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밥상'을 위한 <풀꽃 자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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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을 위한 <풀꽃 자연주의>


<풀꽃 자연주의>에 빼곡하게 들어선 간장과 된장 항아리들. 이곳의 간장과 된장은 대부분 7~8년 숙성된 것들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중에서
“저장된 썩은 것을 먹느냐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푸성귀를 먹느냐의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 헬렌 니어링,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중에서


활짝 핀 매화.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소박한 밥상을 위한 항아리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얼마나 안전할까, 에 대한 불안에 늘 시달리고 있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사실상
식품 첨가물과 방부제, 화학조미료, 비료와 농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친환경 재배나 수경재배 또한 그 안전성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러니 맥도날드니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 푸드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애당초 안전함과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건강에도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인스턴트를 포함한 ‘패스트 푸드’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웰빙을 외치면서도 한쪽에서는 좀더 빠른 패스트 푸드를 선호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구상에 저렇게 많은 패스트 푸드점이 들어서 있을 이유가 없다.
심지어 티베트의 라싸에도 패스트 푸드점이 들어서 있지 않은가.
패스트 푸드가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꾸준히 입증되고 있지만,
패스트 푸드의 판매량 또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텃밭에서 농약과 비료 없이 아무렇게나 키운 푸성귀(위)와 8년 숙성된 된장으로 끓인 냉이 된장찌개(아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패스트 라이프.
사실 출신성분 자체가 시골 출신인 나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파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이 촌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간편한 햄버거보다 오랜 옛날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쑥버무리가 더 맛있고,
마트에서 파는 만두보다 밀대로 쑥쑥 밀어서 만든 제멋대로 생긴 손만두가 더 맛있다.
시중에 나도는 무슨무슨 소스보다 오래된 집간장이 더 좋고,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푸성귀 그득한 ‘소박한 밥상’이 더 좋다.


바람과 햇빛과 유유한 자연의 시간이 항아리 속 된장과 간장을 숙성시킨다.

이른바 슬로 푸드. 소박한 밥상.
문제는 그것의 실천이다.
모두들 ‘슬로 푸드’가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에서 콩나물을 키우거나 텃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자급한다는 것이
도시인들에게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 닭을 치고, 버섯을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농원 뒤란에서 소규모로 키우는 표고버섯(위). 먹음직스럽게 갈라진 표고무늬(아래).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슬로 푸드의 생산자가 될 수 없다면 슬로 푸드의 소비자라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소수의 소비자를 위한 슬로 푸드 생산자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만난 <풀꽃 자연주의>도 바로 그런 곳이다.
슬로 푸드와 ‘소박한 밥상’을 실천하는 곳.


텃밭에서 그저 땅과 햇빛과 자연의 힘으로 자라는 부추.

괴산의 한적한 산골에 터를 잡은 <풀꽃 자연주의>는
슬로 푸드의 대량 생산자가 아니다.
소비자라고 해봐야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들이 고작이다.
어차피 이곳에서도 대량으로는 슬로 푸드를 공급할 수가 없다.
애당초 슬로 푸드라는 것은 '빨리'와 '많이'를 목표로 하지 않는 것.
그러므로 언제나 소비자의 사정보다 생산자의 입장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슬로 푸드다.


이곳의 산마늘(명이)은 그 향이 짙고, 맛이 깊다.

대규모 버섯 농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버섯이나
비료와 농약으로 소출을 늘리고 때깔을 좋게 한 채소,
호르몬제를 주입한 속성재배는 이미 슬로 푸드가 될 수 없다.
본래의 작물이 가진 속성을 땅과 바람과 물과 햇빛과 사람의 힘만으로 생산해내는 것만이
슬로 푸드인 바, 그것은 오랜 시간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숨쉬는 항아리 속에서 8년 숙성된 간장.

<풀꽃 자연주의>에서는 그렇다, 이곳에서 키우는 모든 작물은
당연히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곳의 배추 한 포기, 우엉 한 뿌리는 그 생김새부터가 남다르다.
배추는 속이 엉성하고, 우엉은 뿌리가 제멋대로 못생겼다.
산마늘(명이)이며 상추, 쑥갓, 표고버섯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생산량은 많지 않아서 소수의 사람만이 이곳의 야채를 맛볼 수 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장류 식품이다.
이곳의 된장과 간장은 <풀꽃 자연주의>에 빼곡이 들어선 옹기 항아리가 말해주듯
제법 양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기업화된 대규모 농원처럼 마구 퍼줄 수 있는 양은 안된다.
중요한 것은 이곳의 장류가 다른 곳과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약재로도 쓰이는 오갈피 열매(위) 이곳의 약된장은 숙성 과정에서 오갈피 열매가 들어가 다른 곳의 된장보다 약간 검은빛이 돈다(아래).

된장 하나만 보더라도 다른 곳에 비해 그 빛깔이 더 짙고 검어보인다.
그 까닭은 오갈피 열매에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된장은 숙성 과정에서 오갈피 열매를 첨가해 빛깔이 좀더 검게 보이는데,
이곳의 된장을 ‘약된장’으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숙성기간이 오래되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이곳의 된장과 간장은 보통 7~8년은 숙성된 것들이다.
어떤 고추장 항아리는 10년이 되어서 고추장의 찰기가 마치 잘 다려진 조청을 연상시킨다.
오래된 만큼 그 맛은 더없이 깊은 맛을 낸다.


숨쉬는 항아리 속에서 10년 숙성된 고추장. 색이 검은빛에 가까운 붉은색을 띤다.

기껏해야 나는 이곳의 장류를 가져다 먹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후 마트에서 파는 장류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된장이 좋은지 나쁜지는 된장국을 끓여보면 금방 안다.
마트에서 파는 된장은 도무지 옛날 시골 된장의 깊은 맛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오래 숙성된 된장은 조물조물 나물을 무쳐 내놔도 그 맛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이 나물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모종판에서 자라는 오이 새싹.

우리는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고,
오염되지 않은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 길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그곳의 식품이라는 것이 상당수는 ‘더 많은 생산’을 위한 것들이므로
무수한 농약과 화학비료에 노출돼 있는 것들이다.
저장식품은 ‘더 오래’ 저장하기 위해 방부제를 사용한 것들이고,
제철이 아닌 과일이나 야채는 ‘더 빨리’ 생산하기 위해 속성재배했거나 온실재배한 것들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본래의 시간과 속성을 잃은 것들이다.
본래의 속성을 잃은 것들은 본래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마트에서 파는 냉이에서는 향기를 느낄 수가 없고,
마트에서 파는 청국장은 그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는 청국장 맛이 나지 않는다.


<풀꽃 자연주의>에 가득 핀 생강나무꽃.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정성 없이는
본래의 맛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풀꽃 자연주의>가 권하는 소박한 밥상은
우리가 그토록 원했으나, 번번이 패배하고 말았던 ‘꿈의 밥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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