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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07 고양이의 길, 그 길에서 58
고양이의 길, 그 길에서
누구에게나 가야 할 길이 있다.
그 길이 외로울 수도 허무할 수도 있다.
어떤 시인의 <뼈아픈 후회>처럼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고 탄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그런 후회가 남을지도 모르겠다.
여행가로 10년을 넘게 떠돌았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했다.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서
나는 여행 가지 않는 여행가가 되었다.
내 수첩엔 여행 대신 이제 고양이가 적혀 있다.
차마고도나 알타이에 대한 기억은
방랑고양이의 발자국과 함께 희미해졌다.
길 위의 고양이들.
고양이길 혹은 길고양이.
어느 날 그 길에서 나는 전혀 다른 여행을 만났다.
길고양이의 연대기와도 같은 묘생의 기록.
그들의 눈빛은 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발 우리를 해치지 말아요!”
그들의 갈구를, 그들의 슬픔을, 그들의 절망을
그러나 때때로 그들의 맑음과 갸륵함을
나는 돌아앉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첫 번째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사실 그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날것의 기록인 <길고양이 보고서>에만 어느덧 750만 안팎의
기록적인 방문자가 다녀갔다.
사실 <길고양이 보고서>를 통해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길고양이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솔직히 그것을 통해 길거리 고양이들에게 나눠줄 사료값이라도 마련해보잔 생각도 없진 않았다.
물론 최근에는 다음뷰의 외면으로 베스트에 오르는 기사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꾸준한 단골 독자의 응원이 지탱의 힘이 되고 있다.
언제 블로그 문을 닫을지, 아니면 이사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는 계속해서 충실한 길고양이의 대변자가 되려고 한다.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나는 여기까지 왔다.
첫 번째 고양이책을 내고 이제 두 번째 고양이책 출간(12월 중순 이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첫 번째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1월)와 어린이 길고양이책(내년 상반기)도 준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책이나 블로그에 옮기지 못한 말못할 사연도 많았다.
예기치 않은 길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고양이편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되는양 그 하찮은 일을 하느냐고 핀잔도 주었다.
강바닥을 파헤쳐 이 땅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삽질 따위가 거창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하찮은 게 좋다.
그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존중받는 세상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호전적이고 파괴적이고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부류의 사람들이 세상에 가하는 폭력보다는
오로지 살기 위해 분투하는 고양이의 모습이 더 갸륵해 보인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길이 있다.
그 길은 아름답지도 예쁘지도 않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 길은 인간의 길보다 숭고해 보인다.
시골로 영역을 옮긴 뒤 지난 2년 가까이
나와 인연을 맺은 고양이도 어느덧 50여 마리에 이른다.
그 중에 몇몇은 고양이별로 영역을 옮겼고, 몇몇은 행방불명되었다.
까뮈, 바람이, 봉달이... 그리고 여리, 여울이.
가만히 나는 녀석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차라리 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훨씬 속 편한 여행가로 살았으리라.
그러나 알고는 차마 이곳을 못떠나겠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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