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마천 다랑논과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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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걷힌 함양 마천의 다랑논



지리산자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다랑논을 보러
함양 마천에 갑니다.
하지만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지리산자락이 온통 운무에 휩싸여 있습니다.

마천면 가흥리 쯤에서 금대암 이정표를 보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갑니다.
굽이굽이 수십 굽이를 올라가자 건너편 산자락에 펼쳐진 다랑논이
안개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다시 안개가 몰려오고
잠깐 모습을 드러냈던 다랑논이 또다시 안개에 잠깁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희부연 안개에 가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도마마을 다랑논이 드디어
안개를 벗고 서서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1시간 넘게 같은 자리에 서서 나는
안개가 몰려왔다 몰려가는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습니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다랑논!
참 안개무량합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도마마을 다랑논은
몇몇 사진가들과 풍류객들에게는 꽤 알려진
지리산의 숨은 진풍경입니다.


어느 정도 안개가 걷히자 나는
참았던 셔터를 자꾸 눌러댑니다.
뭐 그래봐야 다랑논이겠지만,
내 눈에는 저것이 그냥 다랑논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농부들의 땀과 눈물과 손길과 정성이 깃든
삶의 풍경!
어느덧 다랑논의 벼들은 누렇게 익어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곳의 쌀 한 톨은
지루한 장마와 오뉴월 땡볕과 무자비한 태풍을 다 이겨낸
우여곡절의 눈물 한 방울입니다.

나는 그것을 렌즈가 아닌 마음으로 구경하고
셔터가 아닌 가슴으로 찍습니다.
산길을 올라온 지 3시간째,
다시 지리산 능선을 넘어 안개가 몰려옵니다.
나도 발길을 돌려 천천히 산길을 내려갑니다.


다랑논, 사람과 자연의 행복한 어울림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이루어내는 논두렁의 아름다운 굴곡을 보라. 마치 멀리서 보면 층층이 계단을 이룬 것처럼 보여 계단식 논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풍경은 아직도 기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산골짝이나 비탈이 심한 바닷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워낙에 산이 많았던 탓에 과거 우리네 논은 거개가 다랑논이었다. 밭이야 굳이 물을 가둘 필요가 없었으니 그냥 비탈밭이라도 문제가 없었지만, 논은 천수답일지언정 물을 가두자면 편평해서 보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층층이 돌멩이나 흙을 다져 둑을 쌓은 다랑논이 생기게 된 것인데, 이 다랑논의 논둑은 하나같이 산자락의 굴곡을 고스란히 따랐다. 하여 어떤 논은 크고, 어떤 논은 작았으며, 어떤 논은 높고, 어떤 논은 낮았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의 다랑논. 뒤로 보이는 희미한 산자락이 지리산 주능선이다.


함양 휴천과 마천, 남원 산내에 들렀을 때 본 것이지만, 거기에는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 손바닥만한 논들도 적지 않았다. 휴천에는 이런 이야기 한 토막이 전해온다. 어떤 사람이 다랑논 모내기를 다 끝내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마지막 한 뙈기가 더 남았더란다. 알고 보니 모내기할 때 벗어놓았던 모자에 가려 논 한 뙈기를 빠뜨리고 모내기를 했던 것이다. 모자로 가릴 만큼 작은 논도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다. 다랑논하면 역시 지리산 자락의 다랑논을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지리산 자락을 끼고 있는 함양의 마천과 휴천, 남원의 산내 인근 다랑논은 많은 사진가들과 풍류객들에게 의해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위대한 예술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피아골의 다랑논과 토지면 문수리의 다랑논 역시 대단한 풍경을 자랑한다. 또 경남 남해 가천리에서는 옥빛 바다와 다랑논 굴곡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만날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는 이 곳의 다랑논이 가장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가장 아름다운 다랑논으로 손꼽힌다.


남해군 가천마을의 다랑논.

사실 다랑논이란 것이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하는 노릇은 단지 농작물 생산에만 있지 않다. 환경적으로 볼 때 다랑논은 장마철에 홍수를 조절하고, 산사태를 막는 등 그 하나하나가 작은 댐이며, 무리를 이루면 거대한 자연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자연댐들은 다림질하듯 반듯반듯 농경지 정리를 하면서 상당수가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남원 산내면 상황마을의 다랑논.

서양의 문화가 직선의 문화라면, 우리네 문화는 곡선의 문화였다. 돌이켜보건대 옛날 우리가 사는 곳의 풍경은 온통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논밭도 그렇거니와 길이란 것도 강이 있으면 강의 굴곡을 따라, 계곡이 있으면 계곡의 경사를 따라, 나무가 있으면 비켜가고, 바위가 있으면 돌아가는 그런 길이었다. 사람이 사는 마을의 골목도 그러했고, 이엉을 얹은 초가 지붕은 산자락의 굴곡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서양의 그것처럼 일부러 자 대고 쭉 그은 일직선의 모양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개척과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친화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개발논리가 지배논리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우리 주변의 곡선문화는 급격히 직선문화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서 더 잘 살고, 더 편리해졌을지는 몰라도 그래서 더 각박해지고, 더 무미해진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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