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재발견: 남도의 눈부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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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재발견: 남도의 눈부신 가을


진도의 상징인 진돗개.


해남 지나 진도대교를 넘어갈 때 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울돌목(명량해협)의 물결과 파도가 세월의 저편에서 실어온 물소리. 그 옛날의 전라우수영에서 백의종군한 이순신도 13척의 배를 포구에 매어놓고 울돌목의 거친 물소리에 귀를 열어놓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고, 물러날 곳이 없었으므로 물러서지 않고 승리했다. 이순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지켜낸 명량해협을 나는 이렇게 편히 차를 타고 건넌다.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 속의 진도대교(위)와 한밤중 녹진전망대에서 바라본 진도대교의 야경(아래).


간간 물소리를 듣고, 비릿한 해풍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녹진전망대까지 올라 시름없이 그 옛날의 바다를 본다. 생과 사를 넘나들던 길고 우묵한 울돌목의 바다. 진도대교를 따라가는 18번 국도는 정확하게 진도의 한가운데를 종으로 가로지른다. 이쪽 끝이 진도대교이고, 저쪽 끝이 팽목항이다. 그러나 진도의 진면목은 18번 국도를 벗어나 자잘하게 뻗어 있는 길들과 그 길 끝에서 만나는 마을과 해안과 갯벌에 존재한다.


눈부신 갯벌 위에서 노니는 달랑게.


가령 남도국악원 앞의 귀성리와 죽림리로 넘어가는 해안 절경이라든가 용장리 길가에 나앉은 천덕꾸러기 선돌이라든가 벽파마을의 무너진 흙집을 만나는 일은 운림산방이나 세방낙조를 구경하는 것에 비길 바가 아니다. 솔직히 나에게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회동 바다보다 송정리 삼거리 100년이 넘었다는 <만정상회>가 더 눈길이 간다. 낡은 간판을 달고 길 아래 눌러앉은 만정상회는 내게 외롭고 지친 근대의 풍경을 흑백사진처럼 보여주었다.


진도 읍내에서 팽목항으로 이어진 도로변의 가을 황금 들판.


18번 국도의 끝인 팽목의 지척에는 그 옛날 수군의 근거지가 되었던 남도석성이 자리해 있다. 진도군 서남쪽 임회면 남동리에 자리한 남도석성은 전체적으로 타원형을 띠고 있는데, 성의 전체 둘레는 600미터가 넘는다. 애당초 이 석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하며, 고려 원종 때 삼별초의 배중손이 여몽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이 성을 쌓았다는 말도 있다. 현재 이 곳에는 20여 가구의 주민이 오랜 옛날부터 성안 생활을 해오고 있다.


남도국악원에서 귀성리와 죽림리로 넘어가는 해안도로 풍경.


“일제 띠만 히도 여기 125가구 살았소. 지끔은 서울로 다 가뿔고 읎소. 큰차가 들어가덜 못허니께, 농사 짓기도 힘들지. 여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여.” 마을에서 만난 김성남 노인의 말이다. 남도석성을 휘돌아 흐르는 개울에는 2기의 옛 홍교도 남아 있다. 동쪽에 있는 것이 단홍교, 서쪽에 있는 것이 쌍홍교로, 마을길을 넓히고 개울에 다리를 새로 놓으면서 옛멋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홍교 자체는 여전히 옛 ‘무지개 다리’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코스모스가 핀 남도 석성 성벽가 풍경(위)과 뒷산에서 내려다본 남도석성 전경(아래).


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성벽에 직접 올라 한 바퀴 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북쪽 산에 올라 성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마을 앞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그만이다. 진도에는 해안 일주도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바다 쪽으로 나간 옹색한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겨우겨우 해안을 한 바퀴 돌아볼 수는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 왼쪽(동쪽)으로 가면 벽파항, 오산리, 회동, 금갑리, 송정리를 차례로 만날 수 있고, 오른쪽(서쪽)으로 가면 군내 저수지와 소포리, 세방낙조 전망대로 간신히 길은 이어진다.


