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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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 거야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우리 동네에 내린 눈은 예년과 비슷하게 내렸지만,

추운 날씨 탓에 2월 말까지 잔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겨울 길고양이에게 추위와 눈은 일상이었습니다.

눈이 와서 쌓인 눈을 바라보는 재미.

지난 가을 어미를 잃고 애타게 울던

꼬리 짧은 고양이 꼬미는 언젠가 블로그에서 밝혔듯이

할머니 고양이 대모에게 의탁해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대모 또한 지난 여름에 새끼를 낳아

처음에는 세 마리를 데리고 먹이원정을 다녔으나,

겨울이 시작되고 얼마 뒤 한 마리를 고양이별로 보내야 했습니다.

장독대에 올라앉은 재미(위). 늘 단짝처럼 붙어다니는 재미와 꼬미(아래).

그렇게 자식이 떠난 자리를 꼬미가 대신했습니다.

대모는 자식만큼 꼬미를 보살폈고,

꼬미는 엄마처럼 할머니를 따랐습니다.

대모의 새끼인 재미(노랑이)와 소미(고등어, 소심한 성격이라서 소미)도

꼬미를 친형제처럼 대했습니다.

"발이 시려워요!"

함께 장난도 치고, 함께 먹이원정도 가고, 함께 눈밭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꼬미는 소미보다는 재미와 어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장난을 칠 때도 유독 꼬미와 재미가 어울리고

소미는 소심하게 뒤에서 구경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장독대에 앉아 있는, 그리고 그 앞의 은행나무를 긁어보는 소미.

어디를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꼬미는 대모가 아니면 꼭 재미와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꼬미와 소미의 사이가 안좋은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옛 축사 앞집 한뎃부엌 아궁이에서

꼬미와 재미, 소미가 사이좋게 어울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소심하다구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또 얼마 전에는 논자락 짚더미에서

세 마리가 뒤엉켜 노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겨울이 한창일 무렵 대모네 식구는 옛 축사자리로 다시 이사를 왔습니다.

옛 축사자리는 이제 텃밭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철망 담장 아래엔 옛날에 쓰던 집기와 농기구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대모네 식구가 이사한 새 보금자리입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앉아서 봄을 기다려요."

녀석들은 높이 쌓아놓은 모종포트 위에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경운기 짐칸에 들어가 낮잠을 자곤 합니다.

재미와 소미, 꼬미에겐 이곳이 낯선 공간이겠지만,

대모에겐 그리움과 아픔이 동시에 서린 추억의 장소입니다.

축사가 사라진 자리에 밭이 들어서고

오래전 떠났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돌담집 장독대는 대모네 식구들의 쉼터.

모르긴 해도 11마리의 대가족이 올망졸망 모여 살던

그 옛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겠지요?

대모는 겨울이 깊어지고 눈이 여러 번 내리면서

아마도 급식소에서 먼 영역의 둥지를 떠나야 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폭설이 내리면 푹푹 빠지는 눈밭을 한참이나 걸어와야 급식소에 올 수 있었으므로

그 원정길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눈밭에서 옹기종기 사료를 먹는 녀석들(위). 대모와 소미(아래).

반면 옛 축사자리는 급식소에서 100여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으니

급식차 엔진소리만 듣고도 금세 찾아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래저래 끝날것 같지 않았던 겨울은

그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식을 기다리는 대모와 소미(위). 옛 축사자리에 모인 온 가족(아래).

몇 번 더 눈이 내리고 추위가 닥칠지 모르지만,

엄연히 봄은 코앞까지 와 있습니다.

겨우내 녀석들을 보면서 속으로 나는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 거야!” 하면서 영화제목같은 대사를 되뇌곤 했는데,

기원처럼 녀석들은 훌륭하게 이 겨울을 견뎠습니다.

참으로 대견합니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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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www.kkolzzi.com BlogIcon 꼴찌PD 2011.03.02 11: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느낌있는 사진과 글 구경하고 갑니다. 부럽습니다.

  3. Favicon of http://yalove66.tistory.com BlogIcon 왕비2 2011.03.02 12: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감동
    잘 읽고갑니다...사람들도 동물들도 봄이 언능 왔음 좋겠어요~

  4. nameh 2011.03.02 12:29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정말 대견하고 고마워요..

    소미는 강한 인상이 딱 엄마네요..ㅎㅎ

  5. 보노짱 2011.03.02 13:24 address edit & del reply

    혹독한 겨울 잘 났구나~ 장하다 욘석들!

    짠하고 대견하네요 ^^

  6. 또웅이 2011.03.02 13:48 address edit & del reply

    대모는 볼 때마다 너무 좋아요. 잘 있으니 다행이지만 오늘은 다시 쌀쌀하네요.
    꼬미도 대모랑 잘 있으니 다행이고 재미와 소미도 정겹네요.
    이렇게 또 커가고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7. 미니 2011.03.02 14:00 address edit & del reply

    따뜻한 봄은 좋지만.. 봄은 이른바 아깽이 대란이 오는 철이라...
    벌써 짝짓느라 우왜엥 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저러다 또 아가들 태어나 길 위에서 살아남을까 싶어 걱정걱정..

