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닭울음 소리 들리는 가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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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닭울음소리 들리는 서남해 끝, 가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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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에서도 서남쪽 끝자락 섬등반도에 자리한 목리마을. 대부분의 집이 폐가로 남았다.

“가시라고 가랑비가 와야 허는디, 있으라고 이슬비가 와부네.” 흑산도에서 하룻밤 신세졌던 여관집 주인이 선창으로 나서는 내게 인사말을 건넨다. 이틀에 한번 들어가는 가거도행 여객선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태우고 지독한 해무 속으로 출항했다. 가거나 말거나 가거도. 옛날부터 뱃길(목포에서 4시간 20분)이 너무 멀어 흑산도나 홍도까지 구경온 사람들도 농담 삼아 가거도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일단 가거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섬 풍경에 푹 빠져 뭍으로 나가는 일이 가거나 말거나가 되기 십상이다. 본래 가거도(可居島)란 이름도 ‘가히 머물러 살만한 섬’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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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섬등반도 풍경. 중국에서 가장 가까워 중국의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거도는 최근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주요 촬영지로도 알려져 뭍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요즘 TV에 나오는 <1박2일>도 얼마 전 가거도를 다녀간 적이 있다. 잘못 알려진 ‘소흑산도’라는 별칭은 일제가 붙여놓은 것으로 잘못된 이름이며, 가거도에서 소흑산도라고 했다가는 매우 불쾌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땅 동쪽 끝이 독도이고, 남쪽 끝이 마라도라면, 서남쪽 끝이 바로 가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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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앞바다의 고기잡이 풍경.

중국과 가까운 탓에 가거도에서는 중국의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3개의 마을(대리, 목리, 대풍리)에 400명 이상의 주민이 사는 결코 작지만은 않은 섬. 흑산도에서도 2시간 30분이나 뱃길을 달려야 하는 가거도는 맑은 날에도 늘 해무 속에 잠길 때가 많아 바다에서는 가거도의 온전한 모습을 만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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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올라오는 후박나무 새잎.

가거도의 비경을 만나려면 대리(큰몰)에서 5킬로미터쯤 떨어진 목리(항리)로 가야 한다. 비탈진 비탈진 해안을 따라 이어진 푸른 바다와 구름과 안개와 적막이 감도는 에움길. 목리 가는 길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퍼드러졌고, 붉고 탐스러운 산딸기도 한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천인 것은 후박나무다. 가거도는 후박나무 섬이다. 우리나라 후박껍질 생산량의 약 70퍼센트가 가거도산이며, 주민의 약 70퍼센트가 후박껍질 채취로 생업을 삼고 있다. 후박나무는 껍질을 벗기거나 베어내면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순이 나와 자라거나 씨가 떨어져 주변에 계속해서 자라는 속성수이다. 한방에서는 후박피를 천식과 위장병을 치료하는 한약재로 사용하거나 염료로도 쓰이며, 목재는 가구나 배의 재료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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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대리에서 만난 후박피 말리는 풍경.

가거도 풍경의 절정은 역시 최서남단 섬등반도와 신안군의 에베레스트라 할 수 있는 해발 639미터의 돌실산을 낀 목리 풍경이다. 마을에서 보면 섬등반도는 목장지대와 같은 푸른 초원의 언덕이지만, 바다 쪽에서 올려다보면 반도를 이룬 해벽은 깎아지른듯한 기암절벽을 이룬다. 반도의 모양은 마치 거북이가 길게 목을 뺀 형국이며, 위에는 해안초소와 폐교된 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 곳은 가거도에서도 서쪽 끝에 자리해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은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목리에는 열댓 가구가 살고 있다. 가거도는 섬이지만 대부분이 험한 산이어서 경작을 할 수 있는 논밭이 턱없이 부족하다. 목리마을도 마찬가지여서 이 곳의 뙈기밭과 텃밭은 거짓말 조금 보태 모두 손바닥만하다. 태풍이 수시로 지나는 길목에 있다 보니, 목리의 집들은 빈집이거나 무너진 집들이다. 목리의 풀밭과 언덕은 온통 염소떼가 점령했다. 이제는 염소마을이 된 듯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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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에 있는 가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교실로 뛰어들어가고 있다.

목리를 떠나올 무렵은 때마침 일몰 때여서 섬등반도 너머로 이 땅에서 가장 늦은 해가 지고 있었다. 안개는 다시 섬을 뒤덮기 시작했고, 결국 붉은 해마저 해무에 잠겨버렸다. 쓸쓸한 일몰! 내가 다시 온 길을 되돌아 대리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저녁이었다. 목리에 비해 대리는 제법 큰 마을이다. 대리의 맨 꼭대기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해 있는데,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학교의 학생수는 2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초중학생을 다 합쳐도 20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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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선착장에서 등대 가는 길의 방파제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아이들.

대리 북쪽 산기슭에는 당집이 한 채 있다. 지금은 새로 시멘트로 집을 지어 놓았지만, 거기에 모신 멍씨할멈 당신만은 옛날 그대로다. 가거도에 멸치잡이가 성하던 시절만 해도 대리에 모신 멍씨할멈 당집에서는 해마다 해상안전을 비는 풍어제 성격의 당제를 지냈지만, 이제는 제례 없이 산신과 용신을 비롯해 지상을 떠도는 130여 위의 무주고혼만을 모시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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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에서 목리 가는 길에 바라본 가거도 바다풍경.

대리에서는 이맘때면 아침이나 낮이나 후박피 말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후박피를 말리던 박성금 할머니(80)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가 논이 있소. 뒤에가 밭이 있소. 우리가 이 바다 끝에서 대한민국 섬 지킴시롱 살고 있어도 이 후박피 안벳겨가꼬는 못먹고 사요. 중국의 닭울음 소리 들린다꼬 하는 여기가 이젠 중국산 후박피 땜시 못배기나요. 이게 소화제에도 들어가고 한약에 감초처럼 들어가는디, 중국산 땜시 가격이 벨로 없소. 평생 이거 벳겨가꼬 사니 이래 손도 다 퉁퉁 부서가지고, 포도시 골벵만 들어가꼬, 우리덜 늙언이나 살지, 젊은 사람덜이야 아그들 교육땜시 어디 여 살겄소.” 가거도에 흔한 게 후박나무라지만, 가거도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다지 후박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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