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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6 안녕 봉달이는 고마웠어요 189

안녕 봉달이는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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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봉달이는 고마웠어요




이 땅에서 고양이로 태어난 이상
냉대받고 학대받는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절대권력자라고 여기는 한
고양이에게 세상은 언제나 안전한 곳이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에 대한 나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5월 말 마지막으로 찍은 봉달이 사진.

며칠 전이었다. 내가 대문에 나앉은 달타냥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곳을 지나던 이웃 할머니가 말하기를, “저 놈의 괭이 새끼 죽여도 시원찮어. 텃밭을 얼마나 빠대는지... 저런 괭이가 둘이여 둘.” 하면서 짚고 있던 지팡이를 냅다 휘두르는 거였다. 그 할머니, 달타냥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 내가 본 것만 벌써 세 번째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머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거기서 내가 뭐라고 했다간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낙인찍힐 게 뻔할 테니까.

최근 이웃마을에서도 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고양이가 텃밭을 파헤치고 그곳에 오줌을 싼다는 이유로 한 아주머니가 지난 봄 텃밭 인근에 쥐약을 놓았다는 것이다. 쥐를 잡기 위한 쥐약이 아니라 고양이를 잡기 위한 쥐약이었다. “저 뒤에 고양이가 그래서 죽은 거잖아요.” 나는 혹여 그 고양이가 ‘봉달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사실 어느 날부턴가 봉달이를 만날 수 없었고, 벌써 달포가 넘었다. 봉달이가 살던 마당집에 여러 차례 들러보았으나, 농사가 바쁜 철이어서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음에 물어보지, 하면서 봉달이에 대한 안부를 뒤로 미루고 있었다. 주인을 만나서 확실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동네에서 쥐약을 놓은 사람이 있고, 그 쥐약을 먹고 죽은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쥐약을 놓았던 사람은 텃밭 인근에 사는 여울이와 여울이가 낳은 새끼들에게 사료를 주지 말라고, 그 녀석들 한번 더 눈에 띄면 또 쥐약을 놓겠다며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를 쳤다고 한다. 오죽하면 제보자가 나에게 여울이 새끼들을 어디 입양보낼 수 없겠느냐며, 저러다 새끼들 다 죽게 생겼다며, 도움을 요청했을까. 얼마 전 ‘은비’라는 고양이를 폭행하고 10층에서 던져버려 숨지게 한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지만, 은비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시골에서는 고양이를 죽이기 위해 쥐약을 놓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래저래 길고양이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천대받기는 매한가지다.

엊그제 사료 배달을 갔다가 길에서 드디어 봉달이가 살던 마당집 할머니를 만났다. “여기 살던 고양이 한 마리 안보이던데, 어디 갔나요?” “몰러유 나두. 어느 날 갑자기 안보이더라구. 어디로 간 건지, 죽은 건지. 없어져서 안보이니 알 수가 있나.” 결국 봉달이가 살던 마당집에서조차 봉달이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폐철길 언덕으로 졸졸 따라오는 덩달이게 물었다. “봉달이는 어디 간 거냐?” 언제나 함께 단짝을 이뤄 다니던 녀석이었다. 함께 논두렁을 뛰어다니고 철길 언덕을 쏘다니고 개울가에서 점프를 하며 놀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달포 넘게 덩달이는 봉달이 없이 혼자서 그곳을 배회하고 있다. 그렇게 봉달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마당고양이가 영역을 옮겨 어디론가 떠났을 리도 만무하다.

아무래도 쥐약 먹고 죽은 고양이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꼭 그래야 했나. 기어이 쥐약을 놓아서 고양이를 잡아야 했나. 텃밭을 파헤친다고 고양이를 죽일 것까지 있었을까. 우리가 본래부터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은 아니지 않았는가. 본래 옛날 어른들은 콩을 심을 때도 꼭 ‘세 알’씩을 심었다.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이 먹고. 그렇게 콩 세 알도 새와 벌레에게 나눠줄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가을에는 익은 감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몇 개씩 남겨놓을 줄 알던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봉달이가 자주 가던 개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봉달아! 지켜주지 못해서.

고양이답지 않게 물가에서도 잘 놀고 개울을 점프하던 고양이.
단짝 고양이와 함께 눈밭을 뛰어다니고, 눈이 잔뜩 묻은 몸으로 발라당을 하던 고양이.
금낭화를 좋아했고, 철쭉 꽃밭에서 놀기를 좋아했던 고양이.
여울이와 당돌이에게 마실 가서 넉살좋게 앉아 있던 고양이.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했던 고양이.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했던 고양이.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겠구나.
안녕, 봉달이는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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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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