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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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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인도에서 온 안와르(사진 왼쪽) 시인과 네팔에서 온 밤데브 시인(사진 오른쪽).


지난 8월 31일 대학로 <책읽는사회만들기> 강당에서 인도 케랄라주에서 온 시인 안와르 알리(Anvar Ali)와 네팔에서 온 시인 밤데브 샤르마(Bam Dev Sharma) 씨를 초청(주최: 인도를생각하는예술가모임)한 작은 강연회가 열렸다. 안와르는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글을 서울신문에 실었던 장본인(사실 그는 힌두교가 아닌 이슬람의 전통 속에서 자랐다)이기도 하며, 케랄라 주의 말레이얌어와 영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밤데브 또한 영어와 네팔의 언어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써 둘다 문화관광부가 마련한 ‘문화동반자사업’과 한국문학번역원이 운영하는 작가초청 교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약 6개월 동안 한국에 체류할 예정인데, 그동안 민족문학작가회의 국제위원회가 마련한 만해마을 문학축제 강연(세계 작가와의 대화)을 비롯해 크고 작은 모임에서 한국의 작가들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벌여왔다. 이들은 오는 11월 7일부터 전주에서 열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AALF)>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문학


밤데브: 내가 지금 한국에 와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나로서는 특권처럼 여겨진다. 한국의 작가들은 대부분 사회적 관심사에 민감한 작가들이 많은 것같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으로부터 탈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네팔에서는 나이 든 시인이 대부분인데, 한국은 젊은 시인들과 작가들이 풍부하다. 이들 젊은 시인들에게는 과거의 사회적인 문학의 유산이 좀더 다양하게 확장된 세계로 진전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에게 시는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다" 네팔의 밤데브 시인.


안와르: 한국은 과거에 일제 치하로부터 파시스트적인 언어 억압과 격심한 문화 탄압이 있었다고 들었다. 과거의 그런 이중언어주의에 대해 반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언어국가에서 온 나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작가들이 고집하는 다언어로부터 닫혀 있는 폐쇄성이 아쉽다. 아직 한국의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어로 번역된 한국의 시인은 고은 시인을 비롯해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의 젊은 시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국의 좋은 시들을 영어와 말레이얄람어로 번역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난 50년대 케랄라 주의 한 유명한 시인이 한국전쟁을 읊은 시가 있었다. 옛날에는 막연하게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그렸다는 것을 동경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는 맹목적인 좌파주의 시였다. 내용이 이런 거다. 남한 민중은 짐승 같고, 잔인한 남한 군대에 피해를 입은 위대한 공산당이 메시아 소련군과 함께 남한 민중을 해방하고자 훌륭하게 싸웠다는.... 말레이얌어로 쓴 이 시는 정치적으로 부정확했다. 그것은 무지에서 온 것이다.


그들의 아시아문학-문학의 배경


밤데브: 히말라야 지역에는 다양한 카스트가 존재한다. 지역마다 독특한 색깔과 민속적 전승을 강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나 또한 히말라야의 민속적이고 지역적인 것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히말라야에는 네팔 언어를 잘 말하지 못하는 어족(語族)이 있고, 네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소수족의 문학은 급격히 위축, 감소하고 있다. 고유성을 잃어가는 이런 현실에 대해 많은 시인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네팔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마오이스트 그룹에서는 언어 일원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네팔에는 하나의 언어를 주장하는 그룹과 다양한 언어를 써야 한다는 그룹과의 갈등이 존재한다. 각 카스트마다 고유한 그 지역성과 현실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네팔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시문학이 강세이다(이 부분에서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시인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팔의 시는 굉장히 음악적이고, 리드미컬하다.


네팔에서도 시는 크게 ‘거대 서사’와 ‘릴리시즘(서정시)’으로 대별된다. 전통적인 생각은 전승돼온 릴리시즘의 음조를 지키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요즘의 젊은 시인들은 그것에 강한 반기를 들고 있다. 이런 전통은 구닥다리다, 라고. 그들은 언어의 또다른 차원을 발견하고자 애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젊은 시인들은 구조주의적인 경향과 실험주의적은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신선한 시도일지언정, 주류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좀더 많은 한국의 시인과 이야기하고 싶다" 안와르 시인.


