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꼭 가봐야 할 상해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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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꼭 가봐야 할 상하이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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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김구 선생 집무실.

상하이 마당루 한 켠에 자리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생각보다 훨씬 초라하게 들어앉은 임시정부 건물 옆에는 ‘명품 가방 선물’이라고 쓴 한글 간판이 한국 관광객을 호객하고 있다. 이른바 짝퉁 가게이지만, 임시정부 전시관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한국 관광객의 임시정부 관람은 두 가지 경우이다. 한 가지는 여행사의 여행 코스에 따라 단지 단체여행객들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고는 훌쩍 떠나버리는 경우이고, 또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물어물어 여기까지 찾아와 15위안을 내고 갸륵하게 전시관까지 차근차근 관람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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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직원 일동 사진. 가운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계시고, 양쪽 가에 두 명의 여성 직원도 자리해 있다.

그러나 슬픈 현실은 이 두 경우조차 외면하는 경우이다. 심지어 나는 주변에서 이런 소리까지 들었다. “아니 상하이에 구경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까지 가서 시간낭비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다는 말조차 고루한 설교일 것이며, 내가 뭐라고 해봐야 그에게 나는 편협한 민족주의자로 비쳐질 게 뻔하다. 하긴 얼마 전 MB 정권은 8.15 광복절 행사를 ‘건국 60주년 경축행사’로 이름을 바꿔 치루는 반역사적 사건도 서슴치 않았다. MB 정부조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함으로써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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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거와 관련된 자료들.

한나라당 또한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기 위한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으며,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들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임시정부의 법통보다는 이승만 정권을 대한민국의 출발로 삼으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있어 왔다. 이들의 주장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중국 내에서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과거 일제시대와 맞섰던 독립운동조차 무시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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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와 각종 독립운동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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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상하이 임시정부는 일제에 맞서 외롭고 의롭게 투쟁했다. 현재 상하이 임시정부 전시관에는 당시의 독립운동활동과 임시정부 직원들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꽤 많이 전시돼 있다. 그 옛날의 오래된 태극기 휘장을 두른 입구를 지나 2층으로 오르면 맨 처음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 나타난다. 집무실 책상에서 김구 선생은 금방이라도 일어나 악수를 청할 것만 같다. 전시실에는 안창호 선생의 자취와 윤봉길 의사의 흔적 또한 손때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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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의 친필(위)과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와 관련된 자료를 둘러보는 사람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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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과거의 주역들은 신념에 차 있었고, 분명했다. 그것은 조국의 해방이었지만, 해방은 오히려 그들의 분명한 신념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남북을 오가며 끝까지 같이 가자고 외쳤던 김구 선생은 끝끝내 일제가 아닌 동포의 총탄을 받고 쓰러졌다. 전시실에 앉아 있는 선생의 밀랍인형은 그의 고뇌를 담아내기엔 너무 초라하고 안쓰럽다.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맨 처음 지금의 자리가 아닌 공산당 성지인 일대회지와 카페 거리로 유명한 신톈디 거리 인근에서 상징적인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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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 관리 사무소.

떠도는 가난한 임시정부가 자금이 풍부할 리 없었으니, 더러는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고, 더러는 감시를 피해 도망다녔다. 7년여 간을 여기저기 떠돌던 임시정부는 1926년 결국 지금의 자리로 옮겨앉았지만, 여기에서도 그리 오래는 있을 수가 없었다. 1932년 5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몇몇 여행책에는 의거를 사건이라 적어놓았다, 일본인이 쓴 여행책인가?)로 임시정부는 일제에 주 감시대상으로 떠올랐고, 결국 상하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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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전시관 참관권.

임시정부는 지금의 마당루(과거 보경리 4호)에서 7년간 독립운동과 망명정부 활동을 했다. 상하이에서 한 장소에 가장 오래 눌러앉아 활동한 곳 또한 이 곳이며, 가장 열정적 활동을 벌인 곳도 이 곳이다. 당시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곳은 지금의 루쉰공원 쪽(과거의 홍구공원)인데, 뒤늦게 초라한 한옥 기념관(매정, 메이팅)이 세워져 그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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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 바로 옆에 자리한 이른바 짝퉁 명품 가방 가게.

전시실에는 당시 임시정부 활동을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직원일동 사진도 걸려 있다. 거기에는 2명의 여성 직원도 보인다. 오래된, 빛바랜 사진 한 장. 전시관을 찾은 사람들은 그저 한바퀴 훌쩍 돌아보고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사진 속의 인물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독립운동과 망명정부활동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려는 세력이 있는 한, 그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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