방금 갯벌에서 채취해온 굴을 까서 내놓은 굴회(위). 햇살이 반짝이는 한낮 바다의 어부(아래).


바다를 막아서 제방(나리방조제)을 쌓은 군내 저수지는 언제부턴가 숨겨진 철새 도래지가 되었는데, 겨울이면 수십 마리 고니가 날아와 진도에서는 이 곳을 ‘백조의 호수’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백조’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백조(白鳥)는 그저 흰새일 뿐인데다 일본식 명칭이고, 엄연히 ‘고니’라는 어여쁜 우리 이름이 있다. 군내 저수지를 지나 지산면에서 만나는 소포리는 진도에서 이름난 소리마을이다.


진도에서 조도 쪽으로 바라본 하늘(위)과 갈매기떼(아래).


소포리 마을회관은 이른바 <소포리 노래방>으로 불리는데, 말 그대로 이 곳은 소포리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곳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 도심의 노래방 시설을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이 곳에서는 여느 노래방처럼 기계를 틀어놓고 노래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음악이고, 생춤이다. 어지간한 소포리 사람들은 소리 한 대목쯤 다 불러제낄줄 안다. 그들이 부르는 육자배기와 남도잡가는 막 건져온 굴회처럼 맛깔지고, 시원하다.


소포리에서 40년 넘게 북춤을 춰온 김내식 씨. 걸군농악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몇 순배 노래가 돌고 흥타령이 나올 때쯤이면, 사람들은 저절로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그예 일어나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래방에선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소포리에서는 진도 특유의 농악인 ‘걸군농악’을 100여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데, 다른 곳과 달리 북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곳의 북춤은 양손으로 북을 치는 게 특징이고, 힘이 넘치고 투박한 소리가 매력이다.


송정 삼거리 100년 넘은 <만정상회>(위)와 진도 읍내 5일장에 나앉은 좌판의 노인들(아래).


이 마을에서 40년 넘게 북춤을 춰왔다는 김내식 씨(68)가 양손으로는 북을 치고, 다리와 어깨로는 춤을 추고,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자유분방한 북춤을 펼치자 홍복동 노인(76)은 50년 동안 해온 상모돌리기를 작정하고 선보인다.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마을 아낙들과 할머니들은 흥겨운 진도아리랑 합창으로 노래방 분위기를 장악해버린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노래방 노래소리는 잠잠해지고, 밖에서는 한바탕 술판이 벌어진다. 여기서 진도의 특산주 홍주가 빠질 리 없다.


진도의 홍주 명인 허화자 노인이 부엌에서 홍주를 내리고 있다.


홍주는 40도를 웃도는 술이지만, 뒤끝이 깨끗하고 구수하며, 약간 쌉사름한 맛이 돈다. 입안에 잔자누룩한 잔맛이 오래 도는 것도 홍주의 특징이다. 홍주는 소주를 내릴 때 지초(해독, 이뇨 효과)라는 약초뿌리를 사용하는데, 고조리(고소리, 소줏고리)를 통과한 술이 지초를 거쳐 방울방울 술통으로 떨어지면서 술의 빛깔은 붉은색을 띠게 된다. 이 때 지초의 성분도 함께 뒤섞인다. 홍주의 쌉싸름한 맛은 거기에서 오는 것이다.


겨울로 접어들면 진도의 군내 저수지는 겨울 진객 고니떼가 찾아와 진을 친다.


소포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진도 읍내에 산다는 허화자 노인(77)을 찾았다. 허씨는 진도에서 가장 유명한 홍주 명인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 때마침 할머니는 부엌에서 술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부뚜막에 고조리를 얹어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옛날 방식 그대로 말이다. 할머니는 구경 온 나에게 맛좀 보아 달라며 다 익은 홍주도 한 사발 내왔다. 오랜 손맛이 밴 구수하고도 알싸한 맛이었다.

잔자누룩한 진도의 가을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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