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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04 장마철 고양이 어떻게 비를 피할까 21
장마철 고양이 어떻게 비를 피할까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계속되는 집중호우와 폭우로 여기저기서 물난리가 났다.
침수와 산사태가 이어지고 수확을 앞둔 농작물에도 피해가 컸다.
우리집 앞 개울가 도로 또한 흙이 쓸려가고 땅이 내려앉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곳에 당분간 차를 주차할 수도 없게 되었다.
폐차장 찌그러진 승용차 안에서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를 데리고 비를 피하고 있는 순둥이.
폭우로 인한 피해는 고양이도 예외가 없다.
어떤 고양이는 둥지를 잃었고, 어떤 고양이는 새끼를 잃었다.
장마철에 고양이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은신처이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고양이에게는 이런 곳이 더욱 절실하다.
며칠 전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잠시 장맛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나는 부랴부랴 사료를 챙겨
한 바퀴 급식 배달을 다녀왔다.
장마철 폐차장을 떠나 옛 축사자리로 다시 돌아온 꼬미. 재미와 소미는 보이지 않는다.
꼬미와 재미, 소미가 새롭게 터를 잡은 폐차장에 도착했는데,
녀석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은신처로 삼았던 망가진 4륜구동 차량 한 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렇잖아도 장마가 시작될 무렵부터 꼬미 일행은 만난 적이 없었다.
대신에 구석에 남겨진 폐승용차 속에서 고양이가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살폈다.
왕초고양이 흰노였다.
이 녀석이야 원래 영역이 따로 없고, 모든 곳이 영역이나 다름없는 왕초고양이이므로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으나,
정말 이상한 것은 녀석의 품에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미고양이도 아니면서 아기고양이를 품고 있는 왕초고양이의 모습은 웬지 낯설었다.
미랑이에게 쫓겨 골목을 내달리는 꼬미.
내가 그 낯선 모습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꺼내자
흰노 녀석은 황급히 차에서 뛰어내려 차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러자 뒤쪽에 앉아 있던 어미고양이가 흰노의 자리로 가 앉았다.
가만 보니 순둥이였다.
그러니까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는 순둥이의 새끼였던 것이다.
당연히 흰노는 이 녀석들의 아빠였다.
빗줄기가 가늘어져 가랑비처럼 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빗줄기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순둥이는 새끼들을 데리고 비를 피해 이곳 폐차장으로 온 거였다.
나무 울타리 사이로 몸을 피한 승냥이.
본래 이 폐승용차는 재미가 은신처로 사용하던 거였다.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4륜구동에는 주로 꼬미와 소미가 은신해 있었는데,
순둥이가 장마를 앞두고 새끼를 이곳으로 데려오자
꼬미네 일행은 순둥이에게 순순히 이곳을 물려준 듯했다.
순둥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기 전부터
순둥이와 꼬미네 일행은 꽤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사이좋게 지프차 아래서 일광욕도 즐기고,
함께 밥도 먹는 절친이었던 것이다.
그런 절친끼리 무력으로 영역다툼을 벌였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미랑이. "근데 왜 꼬미는 저렇게 도망을 치는 걸까요. 지 엄마 여리가 내 동생이었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어쨌든 순둥이는 아기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폐차장의 버려진 승용차 속에서 장맛비를 피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둥이네 아기고양이들은 두려움에 바르르 떨고 있었고,
비가 와서 밖으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나는 철망으로 된 담장 아래 아기고양이 몫까지 한 보따리 사료를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이곳을 떠난 꼬미네 일행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꼬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웃마을의 골목 어디에서도 꼬미네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한 군데 짚이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밭으로 변한 옛 축사자리였다.
너굴이 콧등에 낙숫물 떨어진다. "좀 올라가도 되나요?" 이건 옛날 바람이가 즐겨 하던 포즈.
밭가에 농기구와 비닐, 물통으로 쓰는 커다란 고무함지 등을 쌓아놓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집기 아래 사료를 한 봉지 내려놓으려는데,
어디선가 냐앙~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밭가에 엎어놓은 커다란 고무함지 속이였다.
