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금지된 성역, 오거스틴 수도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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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금지된 성역, 오거스틴 수도원에 가다



세계대전 당시 천정 벽화가 불에 탄 오거스틴 수도원의 도서관.


벨기에 헨트 외곽의 한산하고 적막한 거리에

오거스틴(Augustijn,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이 있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원이지만,

이제껏 미사를 보는 성당(경당)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던 곳이다.

그러므로 700년 동안 이곳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700년 닫혀 있던 수도원의 빗장을 열다.


애당초 수도원이라는 곳이 수도생활을 위한 공간이므로

예부터 수도원은 일반인의 출입은 물론

수도사들조차 바깥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왔다.

지금도 벨기에에는 수도사(수사 신부)가 바깥 출입을 할 수 없는 봉쇄수도원도 꽤 여럿 남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도원은 이제

수도사의 출입만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원에서 바라본 오거스틴 수도원 전경.


내가 오거스틴 수도원을 방문한 까닭은

사실 수도원 맥주를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해마다 주류 감식가들이 뽑는 맥주 랭킹에서

언제나 1위 자리를 차지하는 '트라피스트 베스트벨레테레'(Trappist Westveleteren)가

바로 식스투스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이고,

10위 안에 드는 맥주 가운데 상당수가 벨기에의 수도원 맥주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사가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을 펼쳐보고 있다(위). 오거스틴 라벨이 붙은 맥주를 시음하는 수도사(아래).


벨기에의 오거스틴 맥주도 바로 수도원 맥주로써

지금은 사실상 맥주 공장에 비법과 라벨을 넘겨 생산하고 있다.

과거 대부분의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맥주를 만들어 팔아

그것으로 수도 생활을 하고, 수도원을 운영했다.


수도사의 유해를 안치하는 수도원의 지하묘지, 카타콤.


오거스틴 수도원에서 만난 한 수도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마시는 물이 좋지 않아 물 대신 맥주를 마셔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맥주는 식수 대용으로도 마셨지만,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

영양을 공급하던 음료이기도 했습니다.”



수도원 시설에서 경당으로 내려가는 복도.


결정적으로 수도원 맥주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휩쓸던 흑사병과 세계 1, 2차대전 때문이다.

당시 오염된 물 대신 수도원에서 일반인에게 맥주를 나눠 줌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것이다. 

이 때부터 수도원 맥주는 ‘생명의 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거스틴 수도원의 미사 성당(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르간이 정면으로 보인다)과 천정 돔.


어쨌든 지금은 오거스틴 수도원에서 맥주를 생산하지 않는다.

나를 안내한 수도사는 짤막하게 이곳의 맥주 역사를 설명한 다음

수도원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인 지하 묘지로 안내했다.

수도사의 유해를 안장하는 ‘카타콤’이다.

비상시나 만일의 경우 이 카타콤은 지하 비밀통로로도 이용된다.



수도원의 스테인드 글라스.


실제로 오거스틴 수도원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번은 수도원에 불을 질러 그 화기가

수도원의 오래된 벽화와 천정 그림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지금도 100년이 넘은 책들만 보관하고 있다는 도서관에는

당시에 녹아내린 천정 그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창틀에 비친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자.


현재 오거스틴 수도원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오르간이 성당 내부에 남아 있으며,

화려하고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도 건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때 이곳은 수도사들이 바깥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수도사(100여 명)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는데,

이들 수도사들 중에는 한국을 방문한 수도사들도 여럿 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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