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으로 떠나는 죽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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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깔 좋고 솜씨 좋은 담양죽물마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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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봉서리 대숲의 산책로.

옛날 담양의 한 선비가 대숲에 갓을 벗어놓고 잠깐 볼일을 보고 돌아서보니 갓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다. 흔히 비가 한번 오고 나면, 죽순은 하룻밤새 무려 60센티미터나 자란다(45일이면 키가 다 커버린다)고 한다. 그야말로 우후죽순이란 말이 실감난다. 누구나 알다시피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며, 죽물의 고향이다. 사실 우리네 옛 조상들은 대나무로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초롱이나 등, 등잔대, 발, 상, 죽부인, 베개, 부채, 구덕, 지팡이, 도시락, 조리, 바구니, 그릇, 소쿠리와 채반, 키, 삿갓, 참빗, 반짇고리, 바작, 삼태기, 물레, 용수(술 거를 때 쓰임), 활, 화살통, 통발(쑤기), 대금, 단소, 피리, 심지어 굴뚝까지도 대나무를 원통 모양으로 엮어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옛날에는 대나무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본디 대나무는 중국 하남 지방이 원산지로 지구상에 약 3200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호남과 영남 지방이 주산지이고 서해안 지방은 충남 태안반도까지, 동해안 지방은 강원도 고성까지가 분포 한계선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솜대, 왕대, 맹종죽, 오죽, 갓대, 조릿대 등 약 70여 종이 있는데, 현재 담양의 죽물박물관 죽종장에는 이 중 64종의 대나무를 볼 수 있다. 담양 일대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이유는, 이 곳이 온대 남부에 속해 연평균 기온이 섭씨 12도를 유지하며, 연평균 강수량도 1000mm 내외로 대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담양에서 나는 대나무는 그 단단함과 탄력성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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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으로 인해 곳곳에서 대나무숲을 볼 수가 있다.

담양에 죽공예 장인 1천명 넘어

이 같은 환경 덕택으로 현재 담양에는 죽공예품을 생산하지 않는 마을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죽세공예에 종사하는 장인만도 1000여 명이 훨씬 넘고, 생산되는 죽공예품 종류도 7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롭고도 화려한 기술로 손꼽히는 것은 낙죽과 채상이다. 낙죽이란 횟대나 담뱃대, 참빗 등의 대나무 겉면을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온갖 무늬를 그려넣는 것을 일컫는다. 옛날에는 질화로에 숯불을 피워 놓고 인두를 달구었으나 지금은 전기인두를 사용한다. 낙죽이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 밑그림에서부터 세밀한 그림의 명암이나 농담까지도 인두의 온도 조절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려운 기술이 낙죽이므로, 낙죽을 선보이는 장인(낙죽장) 또한 드물 수밖에 없다. 낙죽장의 마지막 기능보유자였던 담양의 국양문 씨가 수년 전 세상을 떠난 뒤로 낙죽장은 금성면에 사는 조운창 씨가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낙죽 제품은 품이 많이 들어 비쌀 수밖에 없는 탓에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낙죽보다는 조각 죽제품에 더 매달려 산다."낙죽으로 하면 횟대 그림만 꼬바기 이틀이 걸려뿐게, 또 낙죽이 비싸니까 해 놔도 잘 안 팔려요. 그래 이래 조각을 주로 헙니다요. 내가 벌써 21년째요. 조각도 낙죽도 첨엔 어깨 너머로 배와 부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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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읍 향교리의 참빗장 고행주 씨가 만든 참빗을 빗고 있는 할머니.

채상은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갠 뒤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여 바구니나 반짇고리 등을 짜 만드는 것을 일컫는데, 고리를 짜는 것과 방법은 비슷하지만 색깔과 무늬를 넣어 짜야 하므로 손이 많이 가고 제작도 까다로운 편이다. 이렇게 채상을 하는 사람을 일러 채상장이라 하며, 담양에서는 서한규 씨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 봉산면 기곡리 구암마을에서는 죽렴장(竹簾匠)을 만날 수가 있다. 박성춘 씨가 바로 그인데, 평생을 그는 죽렴을 만드는데 바쳤다. 죽렴이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뒤 그것을 엮어 해가림을 하는 대발을 말한다. 보통 대발은 2~3년생 왕죽과 분죽으로 만드는데, 왕죽이 좀더 태깔이 좋게 난다고 한다.

대발을 엮을 때는 명주실이 많이 쓰이며, 발에 거북 모양의 문양을 넣거나 무병장수를 기리는 문자를 넣어 그 멋을 더한다. 대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대를 채취하여 음지에서 말린 뒤, 발의 크기에 맞춰 대를 자르고, 이어 쪽살내기와 마디훑기, 잔살내기, 조름질을 거쳐 엮음질로 마무리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정은 조름질이라고 한다. 조름질이란 가늘게 쪼갠 발살을 조름쇠의 작은 구멍으로 빼내 더 잘고 둥글게 만드는 과정인데, 더 잘게 나온 발일수록 상품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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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베러 온 한 인부가 쓸모 있는 대나무를 찾고 있다.

