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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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의 역사: 순진한 악마사악한 천사의 사투

삶은 결코 예측할 수도 없고, 확실하지도 않다. 확실한 것이 있다면, 죽음이다. 종종 불확실한 삶은 확실하기를 바라는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일상적인 삶에서 느닷없이 튕겨 져 나가거나 몸부림치게 만든다. 누구나 더 잘 살고 싶지만, 이 사회는 모든 사람의 행복과 요구를 쉽게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얻으려고 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사랑은 이루어지 지 않는다. 그리하여 실의와 자포자기, 자학에 빠져버린 자는 급기야 마음 속의 파괴성을 몸 밖으로 표출하거나 그것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자신을 억누름으로써 가학적인 범죄자가 되거나 피학적인 정신병자가 된다. 아니면 "에잇, 쾅! 전쟁이나 터져 버려라."고 외치며 종말론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은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방위'로써 위협하는 대상을 향해 돌진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남이 대신 가졌거나 가로챘을 때 느끼는 질투심도 상대방에 대한 공격성으로 돌변할 수 있다. 좌절에 빠진 경우 에도 삶은 증오의 대상이 되며, 현실은 파괴의 대상이 된다.


결국 무언가를 파괴하려는 사람 은 '창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삶을 창조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파괴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특별한 문제인가? 아니면 그렇게 만든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요인의 책임인가? 현대로 오면서 이러 한 '파괴성과 잔혹함'은 점점 더 시대와 결탁하고 있다. 삶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이 계속되는 한 잔혹함의 얼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기계화되고 편리해진다 해도 버턴 하나로 인간의 행복이 와락, 쏟아지진 않는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본성은 새로운 야만상태로 가고 있다. 물론 문명 이전 의 사회에서도 사람은 전적으로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예부터 서양의 철학이나 종교는 사람 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그렇게 사악하고 잔혹하며, 파 괴적인가? 아니면 지극히 선하고 순박한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인간이 이 두 가지 본성을 다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의 정도는 천차만별이며, 경계는 모호하다.

어찌됐든 처음부터 악은, 선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과 함께 해 왔다. 성서에서는 최초의 인 간인 아담과 하와가 '쾌락의 나무'에서 열매(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인간의 '원죄'로 보았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마음>에서 "악은 사람이 인간성이라는 짐을 벗으려고 비극적으로 노력하다가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악은 단지 최초의 인간 혹은 인간 이전의 상태로 '퇴행'하려는 '순진한' 현상에 다름아니다. 그의 변호대로라면, 악은 순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전의 상태 즉, 짐승은 결코 악하지 않다. 오로지 짐승은 생존을 위해 상대를 해치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퇴행은 짐승과 인간의 중간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며, 짐승과 같은 '100퍼센트 순진'을 장담하기 어렵다. 원시시대만 해도 야수처럼 광포한 자야말로 '진정한 사냥꾼'으로 인정받았다. 과거 그러한 '진정한 사냥꾼'이 현대로 옮겨오는 순간, 광인 취급을 받는다.

이제 현대의 '진정한 사냥꾼' 은 교묘한 두뇌 플레이로 사냥을 한다. 사실상 무한경쟁시대인 현대에 와서-과거에는 인간 이 동물만을 상대했으나, 요즘에는 무수한 인간을 상대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 라서지 않으면, 짓밟히고 만다. 그에 따라 인간의 잔인성은 점점 더 교활해졌고, 치사해졌다. 과거에는 단순히 동물을 해치우는 능력이 '사냥꾼'의 제1조건이었지만, 이제는 '정신적 파괴'라는 신종 무기까지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배자들은 한결같이 낙원, 복지국가를 부르짖어 왔지만, 인간 의 역사는 피로 얼룩져 왔다. 인류사는 곧 피의 역사, 폭력의 역사에 다름아니다. 우리는 피 로 쓰여진 역사를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가한 무차별한 비인간적 행위를 읽으며 자랐다. 참 혹한 전쟁과 무자비한 살인, 교활한 강탈, 인정사정없는 고문, 억압과 착취……. 그 속에서 가학적인 잔인한 행위를 일삼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것'을 즐 겼다. 공포에 떠느니 즐기는 편이 더 나았을 테니까.

