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제주 최북단 섬, 횡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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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제주 최북단 섬-횡간도


바다에 다녀온 뒤로 그는 좀 이상해졌다 말만 하면 끼룩, 웃다가도 끼룩, 화장실 좀 끼룩, 다녀올게 끼루룩, 말끝마다 끼룩대는 것이었다 밤늦게 찾아간 애인 앞에서도 끼룩, 배고파 끼룩, 자고 싶어 끼룩, 아까부터 왜 그래요 끼룩거리기만 하고, 그러니까 끼룩, 나도 내가 끼룩, 왜 끼룩거리는지 끼룩, 모르겠어 끼끼룩, 어서 병원이나 가봐요 철없는 갈매기 같으니라구, 갈매기라는 말에 끼룩, 시무룩해져서 끼루룩, 도대체 끼룩, 택시를 타고 끼룩, 병원에 가면서도 끼룩, 의사 선생님 끼룩, 아무래도 내가 끼룩거리는 병에 걸렸나봐요 끼룩, 그래요 어디 한번 봅시다, 그러니까 끼룩, 갑자기 내가 끼룩거리기 시작한 거예요 끼루룩, 보세요, 이렇게 끼룩거리며 살순 없잖아요 끼룩, 의사생활 40년만에 끼룩거리는 병은 처음이군요, 여긴 내과고 소화불량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게 자꾸 끼룩거리면 다른 병원에라도 가보시죠, 의사까지 날 끼룩, 무시하다니 끼루룩, 그러니까 내 말은 끼룩, 끼루룩 끼루 끼끼루룩 끼끼룩 끅끅.

- 이용한, <갈매기 증후군>(시집 『안녕, 후두둑 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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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세월 섬을 여행하면서 나는 갈매기 증후군에라도 걸린 듯 자주 끼룩거렸다. 나의 끼룩거리는 병은 향수병도 아니고, 역마도 아니고, 그저 육지와 단절된 어느 섬에서 오래오래 바다를 보고 싶은 일종의 도피증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섬을 여행하는 중에도 섬을 떠도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추자도 신양리 포구의 빈약한 민박집이었다. 작은 통통배를 타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나뭇잎만한 섬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아무리 바닷길을 달려도 섬은 내내 그 자리에 떠 있었다. 가도 가도 갈 수 없는 섬. 섬 여행자에게는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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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배를 타고 추자도로 오면서 나는 추자도 앞에 나란히 떠 있는 두 개의 섬을 보았다. 횡간도와 추포도. 추자도에 내리는 순간부터 나는 그 섬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여객선이 닿지 않는 섬. 일주일에 네 번 행정선이 들어가긴 하지만, 한번 들어가 머물자면 이틀은 기다려야 나올 수 있다. 예초리나 대서리에서 낚싯배를 빌려 타고 가는 방법도 있지만, 10만원쯤은 줘야 한다. 결국 예초리에서 나는 큰맘 먹고 낚싯배를 빌리기로 했다. 꿈에 나온 갈 수 없는 섬이 저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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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에서 뱃길로 겨우 10여 분 거리에 있지만, 횡간도는 결코 쉽게 여행할 수 없는 섬이다. 10여 가구가 고작이고, 한 가구 빼고는 모두 노인들만 사는 섬. 횡간도 사람들은 이 섬을 ‘빗갱이’라 부른다. 섬의 모습이 비껴서 길게 누운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횡간도(橫干島)는 바로 빗갱이를 한자로 옮겨놓은 셈이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최북단 섬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추자도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횡간도이다. 지리적으로는 제주도에 속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전라도에 더 가까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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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까지만 해도 횡간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체 발전기를 돌려 전등을 켜고 TV를 봤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 태양광발전소가 생기면서 24시간 전기를 공급받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시설이 없어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떠서 식수로 사용한다. 도대체 이런 곳에 사람이 어찌 살까 싶다. 나 같으면 외로워서 못살고, 불편해서 못산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불평 없이 잘만 산다. 전기가 없어도, 수도가 없어도, 배가 들어오지 않아도,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냥 그렇게 산다. 사실 불편함이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이곳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은 필경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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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작지만 이곳에도 네댓 명의 해녀가 있고, 추자도처럼 돌미역을 주로 딴다. 선창에서 마을로 올라가다 만난 김옥단 할머니도 해녀였다. 지금도 막 바닷가에서 톳을 따 널고 오는 길이란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오래된 흙집이었고, 부엌은 옛날 형태를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내가 사진을 찍자고 하자 할머니는 이런 묵은 것을 뭣 하러 찍느냐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횡간도의 또 다른 집에서 만난 박선애 할머니도 톳을 베고 오는 길이었는데, 나를 보자 뜬금없이 손짓을 하며 밥을 먹고 가란다. 이게 외지인이 거의 찾지 않는 횡간도의 인심이고, 외로운 할머니의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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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해야 2시간, 나는 횡간도에 머물렀다. 사실 2시간이면 횡간도의 구석구석을 다 돌고도 남는 시간이다. 남는 시간에 나는 해벽에 올라 한참이나 바다에 넋을 놓았다. 횡간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림엽서가 따로 없다. 상추자, 하추자가 한눈에 들어오고, 추자도 앞바다에 뜬 어선과 물빛 고운 바다의 풍경도 횡간도 바위 절벽을 따라 내내 이어진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보기 위해 횡간도에 왔는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적막. 안개 속에 움츠린 섬들. 안개가 걷힌 바다. 횡간도와 이웃한 추포도에도 사람이 살지만, 단 한 사람이 본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지금은 10여 채가 넘는 빈 집에 흑염소가 들어앉아 주인 행세를 하는 실정이다. 이 집을 가도 저 집을 가도 안방에서 불쑥, 부엌에서 불쑥 흑염소만 튀어나온다.

* 물고기 여인숙::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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