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인가 시멘트 분진인가, 도담삼봉의 아침

|
 

안개인가 시멘트 분진인가, 도담삼봉의 아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담삼봉 가는 길에 바라본 안개 낀 풍경.


서울을 떠난 지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한 단양 매포읍. 단양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매포는 예부터 단양의 나들목 노릇을 해 왔는데, 이 곳에서 만나는 독특한 풍경이 하나 있다. 봉우리를 싹둑 잘라버린 듯한 잿빛 산더미와 마치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처럼 우뚝 서 있는 시멘트 공장이 그것이다. 현재 매포읍에는 세 곳의 시멘트 공장이 있으며, 전국 시멘트 생산량 가운데 30% 정도를 이들 공장에서 만들어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석문 오르는 길에 바라본 도담리와 도담삼봉 풍경.


매포에 처음으로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것은 1964년 삼천리표 한일 시멘트 단양공장이 생겨나면서 잇달아 호랑이표 현대 시멘트 공장과 천마표 성신양회 공장이 매포읍에 둥지를 틀었다. 이렇게 이 곳에 시멘트 공장이 잇달아 들어서게 된 것은 매포읍 일대에 다량의 석회석이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일 시멘트의 채굴 광산인 우덕리 산 일대만 해도 석회석 매장량이 7억 톤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앞으로도 몇 백년 동안 채굴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채굴 광산과 시멘트 공장이 석회석을 캐내는 동안, 거기에 매달려 살수밖에 없는 매포읍 주민들은 하루하루 잿빛 더미로 내려앉는 흉물스런 산들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세 곳의 시멘트 공장에서 뿜어내는 시멘트 분진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개 낀 도담삼봉 아래로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잿빛으로 물든 매포를 벗어나면 예부터 제2의 외금강이라 불리는 도담삼봉의 풍경이 펼쳐진다. 매포에서 5번 국도를 타고 단양읍으로 향하다 6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강변에 내려서면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를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단양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도담삼봉이다. 가운데 늠름하게 솟은 봉우리가 남편봉, 남편봉 위쪽에 교태를 부리듯 살짝 몸을 비튼 봉우리가 첩봉, 아래쪽에 얌전하게 돌아앉아 고개를 숙인 듯한 봉우리가 처봉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담삼봉 휴게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담삼봉.


삼봉의 모양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 온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들이 생기지 않자 남편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들였던 모양이다. 그런 남편이 미워 아내는 획 토라져 돌아앉았다는 것이다. 이 삼봉이 본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양에서 정선에 꼬박꼬박 삼봉에 대한 세금을 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이 젊은 시절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정선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양 최대 무지개 돌문으로 알려진 석문.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도전은 삼봉이라는 자신의 호를 이 봉우리에서 얻어 쓸 만큼 젊은 시절 이 곳을 자주 찾아와 노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도 도담삼봉을 자주 찾았다는데, 장군봉으로도 불리는 남편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이 있어 퇴계는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주변의 빼어난 풍경에 도취돼 이런 시 한 편을 읊조렸다.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어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석문에서 바라본 안개 자욱한 남한강.


이 도담삼봉에서 상류로 200미터쯤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 벼랑에 25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른바 동양 최대의 무지개 돌문으로 불리는 ‘석문’이다. 석문 왼편 아래쪽에는 작은 굴이 하나 있으며, 여기에는 또 이런 이야기도 전해온다. 옛날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온 ‘마고할미’가 이 곳에서 비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에 할미가 비녀를 찾으려고 손으로 땅을 파는 통에 아흔아홉 마지기의 논이 생겨났으며, 하늘나라 경치보다 훨씬 빼어난 석문 근처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결국 이 곳에 머물며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담삼봉 휴게소의 수족관 붕어.


도담삼봉과 석문은 모두 단양8경에 드는 곳으로, 세 곳의 시멘트 공장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해 있다. 강이 있으니 이곳에는 수시로 안개가 끼고 가끔은 안개 낀 도담삼봉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은 해 뜨기 직전에 도담삼봉을 찾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있다. 이 곳의 안개가 순수한 안개인가, 라는 점이다. 실제로 도담삼봉 인근의 나뭇잎이나 건물에는 뿌옇게 시멘트 분진이 내려앉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곳의 안개에는 많든 적든 간에 시멘트 분진이 섞여 있다는 얘기고, 눈에 보이는 몽환적인 풍경이 사실은 시멘트 분진이 뒤섞인 풍경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곳의 안개는 늘 탁하다. 그것이 우리 눈에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 도담삼봉 풍경의 어쩔 수 없는 실체인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