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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14 새 잡으러 갔다가 물만 먹고 오지요 34
새 잡으러 갔다가 물만 먹고 오지요
개울가 자갈밭에서 놀던 꼬미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러더니 살금살금 개울로 걸어간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때처럼 대여섯 발자국 가다간
얼음 자세로 몸을 낮추고
다시 예닐곱 걸음 가다간 낮은포복으로 엎드리고.
물새 한 마리 삐비쫑거리며 냇물 돌멩이 위에 앉아 있다.
시선만은 무언가에 고정돼 있었다.
물새(검은등할미새?)였다.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기를 수차례.
드디어 녀석이 개울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개울에 이르러 보니 물새가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위쪽에 한 마리는 아래쪽에,
그러나 둘 다 냇물이 흐르는 물길의 한가운데 살짝 드러난 돌멩이 위에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목표물이 두 마리임을 확인한 꼬미는
갑자기 시선이 분산돼 이쪽 물새가 포르릉 날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저쪽 물새가 폴짝 징검돌을 건너뛰면 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개울 앞에 도착한 꼬미는 바위와 바위 틈새로 아예 몸을 숨겼다.
앞에서 보면 고양이가 거기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은신처다.
은신처에서 물새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채 2~3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살금살금 "새야 거기 가만 있거라..."
꼬미는 한참이나 은신처에 엎드려 있었다.
새를 사냥하려면 은신처를 나와야 하고,
은신처를 나오면 새는 도망갈지 모르고.
꼬미는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은신처에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드디어 꼬미의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냈다.
"저 녀석 눈치 한번 되게 빠르네..."
꼬미를 마주보고 있는 물새가 방향을 바꾸자
꼬미는 재빨리 은신처에서 튀어나왔다.
바로 그때 낌새를 챈 물새도 포릉포릉 날아가 버렸다.
새 사냥이 수포로 돌아간 꼬미.
허탈한 표정으로 녀석은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사냥에 실패한 것이 민망했던 것일까.
녀석은 몇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셨다.
"우이씨 어떻게 알았지..."
그건 마치 ‘난 새 잡으러 온 게 아니고 물 마시러 왔어’ 하는 태도였다.
몇 모금 냉수를 마시고 속 차린 꼬미는
다시 놀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갑자기 ‘새 잡으러 갔다가 물만 먹고 오지요’란 개사곡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공연히 헛걸음만 한 꼬미 녀석.
널찍한 너럭바위에 올라앉아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래 난 물 마시러 왔으니까, 물이나 먹고 가야지..."
아마도 녀석은 나를 핑계거리로 삼을 셈인지,
‘아저씨가 거기서 구경하니까 새가 도망갔잖아요’ 하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이 녀석 어느덧 청소년 고양이로 자랐지만,
몸집만은 아기고양이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저씨가 거기서 사진 찍느라 찰칵찰칵 총소리를 내니까 새가 도망가잖아요."
사실 이 녀석은 전원고양이 식구인 ‘소냥시대’ 다섯 마리보다
20여 일 이상 먼저 태어났지만,
몸집으로는 그 녀석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왜소하다.
저렇게 왜소한 몸으로 녀석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기나긴 엄동설한도 견디고 이렇게 귀여운 미소년 고양이로 성장해 주었다.
고양이별에서 어미인 여리가 이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고맙다 참 잘 자라 주었구나!” 하면서 대견해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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