고개를 숙여 그 안을 들여다보자 익숙한 얼굴 꼬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동안 꼬미는 저 속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던 거였다.
"비 참 지긋지긋하게 오네요."
녀석은 꽤 오랫동안 굶어 왔는지
사료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밭가에 미랑이가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꼬미에게는 이모가 되는 사이였지만,
꼬미는 이모를 알아보지 못했다.
미랑이가 나타나자 곧바로 녀석은 밭가 철망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줄행랑을 쳤다.
하필이면 그때 골목 저쪽에서 승냥이 녀석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꼬미는 승냥이를 보고 또 방향을 바꿔 길가의 집마당으로 몸을 숨겼다.
승냥이는 승냥이대로 놀라서 나무 울타리 아래로 몸을 피했다.
"아저씨! 제가 잠자던 둥지가 침수됐어요. 어쩌죠?"
길고양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가 눈이 오고 혹한이 몰아치는 겨울이라지만,
줄기차게 비가 오는 장마철도 그에 못지 않다.
특히 이 시기에는 새로 태어난 아기고양이들이 많아서
상당수의 아기고양이가 비 온 뒤의 무지개다리를 건너곤 한다.
우리집의 단골고양이 몽당이와 몽롱이, 너굴이도 장마철이 야속한 건 마찬가지다.
참 희한한 건 이 녀석들
비가 와도 매일같이 먹이원정을 온다는 것이다.
특히 몽당이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비를 쫄딱 맞고 우리집을 찾아오곤 한다.
진흙탕을 달려서 전원주택으로 가고 있는 고래.
요즘 이 녀석 아기고양이를 키우는 중이어서
젖을 먹이려면 어떡하든 잘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엊그제 자정 무렵에는 몽당이가 처음으로 아기고양이를 내게 선보였다.
그 전에도 한밤중에 가끔 아기고양이를 이끌고 우리집으로 먹이원정을 오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에게 아기고양이를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몽당이네 아기고양이는 모두 세 마리였다.
비가 오는 밤중이라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중에 한 마리는 하얀 바탕에 노랑무늬가 뭉게구름처럼 떠 있는 멋진 녀석이었다.
전원주택에서 쫓겨난 고래와 산둥이가 벚나무 언덕길에 앉아 있다. 장마 이전의 풍경이다.
나는 몽당이가 자신의 아기고양이를 나에게 소개한 게 기특해서
특별히 캔밥을 만들어주었는데,
그것을 먹는 아기고양이 세 마리,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앙냠냥냥 냥냥냠 하면서 연신 ‘맛있는’ 소리를 낸다.
몽당이 녀석, 이제 나와 친해졌다고 여기는지
내가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저도 테라스에 올라와 2~3미터 거리를 두고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비를 피해 테라스 위로 올라와 한참을 피신해 있다가 가기도 한다.
너굴이 또한 넉살이 좋아서 비가 오면 아예
우리집 테라스를 제 둥지처럼 사용한다.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을 찾아 한두 시간쯤 낮잠을 자거나
멀뚱하게 앉아서 비 구경을 하기도 한다.
빗길을 달려 먹이원정을 온 고래가 옛 식구들과 어울려 할머니가 내어준 어묵을 먹고 있다.
어쩌면 요즘 가장 힘든 시기를 겪는 건 전원고양이의 무리에서 쫓겨난
고래와 산둥이일지도 모른다.
전원주택에 머무를 때는 비가 온다고 특별히 걱정한 적이 없었다.
테라스나 창고가 모두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만 오면 안절부절이다.
산둥이는 그나마 우사에서 비를 피할 수 있지만,
덤불 속을 은신처로 삼은 고래는
비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해서 녀석은 비가 오면 오는 비를 다 맞고 진흙탕을 걸어서
전원주택까지 올라오곤 한다.
이 녀석 사산을 한 뒤로 다시 임신을 했는지 요즘 배까지 불룩해 있다.
다행히 요즘에는 아롱이도 바깥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는지라
고래는 전원주택에서 밥을 먹고 비를 피하다 가곤 한다.
이럴 때 모르는 척 하고 슬쩍 전원주택에 들어앉아도 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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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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