  8. 소풍나온 냥 2011.03.02 14:15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올겨울은 너무추웠어요 ㅠㅠ
    애들이 대견하네요

  9. 2011.03.02 14:3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10. jukitten 2011.03.02 14:36 address edit & del reply

    제가 사는 동네보다
    이곳의 길냥이들을 매일 보다보니 정들어 버렸네요
    무럭이의 완전 팬이구요
    (제발 아프지말고 사람들한테 괴롭힘 당하지말고
    수명까지 잘 지내주었으면 합니다
    무슨일 있으면 당장 달려갈겁니다)
    특히 대모네만 나오면 가슴이 아립니다
    사람들 피하지 않고 안심하고 지낼 거처 없을까요?
    무럭이 남매랑, 대모네 장소만 확보되면
    냥씨들 집은 제가 마련해 보겠는데...
    달리님! 방법 없나여?

  11. 현복맘 2011.03.02 15:15 address edit & del reply

    이번 꽃샘추위만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니깐 그때가지 잘 참고 잘 견디길 바랍니다...

  12. 고양이의꿈 2011.03.02 15:58 address edit & del reply

    혹시 달리님 무대인사도 하시나요? ㅎㅎㅎ 기왕 고양이들도 무대인사 오면 좋을텐데 불가능하겠져;^^

  13. Favicon of https://redtop.tistory.com BlogIcon 더공 2011.03.02 16:0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겨울이었는데 그래도 잘 버텨주었네요.
    우리 동네 길냥이들은 7마리 중에 5마리가 올 겨울을 끝으로 보이질 않네요...

  14. 2011.03.02 17:55 address edit & del reply

    에고 우리삼실 주변에도 꼬리짤린 턱시도가 있는데 밥을 1년가까이줘도 저만보면 도망은 잘안가도 털을 어찌나 곤두세우는지.....노랑이 흰둥이도있었는데 로드킬을 당한건지 오지않네요~ㅜㅜ

  15. 유스티나 2011.03.02 21:53 address edit & del reply

    아이 예뻐라~ 꼬미재미소미~ 이름도 이쁘고 넘넘 귀여워요. 글구 대모..진짜 장하다는..^^

  16. Favicon of http://movie2.tistory.com BlogIcon 밍키언니 2011.03.02 23:27 address edit & del reply

    에구에구.. 이뻐라..
    녀석들이 겨울나느라.. 고생한 흔적이 보이네요. 마음은 아프지만..
    그래도 잘 살아준.. 녀석들 기특합니다.
    빨리 따뜻한 봄이.. 와야할텐데요.
    겨울은 사람이나 녀석들이나.. 지내기 녹록치않은.. 계절이네요.

  17. 중곡동 2011.03.02 23:58 address edit & del reply

    가슴 뭉클합니다
    이 힘들고 잔인한 겨울을 잘 이겨내고 살아남아 준 게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냥이들은 오래 있어주기만 해도 그게 사료 주는 사람에 대한 보답이 되고도 남습니다

  18. 냥냥 2011.03.04 09:36 address edit & del reply

    대모를 볼 땐 항상 든든함을 느낍니다.
    한 집안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저렇듯이요.
    그저 모습이 있어주는 것 만으로 모든 게 다 괜찮다
    힘들어도 이길 수 있단 생각을 가지게해요.
    꼬미를 받아준 대모도 넘 고맙고 꼬미와 허물없이 지내준
    재미와 소미도 넘 고맙습니다.
    사진 올려주신 구름님도 넘 감사해요.. ㅎㅎ

  19. 장홍석 2011.03.05 00:05 address edit & del reply

    이 겨울을 건너는 모습에 앞으로 다음 겨울까지 명랑할 냥이들의 모습에 즐겁습니다.

  20. 박지영 2011.03.08 05:14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0^
    저는 완소.밀.타로 라는 이쁜 한국고냥씨들을 키우거든요~ ^______^
    어제 '명랑하라 고양이' 를 우연히 보게되어 집에까지 모시고 와버렸네요^-^
    정말이지 최고 감동이에요..ㅠㅠ
    난... 바람이가 살아주길 바랬는데ㅠㅠ
    전 어제부터 이용한님이 완전완전 두근거리고 좋은거 있죠^-^ㅋㅋㅋㅋ
    팬이 되버렸습니다^-^
    '안녕,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를 먼저 못봤다는게 너무 속상해요ㅠㅠ
    그래서 오늘은 점심시간에 서점부터 갈라구요^-^
    그리고 너무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멋진, 사랑스런, 아픈, 감동적인,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전부 볼수있게 책으로 써주신거 완전 감사드립니다^-^

  21. BlogIcon 정지희 2014.08.19 21:30 address edit & del reply

    고양이코에 코코아가루 뭍었네요^^ 귀여운 고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