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물고기와의 첫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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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 고양이는 오늘도 영업중

 

얼마 전 모로코의 항구도시 탕헤르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알려져 있듯 모로코는 고양이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지브롤터 해협에 면해 있는 탕헤르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항구에 나온 낚시꾼마다 적게는 서너 마리, 많게는 십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에워싼 풍경. 알고 보니 이곳의 낚시꾼들은 하나같이 자잘한 물고기는 모두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과 고양이가 어울린 행복한 풍경. 마냥 부러웠던 풍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탕헤르에서나 만날 법한 풍경을 욕지도 목과마을에서 만났다.(욕지도 고양이에 대해서는 <흐리고 가끔 고양이> 책에도 세 편에 걸쳐 실려 있다.)

 

선착장 낚시터 고양이에게 커다란 물고기를 권하는 낚시꾼.

 

목과마을 선착장에서 뻗어나간 방파제는 낚시 포인트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낚시꾼의 마음을 낚을 줄 아는 두 마리 고양이의 영업소이기도 하다. 얼룩이와 검은 고양이. 둘의 영업 방식은 완전히 달라서 얼룩이가 대놓고 손을 벌리는 반면 검은 고양이는 은밀하게 낚시꾼의 미끼통을 뒤지곤 한다. 대인관계 또한 얼룩이가 좀 더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고, 검은 고양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편이다. 실제로 얼룩이는 처음 보는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안기고, 목덜미를 들어 올려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녀석은 사진기를 들이대자 다짜고짜 다가와서는 렌즈에 스윽, 침을 발라놓고 천연덕스럽게 딴청을 부렸다. 반면 검은 고양이는 나와 늘 일정거리 이상을 유지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고양이, 물고기와의 날카로운 첫키스.

 

수시로 낚시꾼이 오가는 방파제가 집이고 영역인 고양이. 하루 종일 낚시꾼 주위를 맴돌며, 그들이 던져주는 물고기와 미끼용 새우를 먹고 살아가는 고양이. 낚시꾼이 잡고기 하나라도 던져주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는 고양이. 방파제에서 낚시꾼을 상대로 영업한 게 꽤 오래되었다는 듯 낚시꾼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제법 자연스러운 고양이. 얼룩이는 아예 낚시꾼 옆에서 무장해제하고 낮잠까지 곤히 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낚시꾼이 얼룩이에게 ‘야옹아!’ 하며 커다란 물고기를 들고 다가왔다. 설마 저 큰 물고기를 주려는 건 아니겠지? 그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커다란 물고기를 얼룩이 앞에 내려놓았다.

 

 

 

 

거의 고양이만한 물고기를 받아든 얼룩이는 몇 번이나 냄새 맡고 뽀뽀를 하더니 슬슬 꽁무니를 뺐다. 물고기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자 주눅이 들었는지, 아니면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는지, 녀석은 뒤로 멀찍이 물러나 입맛만 다셨다. 그건 마치 방파제에서 영업을 시작한 후로 저렇게 큰 물고기는 처음이라는 눈치였다. 결국 보다 못한 낚시꾼이 짐을 꾸리다 말고 ‘줘도 못 먹냐’ 하면서 물고기를 챙겨갔다. 보는 내가 다 아까워서 무릎을 쳤다. 한동안 후회 막급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얼룩이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돈 건 또 다른 낚시꾼 때문이다. 방파제 끝에서 낚시를 하던 아저씨가 자리를 뜨면서 손바닥만한 물고기 두 마리를 던져준 것이다. 검은 고양이와 얼룩이에게 각각 한 마리씩.

 

 

두 녀석은 번개처럼 물고기를 물고 방파제 은신처로 사라졌다. 이후 녀석들은 해가 넘어갈 때까지 은신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두 녀석은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단골로 보이는 한 낚시꾼은 웨이터에게 인사를 건네듯 고양이에게 아는 체를 했다. 검은 고양이도 손님을 안다는 듯 야옹거렸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아는 사이를 조심해야 하는 법. 단골이 나타나자 검은 고양이의 거동이 수상해졌다. 흘끔흘끔 낚시꾼의 눈치를 살피더니 은밀하게 미끼통 앞으로 걸어가는 거였다. 녀석은 정확히 미끼용 새우를 노리고 있었다. 이 방면에선 베테랑이라는 듯 녀석은 익숙하게 미끼통에 머리를 집어넣고 한참이나 새우 맛을 봤다.

 

 

 

저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아니나 다를까. 어느 새 낚시꾼이 다가와 호통을 치며 발을 굴렀다. 그제야 녀석은 고개를 들고 민망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딴에는 몰래 먹는다는 것이 보는 이에겐 노골적으로 훔쳐 먹는 꼴이 되었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거다. 그래도 낚시꾼은 단골이라고 관대했다. 미끼를 훔쳐 먹어도 발을 구르고 호통을 한번 치는 것에 그쳤으니. 저런 관대함이 두 마리의 고양이를 이곳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만일 낚시꾼이 같은 이유로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해코지를 했다면 녀석들이 이렇게 여기서 영업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게 참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낚시꾼이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고, 그 중에는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몹쓸 짓을 일삼는 낚시꾼도 더러 있었을 텐데. 혹시 목과마을의 너그러운 풍경이 사람들을 관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방파제 고양이들만의 특별한 영업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바다는 맘껏 푸르고 봄볕은 저리 내리쬐는데, 두 마리 고양이는 오늘도 방파제에 나와 영업을 한다.

물고기 주세요. 새우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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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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