향교리는 참빗, 객사리는 죽부인

한편 담양읍 향교리에는 참빗장 고행주 씨를 만날 수 있다. 참빗은 왕죽으로 만들며, 매기용 재료는 때죽나무나 먹감나무를 쓴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이런 참빗이 한두 개씩은 다 있었다. 이나 서캐를 잡는데는 발이 촘촘한 참빗이 최고였고, 쪽진 머리를 빗을 때에도 참빗만한 게 없었다. 그러나 이가 사라지고, 비녀가 사라지면서 참빗도 덩달아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향교리에 추억의 참빗을 만드는 참빗장이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참빗장이 있는 향교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객사리와 더불어 담양에서도 알아주는 죽물마을로 통하는데, 웬만한 집에서는 죽제품 한두 가지씩은 다 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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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읍 객사리에 사는 죽부인 장인 김성수 씨가 방금 만든 죽부인을 들어보이고 있다.

향교리에 참빗장 고행주 씨가 있다면, 개울 건너 객사리에는 죽부인을 만드는 김성수 씨가 있다. 김씨는 전통 그대로의 죽부인을 전통 그대로의 방식으로 만들어오고 있다. 그가 처음 죽제품 만들기에 나선 것은 50년 전이라고 한다. 워낙에 손재주가 좋아서 그는 대나무로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십 몇 년 전부터는 죽부인 하나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정성으로 담양에서는 죽부인 하면 김성수 씨를 꼽게 되었다. 그가 만드는 죽부인은 매끈하고 탄탄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에 따르면 재료가 되는 분죽 고르기에서부터 공을 들이기 때문이란다. “대도 이래 매끈하고 크고 빤듯한 놈만 써요. 또 죽부인을 맨드는 대는 길어야 해. 이것을 갖다가 짜개고 다듬어서 6~7미터씩 6개를 만들어. 그걸 가지고 죽부인을 맨들어. 이게 젤로 힘든 거는 마무리야. 이래 빳빳하게 삐쳐나온 대를 찔러넣어 오므려야 하는데, 그게 기술이거든. 다른 사람은 한두 개 찔러넣으니까 능글능글한데, 나는 서너 개씩을 찔러넣으니까 짱짱하지.” 그가 사는 객사리는 죽공예단지는 물론이거니와 죽제품을 파는 가게도 너댓 개에 이르러 담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죽물마을에 속한다.

월산면 용흥리에도 국승환 씨가 40년째 죽부인을 만들며 살고 있다. 그가 만드는 죽부인 역시 주변에서 튼튼하고 깔끔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는 그 비결이 대다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만져보면 시중의 제품은 좀 꺼끌꺼끌한데, 이것은 매끈매끈해요. 또 마무리된 부분이 보이지 않고, 처음과 끝이 일정할 뿐만 아니라 구멍이 촘촘해요.” 그에 따르면 죽부인 한 개를 만드는 데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대나무는 분죽을 주로 쓰는데, 그 역시 마지막 마무리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표나지 않도록 말끔하게 뒷처리를 해야 보기도 좋고 만지는 느낌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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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죽물마을인 향교리와 객사리를 끼고 자리한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

본래 죽부인은 고려시대 성리학자인 이곡이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절개 있는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죽부인전>이란 가전체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절개 있는 부인이기 때문일까. 예부터 이 죽부인은 아버지가 사용하던 것을 자식이나 다른 사람이 껴안을 수가 없었다. 또 겨울철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부모가 잠 자는 방에 보관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불에 태워주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싸게 파는 중국산을 사서 속는 경우가 많다. 중국산은 국내산에 비해 절반 이상 싸게 팔지만, 그만큼 품질이 뒤떨어진다.

비단 죽부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채나 소쿠리, 대자리까지 중국산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담양의 죽제품 수요도 날로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수요가 예전 같지 않으니, 생산 또한 예전 같지 않아 죽물시장도 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담양군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죽세공예진흥단지를 운영하며, 단지 안에 죽물박물관과 판매장, 죽종장 등을 두어 죽물산업 활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요즘 사람들의 외면 앞에 전통 죽물은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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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들기 시작한 담양의 아침 대나무밭 풍경.

* 담양의 주요 죽물마을들

죽물 종류

죽물 마을

참빗

담양읍 향교리

바구니

담양읍 백동리, 오계리, 무정면 봉안리, 오룡리, 동산리

대자리

담양읍 객사리, 향교리, 무정면 오룡리, 수북면 대방리

말석(석작)

담양읍 삼다리, 가산리, 양각리, 월산면 화방리

죽부인

담양읍 객사리, 양각리

채반

용면 장찬리

찻상

담양읍 양각리

부채

담양읍 객사리, 만성리

광주리

담양읍 오계리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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