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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01 구름씨네 고양이 식당 22
구름氏네 고양이 식당
우리집 마당에 고양이 식당을 차린 지도 어언 2년 반이 되었다. 따로 간판을 내건 적도 없지만, <구름氏네 고양이 식당>은 동네에 입소문이라도 났는지 단골이 일곱 마리로 늘었다. 약 한달 전부터 몽당이가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먹이원정을 오면서 식당은 한결 붐비기 시작했다. 몽당이와 아기고양이 세 마리, 몽롱이, 너굴이, 게걸 조로까지 일곱 마리. 뜨내기 손님으로 이따금 몽당이 남편인 꼬리 짧은 고등어와 깜찍이 새끼였던 고등어 녀석도 다녀가곤 한다.
논배미의 초록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몽당이.
여름이 한창인 구름씨네 고양이 식당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다. 주인이 게을러 잡초가 더 많은 잔디마당도 푸르고, 낙엽송이 우거진 뒷산은 초록이 짙어 검푸른 밀림과도 같다. 전망이 좋은 앞자락 논배미에는 벼가 쑥쑥 자라서 눈 시린 녹색의 배경을 드리운다. 과거 우리집에 오던 바람이가 마지막으로 걸어간 꽃다지 방죽은 강아지풀과 망초꽃이 더북하다. 그 ‘바람이의 언덕’으로 요즘에는 몽당이가 아기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먹이원정을 온다. 하루는 마당에 나와 몽당이네 가족의 원정길을 목격했는데, 이건 그림이 따로 없었다. 달빛은 교교한데, 몽당이가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차례로 방죽을 걸어오는 거였다. 멀리서도 풀잎 스치는 소리가 났고, 뒤로는 검푸른 논배미가 달빛에 일렁였다.
몽당이의 새끼였지만, 얼마 전 독립한 뒤로 따로 먹이원정을 오는 몽롱이.
하필이면 몽당이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새끼들을 데려오곤 했다. 한번은 해질 무렵에 새끼들을 방죽 위의 은행나무 그늘에 데려다놓고 혼자서 우리집으로 걸어오는 몽당이를 본 적도 있다. 은행나무 그늘에 남은 새끼들은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숨바꼭질 장난을 쳤다. 그동안 그곳에서 수없이 나무를 타고 놀았는지, 녀석들은 하나같이 나무타기의 달묘가 되어 있었다. 그 높은 은행나무를 거의 3분의 2까지 순식간에 오르내렸다. 먼저 집으로 온 몽당이는 혼자서 배를 다 채우고도 캄캄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한참만에야 요상한 울음소리로 새끼들을 불렀다. 그러자 나무를 타고 놀던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무에서 뛰어내려 한달음에 방죽을 지나 마당으로 건너왔다.
우리집 최고 단골인 너굴이(위)와 너굴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걸 조로(아래).
어두워져야 볼 수 있는 몽당이네 아기고양이들. 녀석들은 유난히 겁이 많았다. 그 어두운 밤에도 내가 거실문만 열고 나가면 무슨 공습경보라도 내린듯 주변의 방공호에 숨곤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손톱만큼씩 경계심이 누그러져 지금은 테라스에서 구경하는 것만큼은 허락을 얻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심할지언정 녀석들이 본래부터 겁이 많은 녀석들은 아닌 듯하다. 한번은 자정이 넘어 거실 창으로 지켜보는데, 새끼 흰노랑이가 마당 소나무를 캣타워인양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난 장마철에는 비 맞지 말라고 밥그릇을 테라스 거실창 바로 아래 올려두었더니, 이 녀석들 밥을 다 먹고 테라스를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집고양이처럼 방충망에 날아든 나방과 딱정벌레를 잡아먹는가 하면 아예 방충망을 타고 중간까지 올라온 녀석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비 맞지 말라고 들여놓은 내 신발을 물어뜯는가 하면, 테라스에 내어놓은 박스에 들어갔다 나왔다 숨바꼭질도 했다.
우리집 마당 파라솔 아래서 그루밍을 하다가 낮잠을 자는 너굴이.
이 좋은 구경을 혼자만 할 수가 없어서 잠을 자러 간 아내를 굳이 불러내 “저것봐 방충망에 스파이더묘가 있어!” 하고 나는 여러 번 호들갑을 떨었다. 몽당이 녀석 수줍은 시골 색시처럼 생겨가지고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테라스에 앉아 있다가 내가 나오기라도 하면 고래고래 집이 떠나갈듯 소리를 질러댄다. “이봐 주인장! 밥 빨리 안내와? 장사 그만하고 싶어? 이러면 애들(세 마리밖에 없으면서) 푼다!” 아예 협박을 한다. 새끼들과는 달리 몽당이는 나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다. 내가 1미터 정도 다가가도 ‘거기서 그만’ 하고 하악거릴뿐, 도망도 안간다. 그런 녀석이 새끼들한테는 어떻게 가르쳤는지, 사람을 무슨 괴물 보듯 한다.