<피의 역사, 폭력의 역사>

제정로마시대의 칼리굴라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황제였다. 그는 자신의 눈에 약간만 거슬 려도 곧바로 그를 광산에 보내거나 콜로세움(원형 경기장)에 처넣어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 와 싸우게 했다. 억울하다고 주장하면 오히려 혀를 자른 뒤, 다시금 맹수의 먹이로 던졌다. 당시 콜로세움에서 행해진 로마의 검투사 시합은 그야말로 유혈이 낭자했다. 한쪽이 상처를 입을 때까지 시합은 중단되지 않았다. 시합이 끝난 뒤, 만일 구경꾼들이 엄지손가락을 펴 땅을 가르키게 되면, 패자의 목은 온전하지 못했다. 네로 황제 역시 '악의 달콤함'을 즐기던 황제였다. 그는 로마를 불지르고 7일간이나 솟아오르는 시내의 화염을 감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남았는지, 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피해보상까지 했다. 물론 이 보상금은 로마를 복구하기 위한 세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한나라의 여태후는 더 잔혹했다. 남편인 유방이 죽자, 생전에 총애했던 척부인의 옷을 벗 기고 힘이 센 내시들로 하여금 양다리를 잡아당기게 한 다음, 남편과 관계를 가졌던 음부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리고는 죄수들에게 척부인을 욕보이게 던져 놓았으며, 강제로 독약을 먹이고 귀에는 유황을 붓고 두 눈까지 뽑아버렸다. 결국에는 양팔과 다리까지 잘랐으며, 시체는 똥오줌이 넘치는 변소에 던져버렸다. 그런가 하면 은나라 주왕은 달기라는 왕비를 욕하는 백성을 잡아들여 구리기둥에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지폈다. 기둥에는 기름을 잔뜩 칠해 놓았는데, 미끄러지면 불 속에 떨어지는 것이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둥을 꽉 잡고 있어도 손과 발이 서서히 타서 죽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부랑자를 인신공양하는 관습이 있었다. 추수 전에 부랑자는 마을로 끌 려다니며 채찍질을 당했으며, 결국 마을 밖 낭떠러지 위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멕시코 아즈 테카족은 씨앗을 뿌리기 직전에 이웃 나라에서 잡아온 포로를 나무 장대에 매달아 놓고 화 살을 쏘았다. 그에게서 흘러내린 피가 대지를 살지운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한 태양신에게 바치는 산제물은 나체로 돌 위에 눕힌 채 사제가 칼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 뒤 햇빛에 말렸다가 향으로 사용했다. 제의가 끝나면 이 제물용 인간의 고기를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스키타이인은 적의 목을 벤 뒤 반드시 두피를 벗겼으며, 상대가 명성 있는 장군일 때는 두 개골을 톱으로 잘라 금박을 입혀 잔으로 사용했다. 고대 켈트족도 적의 목을 잘라 벽이나 기둥에 자랑스럽게 걸어놓았으며, 역시 두개골은 잔으로 사용했다. 중세에 행해진 마녀사냥은 인간이 벌인 행위 중 대표적인 잔혹행위로 손꼽힌다. 당시 마 녀를 식별하는 데에는 어처구니 없는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그 첫번째가 여자를 알몸으로 고문대에 묶어놓고 바늘로 온몸을 찔러대는 것이었다. 마녀가 사자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 주었다면, 그 곳의 감각이 마비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그 곳'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눈꺼풀과 혓바닥은 물론 음부 속까지 바늘로 찔렀다고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손과 발을 단단히 묶은 뒤 욕조 속에 던져넣는 것이다. 물에 뜨지 않으면 무조건 마녀로 몰렸으며, 일단 마녀로 판별되면 화형에 처해졌다.

당시 유럽의 중심적인 종교는 기독교였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악마, 혹은 야만인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기독교를 위해 싸운 십자군은 개종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붙여 화형시켰다. 물론 '너무 예뻤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로 가득찬 여자들의 모함으로 마녀로 몰린 여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유럽전역에 걸쳐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사람들은 나치에 의해 사망한 유태인의 수와 비슷했다고한다. 15세기 프랑스의 지르 후작은 변태적 동성애자였는데, 미소년만을 골라 잔인하게 죽인 것 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성가대에서 예쁜 소년들을 골라 데려와서는 알몸으로 벽의 갈고리 에 매달았다가 칼로 목을 찔렀다. 그리고 그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쾌락을 느꼈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는 소년의 시체를 깔고 앉아 뱃속의 내장을 꺼내는가 하면, 도끼로 손발과 목을 잘라 버렸다. 당시 지르 후작에게 희생된 아이들만도 수백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황후를 폐위시킨 뒤, 그녀의 옷을 벗기고 채찍질을 한 다음, 손발을 잘라내 술통 속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남편인 고종마저 병세가 악화되자 무후는 스스로 실 권을 잡고 황제가 가까이 했던 여자들을 차례로 죽였다. 자신의 언니와 조카는 물론 친자식 도 둘이나 죽였다. 그녀가 죽인 가족은 무려 70여 명에 이른다. 중세의 성적인 억압 도구인 정조대는 당시 아내의 정조를 지키려는 남자의 지나친 속박의 산물이자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정조대는 금속제 판으로 되어 있었으며, 앞뒤 부분에는 생리현상을 처리하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앞쪽에 난 구멍 주위는 가시 같은 날카로운 쇠붙이를 붙여 놓아 피부가 닿지 못하게 했다. 이 정조대의 열쇠는 언제나 남편이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시 가장 떼돈을 벌어들인 직업은 다름아닌 정조대의 열쇠를 복제해 주는 기술자였다고 한다. 남편이 열쇠를 가지고 외출한 사이 여자는 몰래 숨겨둔 열쇠를 꺼내 정조대를 풀고 맘껏 아랫도리를 허용했던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사드는 젊은 여자만을 골라 집에 데려와 침대에 알몸으로 눕히고 채찍을 때리거나 자신이 직접 채찍질을 당하는 등, 집단 변태성행위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 다.

