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여행 어디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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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여행 어디로 갈까: 대보름 당산제/풍어제 여행 추천 5


숭례문 화재사건 이후 우리 문화재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언론이나 인터넷 매체의 관심은 ‘이슈’와 ‘까십’에 불과한 휘발성 관심이다. 이슈가 끝나면 금세 나 몰라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중과 네티즌의 관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소엔 전혀 관심도 없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야 너도나도 문화전문가 흉내를 낸다. 심지어 신문기자들은 즉흥적인 화제성 기사를 막무가내로 쏟아낸다. 진작에 좀 그렇게들 하시지 참.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유형의 문화재가 아닌 무형문화재나 중요민속문화 등은 찬밥 신세다. 유럽의 인류학과 학생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 ‘위도 띠뱃놀이’를 아느냐고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렇게 요즘 문화재에 목청을 높이고 계신 언론계에 물어봐도 상당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게 우리 문화의 현실이다. 외국에서조차 최고로 치는 우리 문화를 정작 우리는 우리의 안방에서 찬밥 취급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위도 띠뱃놀이’나 ‘연평도 풍어제’, ‘제주 칠머리당굿’, ‘남해안 별신굿’ 등의 풍어제가 충분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만한 대단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수백년 이상 전통의 맥을 이어온 지역의 당산제들도 국가지정 문화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마을 축제들은 대부분 정월 대보름에 열린다. 한해의 시작이 설날이라면 대보름은 농경과 어업의 시작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설날보다 추석보다도 대보름 축제가 훨씬 성대하게 열렸다. 과거 우리네 조상들은 마을마다 이런 당산제와 풍어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고, 주민들의 화목과 단합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일제시대 때 미신이라는 이유로 각 고을의 당산제와 풍어제를 없애버렸고, 유신시대 새마을운동을 빌미로 또 한번 일제가 벌였던 ‘문화말살정책’에 다름아닌 미신타파정책을 벌이면서 다시 명맥을 이어오던 마을 축제의 숨결을 끊어놓았다. 그럼에도 아직 이 땅에는 옛 당산제와 풍어제의 원형을 목숨처럼 지켜온 소중한 마을들이 있다. 그 눈물겹고 아름다운...


500년 내력의 부안 돌모산 당산제



돌모산 당산제는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는데, 그 첫 순서는 용줄꼬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동네 당산제는 역사가 500년이 넘었어요. 17대째 내려오고 있는 당산제요. 여기 용줄은 다른 데보다 굵어서 그 전에는 장정이 못들 정도였어요. 이게 처음에는 세 가닥을 꼬아서 다시 합쳐요. 당산제 당일날 아침 9시가 넘으면 이 세 가닥 용줄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일부터 당산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당산제 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최영호 씨의 설명이다.




돌모산 당산제의 절정은 용줄돌기다. 마을 사람들이 다 달라붙어도 모자라 바깥에서 구경 온 구경꾼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간신히 움직이는 이 용줄을 가지고 마을의 청장년들은 일부러 마을을 돌다말고 온갖 장난을 친다. 장난이 심할 때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당산에 이르기까지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기도 한다. 장난스럽게 용줄돌기를 하다보니 당산에 이르면 날이 저물기 일쑤다. 그러나 돌모산에서는 저녁이 되어서야 제사를 지내는 관례가 있어, 사실 용줄돌기를 하면서 마을 장정들이 보여준 장난은 제사 시간을 맞추기 위한 다목적 장난에 다름아니다. 용줄이 당산에 이르면 당산 옷입히기(짐대할머니 옷입히기)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 곳의 제사는 그 격식과 시간이 다른 마을에 비해 엄격한 편이어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 위도 띠뱃놀이




