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움막, 초막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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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움막, 초막을 아십니까?

요즘 초막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막’이라는 것은 집과 달리 비바람을 막고 잠시 머물기 위해 임시로 지은 집을 가리킨다. 옛날에 있던 움막이라는 것도 바로 움을 파서 임시로 지은 보잘것없는 집을 가리켰다. 농막, 산막, 해막, 원두막이 바로 임시로 지은 막집에 속한다. 살자고 지은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거나 쉬자고 지은 집이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초막’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막이란 말은 사실상 ‘농막’을 가리킬 때가 많다. 농막은 말 그대로 농사에 편리하도록 논밭 가까이에 간단하게 지은 밭집을 가리킨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단양 벌천리라는 곳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옛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장 원시적인 농막 한 채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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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리 농막은 그 모양이 마치 선사시대의 움집을 꼭 닮아서 마치 초가에서 지붕만 따로 싹둑 잘라 밭가에 둔 모습이었고, 크기도 아주 작아서 기껏 한 사람이 들어가 간신히 발을 뻗고 누울 정도의 공간밖엔 안되었다. 1974년에 지었다고 하는데, 높이는 어른 키 정도, 길이는 약 3미터 정도. 크기가 작다 보니 주춧돌이나 대들보가 있을 리 없고, 지붕과 이엉을 받치기 위해 나무 말뚝을 기둥처럼 박아 놓았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로는 나뭇가지를 얽어 놓아 한껏 너스레 흉내를 낸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초막은 일반적인 살림집이 아니다. 초막은 밭일을 하다 잠시 들어가 쉬거나 새참을 먹거나 밭일에 필요한 호미며 괭이며 낫 따위를 보관하는 곳이다.

이곳의 농막지기이자 마지막 초막농사꾼이며 이제는 고인이 되신 고황용 님에 따르면, 그가 처음 벌천리에 들어와 둥지를 틀던 30여 년 전만 해도 마을 주변에는 서너 채의 초막이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들어가구, 일하다 낮잠두 자구 그래유. 들어가 누워있으면 아무 생각 없어유. 바댁이 바우가 돼 있어 시원하구, 여름엔 저 우에서 또 바람이 내리오니까 시원해유. 호매나 낫 이런 거 이래 여기 놔 두구 가유. 안 훔쳐가유. 왜 그런 말 있쥬. 쟁기 훔쳐가면 그 쟁기로 사람 파묻게 된다구유. 호매두 그래유. 이거 가져가면 사람 파묻게 된다구 아무도 안가져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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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그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건리였다. 정든 고향을 떠나 이 곳에 들어온 것은 약 30여 년 전, 당시 절땅이었던 논밭을 부쳐먹으며 벌천리에 둥지를 틀었다. 세월이 지나 절땅이었던 논밭은 어느 새 고인의 땅으로 바뀌었고, 다시 그 중의 일부는 홍수 때 자갈밭으로 변해버렸다. “젊어서 고상 많이 했어유. 배운 게 읎으니 일해 먹어야쥬 뭐. 호걸은 장호걸이요, 고상은 장고상이라구, 사는 게 그래유. 고상하는 사램은 늘 고상이유. 이래 일이래두 해야지 목구녕에 풀칠하쥬. 가만 있으면 못 읃어먹쥬. 인젠 눈두 어둡구 잘 뵈키지두 않어유. 여기저기 담두 절리구. 인젠 늙어서 산에 가면 자꾸 엎어지구, 넘어지구, 넘어지면 당최 일어날 수 없으니까. 아무케두 인젠 갈날이 가찹지, 살날은 얼마 안남았어유. 살다 보면 끙끙 앓는 소리두, 허허 웃음소리두 있는 벱이유. 내가 왜정때 명주옷 장사 핼 때유, 금강산을 열댓번 갓댔어유. 홍천 살 때 성님이 금강산 들어가 살었거든유. 형수하구 애들하구 다 으뜨케 됐는지 모르쥬. 아이구 참! 육이오 사변 난 뒤로 감감무소식이쥬 뭐. 그 땐 차가 있기라두 했나유, 어디. 상긋 걸어다녔쥬. 하루 180리까지 걸었다니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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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살아계셨을 당시 나는 네 번이나 당신의 집을 찾아가 뵌 적이 있다. 그리고 한번 더 찾아뵐려고 전화를 드렸을 때는 이미 그가 고인이 된 뒤였다. 그가 고인이 된 이듬해 장맛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면서 고인의 밭둑에 있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막도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세월이란 텃밭에서 배추가 자라듯 자고 나면 달라지는 법이다. 들깨나 콩도 다 자라면 거두고, 거둔 곡식을 타작하고 나면 한해의 농사가 끝나는 것처럼 삶도 그러하리라. 몇 년 전 나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막과 마지막 초막농사꾼을 4년에 걸쳐 기록했고, 그것은 이제 아득한 역사가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다.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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