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형부는 수력발전소처럼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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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부는 수력발전소처럼 건강하다

                                                                          이문재





수력발전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면 형부는 수문에서 지난
여름의 물을 닫아놓고
성가를 듣는다
그레고리안
제비는 떠나갔다 자전거바퀴에
바람을 집어넣고 댐에 앉아
바라보는 옛집은 불을 밝혀놓고
어두워진다 그러는 게 아니었다
내가 산을 넘는 것이 아니었다
형부는 발전소 푸른 빛으로 온몸을
충전하며 집으로 내려간다
산울음으로 너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는데 제비는 곧장 남으로
내려갔다 나는 산에 남아 있는 오월의
나무둥치에 기대 강의 맨 처음
첫사랑의 물을 몸에 적셔본다
옛집에서 멀리 떠나와서
옛집 기둥에 남아 있는 둥지를
그려본다 형부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있겠다 댐에 고여 있는
여름의 산과 산이 흘려보낸 물들
제비는 날아가고 보름에 가까워지는
달은 증명사진처럼 나를 내려다본다
달빛을 칭칭 감으며 내려오는 산은
이마를 들어 댐으로 빠지고

형부는 수력발전소처럼 건강하다
나는 첫사랑의 노트에 오월을 접는다
내가 그 산을 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레고리안 형부는 성가를 듣고
수심을 재고 집으로 내려간다
옛집 기둥 둥지에는 구겨진 사랑
먼지처럼 담겨 있고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발전소 입구, 송전탑으로
흘러나가는 형부의 사랑은
얼마나 푸르고 길고 긴가


* 이문재 <산책시편>(민음사, 199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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