음력 정월 초사흗날(올해는 2월 20일)이면 부안의 위도에는 오랜 세월 되물림으로 그 원형과 명맥을 지켜온 띠뱃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가 펼쳐진다. 그곳에 나는 두 차례 다녀왔고, 두번 다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내가 찾았을 때 띠뱃놀이가 열리는 위도 대리에는 뱃기를 들 사람도 부족해 외부에서 온 취재진까지 총동원해 겨우 산꼭대기 원당에 오를 수 있었다. 사실상 대리에는 띠뱃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60세 이상인데, 문제는 이들이 떠난 뒤의 띠뱃놀이 운명이다. 유럽의 인류학자나 일본의 민속학자들 사이에서는 위도 띠뱃놀이가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원생 한 명은 <동아시아의 풍어제>란 논문을 쓰기 위해 위도를 방문할 정도로 외국의 관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뜨겁다.




띠뱃놀이는 원당에 올라 선주굿을 지내는 원당굿,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 주산돌기, 바다의 용왕신에게 제를 지내는 용왕제, 띠배에 액운을 실어보내는 띠배띄우기의 순으로 진행된다. 띠뱃놀이의 절정은 모선이 선착장에서 띠배를 끌고 나가 먼 바다에서 띠배의 줄을 끊어 띠배를 띄어보내는 마지막 과정이다. 모선이 띠배를 끌고가는 동안 뱃사람들은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풍물을 치고, 풍어를 기원한다. 위도 띠뱃놀이는 그저 단순한 풍어제가 아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중유산의 위기 속을 쓸쓸하게 떠가는 눈물 한 방울, 그것을 지켜가려는 사람들의 한숨 섞인 밥 한 그릇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바다를 지켜온 뱃사람들의 눈물겨운 '만선의 꿈'인 것이다.


황해도식 풍어제의 원형, 연평도 풍어제




조기파시가 한창이었던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평도의 풍어제는 한달씩 굿판을 펼치는 대동굿을 열 정도로 큰 판이었다. 그 때는 소도 몇 마리씩 잡고, 소연평, 대연평 주민들이 모두 참여해 장군당에 올라 풍어를 빌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풍어제는 약식으로 지내는 셈이다. 연평도는 1968년까지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파시가 열리던 ‘파시의 수도’나 다름없었다. 당시 연평도에는 조기를 쫒는 어부들과 어부를 쫒는 객주와 색시들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왁자하고 발 들일 틈 없이 성대한 파시를 이루었다. 그 때는 대연평뿐만 소연평 앞바다까지 배가 빼곡하게 떠서 배 위로만 걸어 소연평까지 걸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전국의 조기 잡던 어부들도 연평도를 흔히 서울 다음이라 했다. 그만큼 연평도가 번창했고, 조기파시가 성황을 이루었다는 얘기다.




사실 연평도 풍어제의 시작은 첫날 밤 만신과 보조무녀, 장구할매가 당에 올라 선원 축원 및 굿거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튿날에는 임경업 장군당인 충민사에 올라 축원고사를 올리고, 사슬세우기와 장애발 꽂기, 지신밟기, 뱃고사, 띄배 띄우기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때 풍물패와 연평도 사람들은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연평바다로 돈 실러 가세/에-에헤야 에헤 에-에헤 에-에헤 에헤 에헤 어하요(후렴)/연평바다에 널린 조기/양주만 냉기고 다 잡아 들이자”로 시작하는 배치기 노래를 합창한다. 무엇보다 연평도 풍어제가 소중한 것은 이것이 우리 땅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형이 남은 황해도식 풍어제라는 것이다.


