리고 있다.

 

왕곡마을의 와편 옹기굴뚝. 왕곡마을은 다양한 굴뚝을 만날 수 있어 '굴뚝마을'로도 불린다.

 

최근에는 왕곡마을에서 소박한 ‘농촌체험’도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고택 스테이. 체험객들은 텃밭에서 저녁에 먹을 상추도 솎아오고, 깻잎도 따고, 고추도 딴다. 날씨가 좋으면 송지호에 나가 재첩을 잡기도 한다. 마을에서 10여 분만 걸어나가면 송지호인데, 호수에 물드는 저녁노을과 수초 사이로 몸을 숨긴 철새들과 그것들을 눈에 담고 석호를 잠시 걷는 것만으로 함께 온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생태체험이 된다. 송지호 주변의 늪에서는 개구리를 만날 수 있고, 석호를 둘러싼 수풀에서는 거미와 여치와 메뚜기를 흔하게 본다.

 

전형적인 북방식 가옥 형태인 ‘ㄱ’자형 초가 양통집.

 

저녁 식사도 체험이 가능하다. 체험객들은 집주인과 함께 재첩국이나 된장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치고, 생선도 굽는다. 특히 이 곳에서의 생선굽기는 ‘짚불구이’라는 전통 방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나온 숯 위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짚을 고루 펴서 올린 다음, 고등어나 삼치 등 생선을 올리고 구우면 생선살이 타지 않고 노릇노릇 구워진다. 도심에서 프라이팬에 생선을 굽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짚불구이가 마냥 신기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도심에서 온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두부만들기 체험이다. 전통 방식의 두부 만들기는 전날 담가 놓은 두부콩을 맷돌에 갈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을의 초가집 추녀에 그물을 친 무당거미.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맷돌 돌리기는 콩 한 되를 갈아내는데도 꾀나 많은 시간과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갈아낸 콩물은 광목자루에 걸러(가마솥에 끓인 뒤 거르기도 한다) 비지와 물을 따로 낸다. 이 걸러낸 콩물을 가마솥에 넣어 끓이는데, 부글부글 끓어넘칠 정도까지 계속해서 불을 땐다. 드디어 콩물이 끓어넘칠 정도가 되면, 아궁이에서 숯을 꺼내고 미리 준비한 바닷물(간수)을 끓는 콩물에 골고루 조금씩, 시차를 두고 뿌려 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콩물이 점차 순두부처럼 엉겨붙는다. 이 상태로 그냥 먹으면 순두부요, 엉겨붙은 순두부를 틀에 담아 물기를 쪽 빼내면 모두부가 되는 것이다.

 

왕곡마을에서 불과 5~10분 거리에 자리한 송지호.

 

저녁을 먹고 튓마루에 나앉으면 마을의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텃밭에서는 어김없이 여치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에는 마을 뒷산에 올라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고, 햇살이 드리운 송지호와 다섯 개의 봉우리에 폭 잠긴 마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왕곡마을의 계곡 상류는 물도 맑고 가재도 흔해서 아이들은 여기서 가재도 잡고, 어른들은 탁족도 할 수 있다. 왕곡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풍경이 아름다운 송지호와 <가을동화> 촬영지로 유명한 화진포 해수욕장이 있으며, 토성면 청간리에는 관동팔경의 으뜸으로 꼽았던 청간정이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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