'사디즘'(반대 의미인 '마조히즘'은 자허-마조흐가 묘사한 피학적인 성적 변태를 가르킨 다)이란 말은 바로 사드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활은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수백 가지의 성적 도착행위를 자신의 소설에서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이러 한 퇴폐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속한 사회의 퇴폐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는 사회가 저 지르는 피의 흔적을 도처에서 목격했으므로, '잔학성'이 인간 본성이 가진 충동 중의 하나라 고 생각했다. 사드보다 더한 성도착자는 독일의 피터 퀴르텐이다. 그는 돼지나 양을 상대로 성행위를 벌였으며, 나중에는 동물을 칼로 찔러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며 쾌감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여자를 차례로 칼로 찌르고 망치로 머리를 때려 죽이거나, 목을 찔러 피를 빨아먹는 행위를 벌였다. 그는 '피'를 보고 나서야 오르가슴에 도달했다고 한다. 인간 흡혈귀였던 셈이다.


<전쟁, 원초적 인간 본성의 발현>

20세기 들어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광신적 인종주의와 민족적 히스 테리가 극단적으로 분출한 예이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억압된 원초적 충동은 스스럼없이 발산되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인들은 상대방 나라 여자들의 몸을 서슴없이 더듬고 지 나가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살해와 강간, 약탈과 방화……. 군복을 입는 순간 평상 시에는 생각도 못했던 잔혹한 행위를 태연히 해치우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는 일 종의 '퇴행현상'인 셈인데, 전쟁을 통해 원초적 인간의 본성이 발현된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에서는 독일에 의해 무수한 국가들이 혹독한 비참함과 고통을 맛보았다면, 아시아 대 륙에서는 일본이 독일을 대신했다. 당시 세균부대로 불리는 731부대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중국 중부 지역 일대에 비행기로 페스트가 감염된 벼룩을 살포하거 나 콜레라와 파라티푸스균을 무차별 살포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731부대가 우 물이나 저수지, 강물, 호수 등에 풀어놓은 각종 세균은 무려 130킬로그램에 달했다고 한다.

또 굶주린 포로 3000여 명에게 티푸스균을 주입한 음식물을 먹게한 뒤 고의로 석방시켜 각 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 결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들은 부대에서 생산한 세균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1940년 이후 매년 600여 명의 이른바 마루타를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세균을 주입한 마루타를 마취도 안한 상태에서 메스를 들이대고 인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피는가 하면, 수직으로 반토막을 내기도 했다. 부대 내에는 시체보관용 특수 유리병이 있어 수많은 마루타의 시체를 보관하고 있었다. 시체의 대부분은 중국인과 한국인, 몽골인들이었다. 그들은 또 사람의 눈이 어느 정도 압력을 받으면 튀어나오는가를 실험하기 위해 특수압력실을 설치하기도 했으며, 동상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혹한의 날씨에 마루타의 팔을 얼음물에 담그는 실험도 했다. 가히 악랄함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두번의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마음은 극도로 황폐해졌다. 종말론이 대두한 것도 철학자 베르자예프가 말하듯 "발 밑의 확고한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시련을 받고 있 는 이 악한 세계의 변용"을 외치는 것이다. 칸트는 악마적 존재의 단적인 악의지는 불가능 하다고 믿었지만, 이는 현대에 와서는 이미 타당하지 않다. 사르트르의 견해처럼 '악'이 현대에 와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아주 평범하거나 선한 사실은 더이상 사람들을 자극하지 못한다. 신문과 TV, 잡지는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혹하며, 엽기적인 사건을 원한다. 피냄새가 많이 날수록 더 잘 팔린다. '잔인함과 폭력'이 상품이 된 것이다. 최근 팝계에서 일고 있는 데스메탈(악마주의) 논쟁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 음악에 서의 악마주의 논쟁은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로까지 거슬러오른다. 당시 기독교계에서는 그의 음악을 "아이들을 타락시키는 악마음악"이라고 비판했다.

