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가면 좋은 전통마을 네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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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가면 좋은 전통마을 네곳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이의 손을 잡고 전통마을 체험여행을 떠나보자.
이 가을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은 전통마을 네곳을 뽑아보았다.


1. 고성 왕곡마을: 전통마을 고택 스테이

속초에서 간성 쪽으로 이어진 7번 국도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청간정과 삼포를 차례로 지나 풍경이 아름다운 송지호를 만나게 된다. 자연 호수로서 그 둘레만도 십리가 넘고 주변 경치가 좋아 최근에는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7번 국도를 벗어나 이 경치 좋은 송지호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가면 지척에 수십여 채의 옛 기와집이 즐비하게 들어선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오봉리 왕곡마을이다. 왕곡마을은 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통가옥보존지구(1988)로 지정된 곳이다. 마을에는 옛빛이 가득한 유서 깊은 문화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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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곡마을이 오늘날까지 전통가옥보존지구로 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주변의 지형지세에 도움을 받은 바 크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다 송지호가 도로와 마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어서 실제로 한국전쟁 때에도 폭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최근 여러 차례 일어났던 산불도 용케 마을을 비껴갔다. 왕곡마을은 전통적인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 왕곡마을이 처음 생겨난 것은 600년 전 쯤이며, 마을에는 현재 20여 채가 넘는 전통가옥이 남아 있고, 최근에도 가옥 복원 사업으로 전통가옥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 곳의 초가집과 기와집은 방과 마루, 부엌과 외양간이 한 건물에 붙은 겹집(양통집)에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형태인, 산간지방에서 흔했던 ‘ㄱ’자형, 즉 전형적인 북방식 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왕곡마을에서 소박한 ‘농촌체험’도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고택 스테이. 체험객들은 텃밭에서 저녁에 먹을 상추도 솎아오고, 깻잎도 따고, 고추도 딴다. 날씨가 좋으면 송지호에 나가 재첩을 잡기도 한다. 마을에서 10여 분만 걸어나가면 송지호인데, 호수에 물드는 저녁노을과 수초 사이로 몸을 숨긴 철새들과 그것들을 눈에 담고 석호를 잠시 걷는 것만으로 함께 온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생태체험이 된다. 송지호 주변의 늪에서는 개구리를 만날 수 있고, 석호를 둘러싼 수풀에서는 거미와 여치와 메뚜기를 흔하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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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온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두부만들기 체험이다. 전통 방식의 두부 만들기는 전날 담가 놓은 두부콩을 맷돌에 갈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맷돌 돌리기는 콩 한 되를 갈아내는데도 꾀나 많은 시간과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갈아낸 콩물은 광목자루에 걸러 가마솥에 넣어 끓이는데, 부글부글 끓어넘칠 정도까지 계속해서 불을 땐다. 드디어 콩물이 끓어넘칠 정도가 되면, 아궁이에서 숯을 꺼내고 미리 준비한 바닷물(간수)을 끓는 콩물에 골고루 조금씩, 시차를 두고 뿌려 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콩물이 점차 순두부처럼 엉겨붙는다. 이 상태로 그냥 먹으면 순두부요, 엉겨붙은 순두부를 틀에 담아 물기를 쪽 빼내면 모두부가 되는 것이다.

2. 경주 양동마을: 오랜 전통과 관습을 지켜가는 곳

천년고도 경주로부터 비스듬히 흘러온 형산강을 뒤로하고 활처럼 휘어진 길이 골짜기로 이어져 있다. 청량감이 감도는 공기. 벼이삭이 익기 시작한 논배미 위로 늦여름 햇살이 잘게 부서져내린다. 그 길을 따라가면 옛빛 그득한 기와집과 이엉 마름을 해 얹은 초가를 품에 안은 아늑한 마을이 나타난다. 양동마을이다. 우묵한 골짜기 산자락(설창산)마다 층층이 집이 들어선 모양은 멀리서 보면 마치 조선시대의 양반촌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 세트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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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주봉인 설창산 줄기는 마치 말 물(勿)자처럼 뻗어 있는데, 이는 더없이 좋은 명당의 풍수형국이다.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건물은 마을 어귀에 나란히 자리한 향단(보물 제412호)과 관가정(보물 제442호)이다. 향단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경상감사 부임 시절에 지은 건물로, 원래는 99칸짜리 집이었으나, 현재는 57칸만이 남아 있다. 설창산의 두 능선을 각각 차지한 무첨당(보물 제411호, 여강 이씨 종가)과 서백당(중요민속자료 제23호, 월성 손씨 종가)도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종가댁이다. 향단과 무첨당이 여강 이씨네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면, 관가정과 서백당은 마을의 또다른 성씨인 월성 손씨네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지금도 양동마을은 이 두 성씨의 집성촌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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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은 외가인 손씨 종가에서 출생하였는데, 그가 태어난 집은 마을에서도 최고의 명당자리다. 지관은 이 곳에서 3명의 현인이 날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이언적이고, 다른 한 명이 손소의 아들 손중돈이었다. 이언적은 조선 초 성리학자로서 지금까지도 문중에서 여강 이씨의 수호신처럼 받들어지고 있으며, 회재의 외삼촌인 손중돈은 이조와 예조 판서를 지내면서 청렴하게 일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관이 예언한 세 번째 인물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셈인데, 곧 태어날 마지막 인물을 다른 문중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양동마을에서는 출가한 딸일지라도 친정에서 출산하는 관습을 지켜가고 있다. “낙안읍성이 상인 마을이라카믄, 하회마을은 벼슬아치 마을이고, 양동은 학자 마을이거든. 지끔도 학자 마을로 명맥을 이어가는데, 여기 출신 교수만 해도 90명 정도 될 끼다.” 회재 이언적의 14대손 이원식 씨에 따르면 양동에 있는 150여 가옥의 대부분이 문화재라고 한다.

