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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0.05 길고양이의 길 (24)
길고양이의 길
빵부스러기처럼 버려진 길의 신비를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너는 여기까지 왔다.
그 길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때로 나는 길 위에서 가장 밑바닥의 생까지 내려간 너를 보았다.
어떤 길은 칼날과 같았고,
어떤 길은 벼랑과 같았다.
저 길 끝에 무엇이 있을까, 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의 부박한 길만이 너의 중요한 현실이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너는 길을 나서지만,
그 길은 언제나 죽음과 더 가까웠다.
어떤 바퀴는 순식간에 한 고양이의 일생을 무너뜨렸다.
누군가는 너에게 ‘도둑고양이’의 누명을 씌웠고,
누군가는 너에게 인간이 저지른 생태계 교란의 죄를 전가했다.
누군가는 막대기를 들었고, 돌을 던졌다.
하지만 너는 세상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겨를이 없다.
언제나 살아남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언제나 위험했고, 언제나 쫓겨야 했으므로.
사는 게 전쟁이고, 일생이 전투와도 같았다.
그러나 너는 그 부박하고 힘겨운 길 위의 날들을
원망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너는 그 길을 음미했다.
달밤에 담장에 올라앉아 꼬리를 쓰다듬을 때면
무사히 하루를 살았다는 안도감에 저절로 휴~ 하고 한숨이 나왔다.
때때로 너는 미로와도 같은 골목의 묘미를 즐겼다.
적당히 구부러져 집과 골목을 감싸는 길의 굴곡을 보듬었다.
길에서 뒹굴었고, 길에게 입맞춤했다.
어느 날 그 길에서 나는 보았다.
길 위에 납작 엎드린 가장 낮은 생을.
가장 낮은 갸륵함을.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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