안와르: 나는 인도 남부 케랄라 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고대로부터 식민주의의 강한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 예로 케랄라 주에서는 원주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케랄라에는 예수가 죽은 지 50년 만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로마보다 먼저. 그리고 불교와 이슬람교, 힌두교가 계속해서 밀려들어왔다. 8~9세기에 이르러 샹그리쟈가 이 지역에 힌두교의 전통을 확립했다. 그러나 불교와 이슬람교의 강한 영향은 아직까지 여전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유럽 인문주의와 맑스주의까지 우리 지역은 지구상의 모든 주의와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50년대 초반에는 공산주의가 민주적인 권력을 장악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케랄라 주에서는 광신적인 좌파주의가 성행하고 있고, 작가들 또한 좌파적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사적인 담론들


안와르: 한국의 시인들을 좀더 많이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에서 이제 석달째인데, 지금까지는 그럴 기회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그냥 내가 고은의 시를 내가 사는 지역의 말레이얄람어로 번역한 것인데 한번 읽어 보겠다(그의 수첩에는 두어 장에 걸쳐 고은의 시가 말레이얄람어로 번역돼 있었다). (이후 생략)


안와르 시인이 수첩에 말레이얄람어로 적은 고은의 시.


밤데브: 나는 우연히 시를 쓰게 됐다. 준비도 없었고, 열의도 없었다. 영어를 전공하며 만났던 시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시를 쓰라고 권유했고, 내가 쓴 시를 응원했다. 나에게 시는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다. 그건 예측불가능하고, 하나의 순간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순간을 읽는 행위다. 플래시 라이트처럼(밤중에 플래시를 비추면 비추는 곳만 환하게 볼 수 있다).


네팔의 왕권은 어디로 가는가


밤데브: 현재 미국과 인도의 중재자들은 축소된 형태로라도 왕권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네팔의 마오이스트들은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불행한 역사가 있었고, 한국처럼 식민주의와 다름없는 시대가 있었다. 이후 왕권이 오늘날까지 네팔을 통치해 왔지만, 이제 전혀 다른 통치 구조가 불가피하다. 지금은 그것의 이행기라고 본다.


네팔에는 무려 360개의 정당이 있다. 물론 정부를 구성할 능력이 있는 정당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마오이스트는 현재 이들 정당과 연립처럼 정부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계속해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정권과 통치 구조가 바뀐다고 해서 네팔에 존재하는 불가촉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마오이스트 그룹과 다른 정당이 연립해 연정에 들어설 것이 확실하고, 11월 22일 국민투표를 거쳐 새로운 정부 구성이 이뤄질 것이다. 왕권이 존속할지도 그때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안와르의 시 한편


지하드 Jihad


10파이자를 주고 빌린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바크리드(이슬람 축제) 전날 밤에

고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브레이크도 벨도 없었고

밤은 버팔로처럼 잠들어 있었고

꼬리처럼 길은 이따금

씰룩거리며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급한 내리막길이네! 오 알라여!

악몽이라도 꾸는 건가?

칼처럼, 아니

칼날의 날카로움처럼 우리가 지금

그렇게 내리꽃히는 건가?


야간급행버스!

지리학 선생이 쉿쉿 소리내며 말하던 그 운석인가?

무크라(버팔로)인가?

허..

그렇게 우리는 그날의 주요뉴스(9.11 테러)를 접했네.


밤데브의 시 한편


탁자


혼인을 치룬 첫날에

그들은 침실 한가운데에

마호가니 탁자를 들였다

둘다 말했다

“굉장한 탁자야”

몇 달이 지나자

그들은 그 탁자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둘은 그 탁자를

침실 한 구석으로 치우기로 했다

한두 해가 지나자

그 탁자는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음이 더 확실해졌다

방은 비좁았는데 그것은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했다

그들 둘은 그 탁자를

방에서 치워버리기로 했다.


* 글/정리/사진: 이용한, 시 번역/통역: 레베카 김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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