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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16 고양이가 가을꽃을 만났을 때 30
고양이가 가을꽃을 만났을 때
가을이 깊어서 길가에도 야산에도 가을꽃이 한창이다.
국화와 구절초는 만개했고,
코스모스와 고들빼기꽃은 끝물이다.
조금씩 단풍도 들기 시작해서
산자락이 컬러차트를 펼친듯 울긋불긋하다.
"너도 냄새 한번 맡아볼래!" "사료 냄새보다 못하구만..."
날씨는 제법 선선해졌다.
추운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고양이들도 이런 날에는
볕이 따뜻한 양지녘을 찾게 된다.
엊그제는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어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가는데,
참깨밭 볕바른 둔덕에 앉아 있던 파란대문집 달타냥이 아웅아웅, 먼저 아는체를 한다.
"이런 걸 원하는 건가! 자 어디 한번 찍어보시든가!"
아침부터 이 녀석이 나를 불러세운다.
“나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보자!” 하고 내가 집으로 종종걸음을 치자
이 녀석 기어이 우리집까지 졸졸 따라온다.
“이봐 친구 사료 한 사발 하자고 꼬실 땐 언제고...”
녀석의 우리집 첫 방문.
녀석은 넉살좋게 마당을 기웃거리더니 먹이를 내놓으라며 고성방가다.
"왜 먹지도 못하는 풀을 자꾸만 찍어대는 거얌!"
집까지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나는 첫 방문 기념으로 캔을 하나 따 주었다.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녀석은 캔 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온 뒤에도
녀석은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갈 생각이 없다.
하는수없이 나는 녀석을 파란대문집에 데려다 주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만 좀 찍고 가자고...할머니가 기다린다고..."
이 녀석 이제 나를 신뢰하게 되었는지,
가는 동안 자꾸만 가랑이 사이를 오가며 부비부비한다.
가다 말고 발라당은 또 왜 하는지.
길가에 핀 국화 보고도 냥냥거리고,
남의 집 화단에 핀 구절초가 예뻐서 내가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그건 또 왜 찍느냐며 참견이다.
"꽃보다 사료!"
이래저래 파란대문집 가는 길이 더디다.
고작해야 우리집에서 100여 미터에 불과한 거리.
내가 코스모스를 구경하면, 녀석도 코스모스를 구경하고
내가 왕고들빼기꽃을 찍고 있으면
녀석도 어떻게든 나와 보려고 그 앞을 기웃거린다.
급기야는 가던 길에 국화꽃 더미를 보고는 그 앞에 얌전하게 앉아서
포토 타임까지 선사한다.
"나도 왕년에 나뭇잎께나 씹어 봤지...!"
사실 녀석에게 가을꽃은 대수롭잖은, 그저 그런 못 먹는 풀일 따름이다.
그 먹지도 못하는 풀을 내가 자꾸 관심 갖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이 녀석 속은 짜증도 났을 법하다.
집 나온 지 30분이 넘어서야 파란대문집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해서도 혹여 다시 나를 따라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집안에서 할머니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자
녀석은 냉큼 할머니에게로 달려간다.
달타냥에게 장난 좀 쳤다. 단풍냥이가 따로 있나. 등짝에 단풍 하나 척 붙이니, 달타냥이 단풍냥이 되었다.
길가에 핀 가을꽃들은 여전히 고운 자태로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 멍이는 올해도 단풍구경 갔을까::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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