3. 삼척 신리: 첩첩산중 너와집마을

오래 전 삼척의 도계는 알아주는 탄광촌이었다. 수많은 광부가 몰려들었고, 급조한 사택이 들어섰고, 시커멓게 탄 묻은 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숱한 식당과 술집이 탄광촌을 따라 다닥다닥 들어섰다. 노다지는 아니었지만, 도계의 하늘에 탄가루가 날릴 때는 그래도 살만했다. 골목에서는 아이들의 딱지 치는 소리와 조금은 거칠게 욕하는 소리가 탄가루처럼 날렸다.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가 저녁이면 새카맣게 물들었을지언정 읍내는 사는 소리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폐광이 줄을 잇고, 광부들이 하나 둘 사택을 버리고 떠나면서 도계 읍내는 적막한 산중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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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에서 소부치재를 넘으면 신리(옛 이름은 부싯골)에 가닿는다. 옛날 부대기꾼(화전민)이 살던 두 채의 너와집과 물레방아가 쓸쓸하게 남아있는 곳. 더러 사람 살지 않는 빈집이 상채기처럼 남아서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져 가는 산 깊은 두메마을. 마을에 남아 있는 두 채의 너와집과 물레방아(중요민속자료 제33호) 덕분에 신리는 민속마을로 지정돼 있다. 너와집 안에는 고콜과 화티, 채독, 나무김치통, 설피와 같은 소중한 생활유물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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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콜과 화티는 너와집뿐만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빈집에서도 더러 볼 수가 있다. 고콜은 방안에 관솔을 피워 난방과 조명을 하던 일종의 벽난로인데, 생김새가 마치 사람의 코를 닮아 ‘코클’이라고도 한다. 신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이리 민속마을의 너와집에도 이와 같은 고콜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화티는 부엌 아궁이 옆에 불씨를 따로 보관하는 불씨 아궁이라 할 수 있다. 역시 대이리 민속마을에서 만나는 굴피집에서도 이러한 옛날의 화티를 만날 수가 있다. 대이리는 신리와 더불어 옛 부대기 마을의 삶과 강원도 특유의 산간마을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중한 민속유산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너와집을 체험할 수 있는 '너와집' 숙소도 운영하고 있다.

4. 안동 하회마을: 전통과 옛 문화의 숨결을 간직한 곳

누구나 알다시피 하회마을은 안동을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이고 전통마을이며, 강자락이 마을을 둥그렇게 휘감아 흐르는 물돌이 마을이다. 하회마을이 오늘날까지 전통과 옛빛을 간직해 올 수 있었던 까닭은 지형지세에 힘 입은 바 크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풍수설에 따르면 삼남에 네 군데 길한 땅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하회마을이다. 하회는 지리적으로도 매우 고립된 지역에 속한다. 외부로 통하는 길은 큰 고개를 거쳐 들어가는 길을 제외하면 뱃길 뿐이다. 이같은 지형으로 인해 하회는 이제껏 외세의 침입을 단 한번도 겪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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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가들은 하회의 땅모양을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태극형은 낙동강이 마을을 둘러싸고 태극 모양으로 돌아흐른다 하여 붙여졌고, 연화부수형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마을이 모습이 마치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풍수가들에 따르면 태극과 연꽃 모양의 땅은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고 걸출한 위인이 많이 나는 땅으로 풀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회마을을 단순히 관광지나 민속촌 정도로 생각하지만, 민속이나 옛집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회마을이 상당히 중요한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하회마을에 들어선 200여 채의 옛집은 우리 민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하회마을에는 현재 기와집 110여 채, 초가집 80여 채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여기에는 一자형에서부터 □자형, 튼 □자형 등 다양한 민가 형식은 물론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돌아앉은 집들과 흙벽집, 흙담집(토담집), 옛 양반가옥과 서민옛집, 크고 작은 딸림채들, 솟을대문과 사립문 등 시대와 구조, 신분과 기능에 따라 같고도 다른 다양한 옛집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또한 하회마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돌과 흙을 다져쌓은 죽담과 흙벽돌을 쌓아올린 흙벽돌담, 양쪽 면에 거푸집을 대고 진흙을 꾹꾹 다져 쌓은 둑담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둑담이 많은 것이 하회마을의 특징이다. 다양한 모양의 굴뚝과 한뎃부엌도 하회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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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가옥은 역시 충효당(보물 제414호)과 양진당(보물 제306호)이다. 둘 다 옛빛을 그득 품은 기와집으로 안대청에는 모두 성주의 신체를 모시고 있다. 대청에 모신 성주 신체의 모양은 한지를 네모낳게 접은 뒤 그 끝에 수술처럼 오라기를 만들었으며, 명주실타래를 감아서 늘어뜨린 모습이다. 특히 양진당의 성주는 최근에 새로 모셔놓은 것이어서 신체의 원형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다. 이 밖에도 하회마을에는 북촌댁, 남촌댁을 비롯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기와집이 모두 일곱 채에 이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전통기법인 흙담집으로 지은 초가를 비롯해 하회에 남은 80여 채의 초가는 단 한 채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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