화순 가수리의 벅수제와 짐대제




전남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는 내가 만난 짐대(솟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짐대를 볼 수 있는 ‘짐대마을’이다. 큰길에서 들어가자면 아랫가무래(하가마을)의 동구에서 먼저 나무로 만든 벅수 두 기를 만나게 된다. 나무로 만든 벅수는 세월이 흐르면 썩게 마련이므로 옛날에는 몇 년마다 새 벅수를 깎아세우고, 그 때마다 벅수제(장승제, 정월 대보름 날에도 이 곳에서 당산제를 지냈다)를 지냈다. 아랫가무래의 벅수는 각각 동방대장군, 서방대장군으로 불리는데, 동쪽이 할아버지, 서쪽이 할머니라고 한다. 지금의 벅수는 1995년, 나무 중에 가장 오래 간다는 밤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아랫가무래를 지나 윗가무래 동구에 이르면 길 양쪽에 모두 5기의 짐대(솟대)를 만나게 된다. 이 짐대의 역사는 약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옛날부터 마을의 지형이 화기를 피할 수 없는 모양이고, 실제로도 화재가 자주 발생해 짐대를 깎아 세웠더니 더 이상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유래가 어찌 되었든, 이 곳의 짐대는 내가 보아온 짐대 중에서는 으뜸이라 할만하다. 소나무 장대에 올려놓은 오리와 대나무를 쪼개 늘어뜨린 오리 날개 모두 솜씨와 멋이 느껴진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2월 초하루에 짐대제를 지내는데, 이 때 썩어서 쓰러진 짐대나 오래된 짐대를 버리고 새로 짐대를 깎아 세운다.


남해 선구마을 줄끗기 놀이




선구마을 동구에 이르자 한복을 입은 아낙들과 어르신들은 마늘밭 양지에 쪼그려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선구마을의 줄끗기놀이는 선구마을 뒷산 당산나무에서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산제가 끝나면 밥무덤에 제례 음식을 묻고, 고싸움에 나설 숫줄(북쪽)을 매고 마을로 내려간다. 이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이미 다른 당산에서 고사를 지낸 뒤 대기하고 있던 암줄(남쪽)이 포구앞 해변에서 숫줄과 만나 어우러진다. 그리고는 해변 자갈밭에서 한바탕 고싸움을 한다. 고싸움이 끝나면 줄다리기를 하는데, 이 때 고와 고 사이에 비녀목을 끼워 남북(암수)이 서로 자리를 옮겨가며 줄을 당긴다. 여기서 북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남쪽이 이기면 풍어가 든다고 하는데, 선구마을이 어촌이다보니 남쪽이 이겨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이 선구마을 줄끗기(줄다리기의 의미)에 참여하는 마을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줄을 매고 당기는 사람만도 양쪽이 모두 100여 명이 넘고, 마을의 참여자와 외지의 구경꾼까지 합하면 수백여 명에 이른다. 이웃의 여러 마을에서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곧바로 달집 태우기에 들어간다. 풍물패는 달집이 다 사그라들때까지 달집 주위를 돌며 풍물을 친다. 사람들도 너나없이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한다. 이제껏 나는 이토록 신명나고 자발적인 마을 축제를 본 적이 없다. 축제가 모두 끝나자 해변에는 작은 잔치상이 차려진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냥 자갈밭에 모여앉아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다.


<2008년 정월 대보름 주요 풍어제/당산제 일정>(지역에 따라 일정 변경될 수 있음)

 

* 아산 외암리 장승제: 2월 20일(음 1. 14일)

* 청양 장승제(정산면 송학리, 대치면 농소리): 2월 20일(음 1.14일)

* 연평도 풍어제: 2월 21일 전후(음 1.15일 전후)

* 남해 선구 줄끗기놀이/화계배선대놀이: 2월 21일(음 1.15일)

* 남해안 별신굿(통영): 2월 21일 전후(음 1.15 전후)

* 보령 외연도풍어제(전횡장군제): 2월 21일(음 1.15일)

* 태안 황도붕기풍어제: 2월 8~9일(음 1.2~3일)

* 부안 우동리당산제(2년에 1회)/돌모산당산제: 2월 21일(음 1.15일)

* 제주 칠머리당굿: 3월 8~21일(음 2.1~14일)

* 위도 띠뱃놀이(부안): 2월 9일(음 1.3일)

* 화순 가수리 짐대제: 3월 8일(음 2.1일)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 스크랩은 http://blog.daum.net/binkond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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