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서 버젓이 젖먹이는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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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떼기는 너무 힘들어!"


오늘도 텃밭 공터에 그냥이네 식구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어미냥은 푹신하게 깔린 은행잎 위에 앉아 졸고
네 마리의 아기냥들은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텃밭 구석구석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탐사하다가
더러 서로 뒤엉켜 장난 아닌 심한 결투 장난도 친다.
그런데 한참을 저희들끼리 어울려 놀던 까만코 녀석이
갑자기 어미냥에게로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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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냥 그냥이가 내 바로 앞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녀석은 어미냥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회는 이 때다 싶어 무방비 상태인 어미냥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러더니 아예 고개를 파묻고 젖을 빨기 시작한다.
방심한 어미냥이 깜짝 놀라 졸음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까만코 녀석이 젖을 물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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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놀던 막내 까만코가 졸고 있는 어미냥을 급습, 가슴을 파고들어 젖을 빨기 시작한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얼룩이도 부리나케 어미냥을 향해 달려온다.
그러더니 역시 가슴을 파고들어 젖을 빨기 시작한다.
두 녀석이 어미냥에게로 달려가자
맏이인 코점이 녀석도 헐레벌떡 어미냥에게로 달려간다.
하지만 맏이답게 의젓하게 녀석은 동생들이 젖을 빠는 모습만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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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까만코가 젖을 물자 멀리서 지켜보던 얼룩이도 다가와 어미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젖을 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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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 아기냥 가운데 겁이 가장 많은 겁냥이는
내가 젖을 먹는 아기냥들과 불과 3~4미터 앞에 앉아 있자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멀리서 입맛만 다시고 있다.
사실 이 녀석들은 태어난 지 두달 반이 지났으니,
젖을 떼도 진작에 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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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인 코점이는 그래도 맏이답게 동생들이 젖을 빠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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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미냥은 한달도 안돼 젖을 떼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길고양이는 1~2개월 사이에 젖을 뗀다.
하지만 그냥이는 모성애가 강한 건지, 마음이 약한 건지 아직까지
이렇게
젖을 떼지 못하고 있다.
1개월령 때와 달리 요즘 아기냥들은 이도 자라고 몸집도 커져서
젖을 빨 때마다 그냥이는 아픔을 참느라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
오늘도 까만코와 얼룩이가 젖을 빠는 동안
아픔을 참아내는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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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물리기가 너무 아파 새끼들을 뿌리치고 자리를 옮겨보지만, 두 녀석은 다시금 필사적으로 어미품을 파고든다.

한참을 그러고 젖을 먹이던 그냥이가 이내 참을 수 없었는지
가슴에서 두 녀석을 밀쳐내고 일어나 결국 자리를 옮겨버린다.
하지만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는 듯
두 녀석은 필사적으로 어미냥을 쫓아가 다시금 가슴을 파고든다.
체념한 듯 그냥이는 옮긴 자리에서 두 녀석에게 고스란히
가슴을 내어주고 만다.
어미냥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인상을 찌푸리면서 참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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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생이 젖 먹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코점이가 입맛을 다시고 있다(위). 인내의 한계를 느낀 어미냥이 두 녀석을 뿌리치고 도망가고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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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도 인내의 한계를 느꼈는지 끝내는 두 녀석을 뿌리치고
내가 있는 자리 1미터 앞까지 다가온다.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야 새끼들이 더 이상 근접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어쨌든 어미냥이 나에게 바짝 다가오자
두 아기냥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뒤에서만 젖을 더 달라고 냥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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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미냥 그냥이는 내 앞 1미터 앞까지 피신을 와 민망한 줄도 모르고 아픈 젖꼭지를 들여다본다.

도리어 어미냥은 내 앞이 피난처라 여겼는지 방금 아기냥들이 빨던 젖을
버젓이 내놓고 들여다본다.
젖꼭지가 아픈지 민망함도 잊은 채 그냥이는 내 앞에서 연신
가슴의 아픈 부위를 혀로 핥고 있다.
그건 마치 “젖떼기는 너무 힘들어!” 하고 내게 하소연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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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녀석을 뿌리친 뒤에도 한참이나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냥이.

사실 길고양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어미냥이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냥이는 내가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는지
개의치 않고 젖을 먹이곤 한다.
그냥이가 젖을 먹이는 장면을 본 것이 이번이 세 번째다.
더구나 오늘은 아예 3미터 정도 앞에서 버젓이 젖을 먹이는 거였다.
얼마 전 외출이와 연립댁(얌이 멍이의 어미)이 젖을 먹이는 것도 보았지만,
그건 5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경우다.
여하튼 오늘 그냥이는 젖떼기의 어려움을 내게 보여주었고,
길고양이 어미로 산다는 것의 괴로움도 함께 보여주었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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