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구름 위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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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구름 위의 산책

티베트는 ‘세계의 지붕’이고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아주 오랜 옛날 티베트의 지층은 가장 깊은 바닷속이었다.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티베트는 환생했고, 환생지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환생할 것을 믿는다.

해저가 고원이 된 것처럼
언젠가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티베트가 꿈꾸는 세상이 될 거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다만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중국의 야욕중국의 무력이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비행기 창문을 통해 비치는
티베트의 하늘세상과 구름세상을 만났다.
길고 긴 구름의 세계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이 감도는 하늘세계는
서로가 어울리고 버무려져
신비롭고 신성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마치 구름 위를 산책하는 것처럼 아찔했다.
내 앞에서 구름은 깃발처럼 펄럭였다.
산은 산대로 출렁거렸고, 물은 물대로 가랑이졌다.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고 과분했다.

‘꿈같은 세계’가 거기 있었다.
어쩌면 정말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천연하고 무구한 지구의 모습.
중국의 지배와 억압만 없다면 그곳은 ‘순진한 극락’과도 같았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을
그들은 동경하지 않았다.

지속된 중국의 간섭과 개발의 상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땅과 삶과 종교의 유대관계는 여전히 견고하고 끈끈했다.
그것은 그들의 암울하고 불행한 정치현실과 사회적 환경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번 생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삶은 끊임없이 윤회하는 것이고,
죽음을 건너면 또 다른 생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복된 미래를 위해 아프고 부진한 현실을 견디는 것이다.

당신은 정말 티베트를 보았는가, 묻는다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게 내 대답이다.
내가 받아적은 것들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고,
어쩌면 왜곡일 수도 있는 ‘눈에 보이는 풍경들’에 불과하다.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의 실체는
흐릿하고 희박한 내 의식 속에서만 깜박거릴 뿐이다.
마치 하늘에서 본 구름세상처럼,
구름 위에서 본 하늘세상처럼
이것과 저것의 경계는 환생을 믿는 자들의 차안과 피안의 경계처럼 불분명하다.

이 불분명만큼은 너무도 명료한 것이었다.
이것이 구름세상인가 아니면 하늘세상인가?
그것은 지층의 세계와 어떻게 다른가?
때때로 구름 위로 만년설 봉우리는 우뚝 솟아서
구름이 저 아래 빙하 골짜기에서 사납게 회오리쳤다.

그리고 더 아래 아득한 곳에
사람이 걸어가고 야크가 풀을 뜯는 하늘이 있었다.
그렇다. 그들의 하늘은 땅 위에 있고,
신은 그곳에 무성하게 거주한다.

그렇게도 신이 많은데, 왜 그들은 티베트를 저주하는가?
‘저주’라는 단어는 나약한 자들의 변명일 따름이다.
그것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의 현실인 것이다.
그들은 이 암울과 고통 속에서도 신을 탓할 생각이 없다.
그들의 저주와 고통은 애당초 중국이 강제로 가져온 것이기에....

돌아보면 까마득하다.
때때로 나는 내가 티베트를 여행했다는 사실조차 아득하다.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안개가 되었다가
구름처럼 흩어지고, 구름처럼 되모인다.
나는 조그맣게 입을 모아 ‘티베트’하고 발음해 본다.
갑자기 그리움이 사무친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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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지음 | 넥서스BOOKS 펴냄
'차마고도'의 은밀함과 순수함에 빠지다! 바람과 구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 위의 시인 이용한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10여 년 전부터 출근하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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