우리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너굴이(위)와 몽당이(아래).
그래도 역시 구름씨네 고양이 식당의 최고 단골은 너굴이다. 너굴이는 하루의 절반 가량을 식당 주변에서 보낸다. 밥을 먹고 나면 테라스에 올라와 쉬기도 하고, 파라솔 그늘에 들어가 그루밍을 하다가 한참이나 낮잠을 자곤 한다. 문제는 이 녀석이 이곳을 아예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는지 몽당이네 가족과 몽롱이에게 사납게 군다는 것이다. 길고양이 세계에서는 대대로 새끼를 밴 임신묘나 육묘중인 어미고양이를 우대하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너굴이는 이 관습을 부정하고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몽당이 혼자 있을 때 쫓아내는 것은 이해하지만, 새끼들을 조랑조랑 데리고 왔을 때조차 이 녀석은 봐주는 법이 없다. 심지어 차 밑에 숨어 있는 새끼들까지 습격해 한밤중 이산가족을 만들곤 한다.
너굴이와 몽당이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번 나는 몽당이네 가족과 너굴이의 밥그릇 싸움에 끼어들어 판관 노릇을 자처하곤 했다. 물론 모든 판결은 몽당이네 가족에게 유리하게 내려졌다. 몽당이네 가족을 앞에 두고 동네가 떠나가라 냐앙냐앙거리는 너굴이에게 발을 굴러 쫓아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면 안되겠니?” 부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녀석의 먹이에 대한 집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고 보면 이 녀석도 불쌍한 녀석이긴 하다. 얼마 전 나는 녀석의 몰랐던 과거를 알고 녀석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녀석은 전원고양이 출신이었다. 과거에 먹다 만 커피잔만 보면 관심을 보이며 잔에 흘러내린 커피를 핥아먹던 녀석이 바로 이 녀석(http://v.daum.net/link/11094702 참조)이었다. 이 녀석 또한 전원고양이 아롱이에게 쫓겨나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었다.
너굴이에게 쫓겨 꽃다지 방죽을 걸어가며 뒤돌아보는 몽당이(위). 방죽 위 은행나무 그늘에서 캄캄해지기를 기다리는 몽당이와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 또 한 마리는 은행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아래).
전원고양이가 사는 전원주택과 우리집 사이에는 공동묘지가 있는 산이 하나 솟아 있다. 그 산을 넘어 이 녀석은 우리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사진정리를 하다가 나는 너굴이가 바로 전원고양이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때도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다, 하긴 했지만, 그 녀석인줄은 몰랐다. 어쩌면 녀석이 먼저 나를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와보니 자주 만나던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녀석은 우리집에 눌러앉은 것일지도. 너굴이에게 밥그릇 싸움에서 패한 뒤로 몽롱이는 발길이 뜸해졌다. 어쩌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찾아오더라도 녀석은 너굴이가 있는지부터 살피곤 했다. 그러다 어미였던 몽당이라도 있으면 녀석은 회포를 풀듯 몽당이에게 몸을 부비며 한참이나 어리광을 부렸다. 하지만 마당에 너굴이라도 있으면 녀석은 알아서 발길을 돌리곤 했다. 몽당이네 가족과 몽롱이에게 가혹하게 구는 너굴이도 그 출현만으로 무서워하는 고양이가 있다. 게걸 조로다. 너굴이는 밥을 먹다가도 조로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만사 제쳐두고 도망을 친다. 조로는 쫓아낼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 너굴이는 조로만 보면 오금이 저리는 모양이다.
좀처럼 행동을 종잡을 수 없는 게걸 조로.
게걸 조로는 몽롱이보다는 자주 우리집을 찾는 편이다. 이 녀석의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어떤 날은 내가 1~2미터 가까이 다가가도 개의치 않다가 어떤 날은 거실문만 열고 나가도 부리나케 도망을 친다. 얼마 전 비가 한창 내리던 장마철에는 테라스에서 밥을 먹다가 내가 거실문을 열자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다가 계단에서 한바탕 미끄러져 얼굴이 먼저 마당 웅덩이에 떨어지는 봉변까지 당했다. 그렇게 급했으면 계속 도망을 가야 할 것을 그 와중에 녀석은 웅덩이 옆에서 갑자기 물에 젖은 털을 닦아내려 그루밍을 하는 거였다. 이튿날에도 녀석은 비가 쏟아지는데, 먹이 동냥을 와서는 비에 젖은 사료를 한참이나 먹고 갔다. 테라스에는 방금 내놓은 뽀송뽀송한 사료가 있는 데도. 그래도 이 녀석 길고양이계의 전통과 관습을 알고 있는지 몽당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올 때면 금방 먹기 시작했는데도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종종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의리가 있는 고양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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