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모든 것이 푸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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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모든 것이 푸르고 아름답다



당리 언덕에서 바라본 청산도 풍경.

 

뱃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곱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과 들도 다 푸르러 마치 섬에 닿기라도 하면 온몸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다. 예부터 신선의 섬이라 불렸던 청산도. 선착장에 배가 닿자, 마치 신비를 드리우듯 하늘에 햇무리가 떴다. 해를 중심으로 무지개같은 테가 흰빛을 또한번 두르고 눈부신 장관을 펼쳐낸다. 여러 번 청산도에 와 봤지만, 햇무리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을 사람들이 읍리 자운영 꽃밭을 지나고 있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청산도가 영화 <서편제>의 무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서편제>에서 유봉 일가로 나온 김명곤과 오정해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황토길을 신명나게 걸어가던 바로 그 배경이 된 곳이 청산도 당리라는 곳이다. 이 곳은 얼마 전 드라마 <봄의 왈츠>의 주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당리는 항구가 있는 면 소재지 도청리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에는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선 고운 돌담길과 다랑논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특히 이 곳의 다랑논은 뭍에서의 다랑논과는 달리 ‘구들장논’이다.


청산도 도청리 선착장에서 만난 햇무리.


구들장논이란 산비탈이나 구릉에 마치 구들장을 놓듯 돌을 쌓아 먼저 바닥을 만든 뒤, 그 위에 다시 흙을 부어 다져서 논을 일군 것으로, 옛날 척박하고 비탈진 땅을 개척하여 기름진 땅으로 가꾼 섬사람들의 슬기와 개척정신이 배어 있는 삶의 유산이라 하겠다. 구들장으로 논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또한 많은 돌이 필요했다. 본래 청산도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산이 푸르기는 했을지언정 워낙에 산이 많았는데, 그 버려진 산기슭 땅에 논밭을 일구자니 온통 자갈 투성이인지라 돌을 골라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돌이 많은 땅이매 물빠짐이 너무 심하여 ‘무논’의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서 돌로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부어 구들장논을 만든 것이다.


항구에 자리한 주황색 등대 풍경.


청산도의 구들장논은 대부분 산비탈을 일구어 다랑논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경운기나 그 밖의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논이 상당히 많다. 어쩔 수 없이 소와 사람의 힘으로 논갈이를 해야 하는데, 흙의 두께가 쟁기날의 깊이보다 얕아서 ‘배미를 딸 때’(쟁기질)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불편한 조건 속에서도 청산도 농부들은 이모작 농사를 보통으로 해낸다. 청산도에서는 가을걷이를 끝내고 난 논밭에 대부분 보리를 심거나 마늘을 심는다. 물론 봄이 끝나갈 무렵이면 보리나 마늘을 거둔 논밭에 다시 벼를 심거나 고구마, 채소 따위를 심는다.


구들장논에 밭갈이를 하고 있다(위). 청산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보리밭(아래).


흔히 황금 들녘이란 말은 가을에 쓰는 말이지만, 봄철에도 당리 안팎의 들판은 꼭 추수철 황금 들녘을 연상시킨다. “이 보리가 맥주보린디, 여서는 맥주보리 마이 지요. 이게 보기는 좋아도 심든 일이고라. 일일이 낫질로 보리를 베고, 이래 순 손으로 하니께. 기계로 안항께 심든 거여. 인저 또 구덕(구들장논)에 모도 심거야지, 물 대야지. 할 일이 태산 같소.” 유봉 일가가 걸어내려가던 황토 돌담길 옆에 자리한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던 이복남 씨(70)의 얘기다. 청산도에서는 밭가에 담장을 치듯 돌담을 쌓아놓은 모습도 대부분의 밭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척박한 땅에서 골라낸 돌로 쌓아놓은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돌담은 자연스럽게 밭의 테두리를 알리는 노릇과 더불어 가축이나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는 담장의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몽돌해변으로 유명한 진산리 갯돌밭 풍경.


당리 윗마을 읍리에는 ‘독배기’라 불리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몇몇 기록에는 이 곳의 고인돌이 두 개의 무리에 스물세 기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두드러지게 눈에 띠는 것은 세 기의 큰 고인돌이다. 사람들에 따르면 동쪽에 있는 것이 아비 무덤이고, 서쪽에 있는 것은 아들 무덤이며, 부자 무덤 앞에 자리한 것이 어미 무덤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아비 무덤과 아들 무덤 사이에 너댓 개의 돌 무더기가 보이는데, 이는 아비와 아들의 영혼이 서로 드나드는 통로 노릇을 하고 있단다.


도청리에서 지리해수욕장 넘어가는 고개에 자리한 초분(위)과 읍리에서 볼 수 있는 독배기(아래).


독배기가 있는 곳에서 읍리 당산나무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아름다운 자운영 꽃밭도 만날 수 있다. 이 자운영 꽃밭은 외지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섬 특유의 무덤인 초분도 청산도에 남아 있다. 초분이란 주검을 묘지에 묻기 전에 목관이나 대발쌈에 넣어 야산에 안치한 뒤, 짚으로 이엉을 덮어 비바람을 막아주는 임시 무덤으로,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매장 풍습이다. 이런 초분은 도청리에서 지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산기슭에 2기가 남아 있고, 당리에도 관광객을 위해 재현해놓은 초분을 볼 수가 있다.


허물어진 초가집. 초가집의 현실. 


청산도에는 지리 해수욕장과 신흥리 해수욕장과 같은 아름답고 한적한 해수욕장도 있어 섬의 운치를 더해 준다. 신흥리 해수욕장에서 고개를 넘어가 만나는 진산리 갯돌밭도 청산도 바닷가에 있는 일곱 군데의 갯돌밭 가운데 가장 곱고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바닷가에는 달걀만한 갯돌부터 주먹만한 갯돌까지 동글동글한 갯돌 무더기가 잔뜩 깔려 있다. 이 갯돌이 파도에 부딪치며 내는 맑은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도 듣기가 좋다. 사실 진산리 갯돌밭은 일출 명소로도 유명한데, 다도해를 배경으로 솟아오르는 붉은 해의 모습은 일몰로 유명한 지리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풍경에 비길 바가 아니다.


바다가 보이는 당리 언덕에서 보리베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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