1970~80년대 앨리스 쿠퍼와 오지 오스본에 와서는 데스메탈이 더욱 논란이 됐다. 쿠퍼는 공연도중 칼로 닭목을 치거나 돼지피를 담은 봉투를 배에 숨겨 칼로 찌르는 엽기적 행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오스본도 무대에서 박쥐를 물어뜯고, 동물의 피를 뿌려댔다. 폭력, 섹스, 마약, 죽음을 소재로 다루는 최근의 데스메탈은 앨범 재킷만 봐도 잔혹하기 그지없다. 탯줄에 목이 감긴 채 거꾸로 매달려죽은 태아, 철사로 입과 눈을 꿰맨 얼굴……. 제목조차 '망치로 짓이긴 얼굴'처럼 끔찍하다. 그러나 이 그룹들은 오늘날 하나같이 '전설적 록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에서의 본격적인 '잔혹함'은 팝보다 먼저 출발하였다. 잔혹함과 엽기적 살인으로 가득 찬 '공포영화'는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사운드가 도래하면서 시작되었다.

 

1920년대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는 구름이 달을 가리자 면도칼로 흰자위 가득한 여자의 눈을 잘라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눈으로 보고 있는 영화에서 눈을 칼로 썰어내는 장면은 무엇보다도 영화에서의 잔혹함이란 더없이 육체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1930년대 토드 브라우닝이 만든 <프릭스>에서는 온갖 기괴한 모습의 기형아들이 등장, 미녀의 신체 부위를 한 부분씩 잘라내 그들과 같은 기형아로 만든다. 공포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드라큐라'를 다룬 작품으로, 프란시스 코폴라의 [드라큐라]가 세계적 성공을 거둔 이후, 1990년대 닐 조 단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까지 드라큐라는 줄곧 헐리우드를 떠나지 않았다. 영화에서의 엽기적 표현은 결국 스플래터 무비라는 난도질 영화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에서는 쉴새없이 시체들이 실려나간다. 주인공은 30분 동안 100명도 넘는 흡혈귀를 풀 깎는 전동기계로 팔다리를 자르고 몸통을 두동강낸다. 이것이 황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영화는 현실의 반영을 임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아마도 현실이 그렇지 않았다면, 최근의 대중문화가 이토록 폭력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성 쥬네>에서 "모든 사건을, 그것이 특히 파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대의 무제 약적 의지의 소산이고,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주기로 결심한 바 있는 임의의 선물로 생각하 라."며, 범죄 및 악의 정당화를 이야기한다. <악마와 선신>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밖에! 당신을 원하지 않는 세계를 거부하라! 악을 행하라.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가를 알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선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쁘면 나쁠수록 더욱 좋 은 것이다. "악은 선의 폐허에서 생기는 무(無)이다."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악은 단지 풍 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시인인 마리네티도 그의 '미래파 선언'에서 악의에 찬 주장을 부르짖는다. "우 리는 세기의 극단에 서 있다. 불가능한 것의 신비한 문을 부숴야 할 때에 우리는 왜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가? 시간과 공간은 어제 죽었다……우리는 전쟁, 군국주의, 애국심, 무정부 주의자의 파괴적힌 힘, 죽인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상, 여자에 대한 경멸을 영광으로 생각한 다."

이러한 생각을 에리히 프롬은 '쇠퇴의 증세군'으로 부른다. 즉 죽음에 대한 사랑과 악성 (惡性)의 자기도취로 인해 "파괴를 위해 파괴하게 하고 증오를 위해 증오하게 하는 증세군" 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파괴를 일삼은 것도 삶보다는 죽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삶이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자는 확실한 죽음 앞에서 흥분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듯 인간에게는 '원초적인 피에 대한 목마름'이 내재해 있는지도 모른 다. 사람들에게 '과연 그런가?'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어느 정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 다.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선과 악 사이에는 무수한 선적인 악과 악적인 선이 존재한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사악한 천사'이거나 '천진한 악마'이다. 모든 시대 중 가장 비인간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인간이 마음 속에서 벌이는 '악마와의 싸움'은 점점 더 유혈이 낭자한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사활을 걸 필요는 없다. 애당초 그것은 결론이 나지 않는 싸움일 테니까.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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