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냥이가 엄마에게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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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냥이가 요즘 엄마에게 배우는 것들



 

엄마는 늘 내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란다.

자동차보다 치킨집 미친 개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란다.

사람이 우리에게 관대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그들이 선심을 베풀 땐 다 이유가 있지.



 

그들은 우리가 한밤중에 우는 것도 재수없어 하고,

집앞에 쓰레기 봉투가 뜯겨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를 의심한단다.

그러니 사람에게 매달리는 건 도로에 뛰어드는 것보다 위험한 짓이야.

어차피 삶이란 단독자로 살아가는 거다.

너도 곧 독립을 하게 될 거고,

그러면 이제 너만의 영역을 구축해야 해.

영토가 아니라 영역이란 걸 명심해.



 

영토의 개념은 부동산 투기에 눈 먼 인간들의 개념이니까.

우리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 따위는 주장하지 않아.

그건 아무래도 좋다구.

다만 중요한 건 생존이야. 살아남는 거.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의는 죽을 때쯤 생각해도 충분해.

세상에 지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건 인간들 뿐이야.

봐! 그렇게 잘난 새끼들이 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망쳐놓았어.

이게 그들이 말하는 좋은 세상이냐."



 

하긴 나로서는 아직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말만은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단독자로 살아간다는 거,

그것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엄마만큼 나이가 들어야 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형제 무리를 벗어나 먼곳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한곳에 머물러 산다는 건 참 따분한 일이니까요.

앉아서 졸고, 세수하고, 장난치고 하는 거

그게 다 지루함을 잊기 위한 행동입니다.

물론 아직은 너무 멀리 가는 건 위험합니다.

거긴 내 영역이 아니니까요.



 

겨울은 춥고 깁니다.

결정적으로 겨울은 배 고픈 계절입니다.

나같은 길고양이에겐 더더욱.

눈보라가 치고, 칼바람이 불면

컨네이너 박스 아래 몸을 피했다가

짧은 햇살이라도 비추면 겨우 밖으로 나옵니다.



 

하필이면 혹독한 겨울에 태어나

이토록 추운 세상을 건너갑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엄마가 얘기한 못된 사람만 있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염려해 개사료 한 그릇을 밖에 내놓는 세탁소 아줌마!

고맙습니다.



 

이따금 탕슉에다 국물 낸 멸치에다 통조림도 갖다 주는

사진 찍는 아저씨는 뭐 사진 찍어가는 걸로 됐다 치고,

어쩌다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들이

귀엽다며 나한테 300원짜리 소시지 사다 준 것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나는 쓰레기 봉투 뜯다가

사람들에게 혼나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순간,

길고양이의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법이죠.

나도 그쯤은 압니다.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아득합니다.



 

엄마는 이런 말도 합니다.

"앞에 있는 적보다 무서운 건 뒤에 있는 적이란다.

삶은 복잡하지만, 생존은 단순한 거야.

위험이 닥치면 도망치는 거지.

맞서 싸우겠다고 나서는 정의파들은 언제나 피해를 입는 법이다.

피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그건 대대로 약한 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지.



 

이길 수 없는 싸움은 물러서는 게 좋아.

그건 비굴한 게 아니야.

나는 맨손이고, 저쪽은 총을 들었거든.

물론 총든 녀석도 언젠가는 총에 맞게 되겠지만.

내 말은 공연히 나설 필요 없다는 거야.

나서서 아무리 악다구니쳐도 내 입만 아프지.



 

현실에선 권선징악이 통할 리가 없어.

현실에선 도리어 악이 승리할 때가 더 많지.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선이란,

위선일 때가 많아.

그들은 권력과 돈과 미모가 선이라고 말하거든.

우리같은 노숙자는 그저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 해.

그게 곧 불로장생하는 세상의 이치거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직 어려서 그 말뜻을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한번씩은 뒤를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야 내가 얼마만큼 왔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이렇게 둥지를 떠나 눈밭이며 골목을 걸어보니

한결 상쾌합니다.

바람은 아직 차고 매섭지만,

내일은 좀더 먼곳까지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Trackback 0 And Comment 12
  1. 오드리햅번 2008.02.13 18:16 address edit & del reply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길고양이는 어떻하나요..

    잠시 다녀갑니다.

  2. 2008.02.13 19:38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s://egrim.tistory.com BlogIcon 이그림 2008.02.13 22: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으아~~ 섹쉬한 저 눈!!
    어쩜 저리도 눈이 아쁠까염..
    첫번의 섹쉬하게 유혹하는 눈
    아저씨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결의에찬 추냥이의 얼굴..
    쥑인다.. ^^

  4. 2008.02.13 22:15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8.02.14 14:17 address edit & del reply

    동화작가 다운 구성입니다.
    고양이 이갸기 참 재미있어요.

  6. 에구.. 2008.02.20 20:13 address edit & del reply

    고양이 사진보다 글에 더 눈이 가네요^^.. 잘보고가요..

  7. 여행자 2008.02.20 23:45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길고양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같네요.
    이제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우리 길고양이들도 조금은 살 만해지겠지요.

  8. Perfect World 2008.02.21 06:52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한 동물 계속 지켜보는거 좋아라 하는데 ^^!! 말못하는 무언가와 눈빛으로만 대화할수있다는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으니깐요 ㅎㅎㅎㅎ

  9. 랑이 2008.02.21 15:11 address edit & del reply

    이뻐요^^*

  10. 다섯번째달 2008.02.24 14:51 address edit & del reply

    글들이 참 좋아서 한참 되읽고 갑니다 :-)

  11. 느루야 2008.02.26 13:45 address edit & del reply

    언젠가 죽게되면 궁금했던걸 모두 알수있겠지요

  12. 천랑 2009.02.26 12:07 address edit & del reply

    새포스트가 안올라오는 날은 예전거 다시 보는데요~ 볼때마다 새롭고 감회가 달라요~
    우리 추냥이 잘살고 있을런지~ 저 예쁜 아가한테 해꼬지 하는 사람들은 설마..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