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너머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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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너머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돌담집을 떠나 폐차장으로 영역을 옮겼던

가만이가 최근에 다시 돌담집에 종종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가만이가 영역을 옮긴 폐차장은

노을이와 무럭이네 3남매가 사는 영역에서 가까운데다

노을이는 이 폐차장까지도 자신의 영역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어서

가만이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만이는 영역을 옮기긴 했으되,

옮긴 영역이 아직까지는 그다지 공고한 편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좀 떼어주고 양보하면서 살아도 될것 같은데,

고양이의 세계는 또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가만이는 툭하면 폐차장에서 쫓겨나 정처없이 떠돌곤 했다.

그러다 다시 최근에야 옛 영역인 돌담집을 찾아온 것이다.

녀석이 몇 달 만에 처음 돌담집을 찾아온 날은

때마침 대모와 꼬미, 대모의 두 아이들이 논자락에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가만이가 슬금슬금 논자락에 나타나자

대모가 먼저 고개를 들어 알은체를 한다.

꼬미도 함께 살던 사이라 냥냥거리며 인사를 한다.

하지만 대모네 두 아이들은

왕언니뻘인 가만이를 처음 보는지

보자마자 털을 바짝 세우곤는 앙칼진 경계음을 날린다.

가만이도 어린 두 동생을 처음 대하는지

함께 야릉거리다가 장독대로 대피해버린다.

노랑이 녀석 하난는 기어이 장독대로 대피한 가만이를 뒤쫓아

장독대 밑에서 또 앙칼지게 운다.

그러자 가만이는 주춤주춤 꽁무니를 빼

예전에 자주 오르던 돌담에 올라 주변을 살핀다.

멀쩡하던 하늘에선 다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함박눈을

가만이는 돌담에 올라 바라본다.

함박눈 속의 고양이.

“뭔 눈이 이리도 많이 오냐!”

야속한 눈으로 바라보는 눈.

그러다 눈보라가 들이닥치자 녀석은

돌담 아래로 내려와 잠시 눈을 피한다.

내가 좀더 가까이 다가가 녀석에게 렌즈를 들이대자

녀석은 흠칫 놀라 다시 돌담으로 뛰어오른다.

옛날 같았으면 1미터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았을 녀석이

내가 멀찌감치 다가서는데도 놀라서 도망을 친다.

확실히 녀석이 돌담집을 떠난 데에는

‘뭔가’ 수상한 사건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나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을 리가 없다.

녀석은 나를 피해 결국에는 지붕으로 올라간다.

지붕에 올라서도 눈치를 보는 녀석.

급기야 녀석은 지붕 틈새로 몸을 숨긴다.

아랑곳없이 눈은 푸짐하게 퍼부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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