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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2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 거야! 34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 거야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우리 동네에 내린 눈은 예년과 비슷하게 내렸지만,
추운 날씨 탓에 2월 말까지 잔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겨울 길고양이에게 추위와 눈은 일상이었습니다.
눈이 와서 쌓인 눈을 바라보는 재미.
지난 가을 어미를 잃고 애타게 울던
꼬리 짧은 고양이 꼬미는 언젠가 블로그에서 밝혔듯이
할머니 고양이 대모에게 의탁해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대모 또한 지난 여름에 새끼를 낳아
처음에는 세 마리를 데리고 먹이원정을 다녔으나,
겨울이 시작되고 얼마 뒤 한 마리를 고양이별로 보내야 했습니다.
장독대에 올라앉은 재미(위). 늘 단짝처럼 붙어다니는 재미와 꼬미(아래).
그렇게 자식이 떠난 자리를 꼬미가 대신했습니다.
대모는 자식만큼 꼬미를 보살폈고,
꼬미는 엄마처럼 할머니를 따랐습니다.
대모의 새끼인 재미(노랑이)와 소미(고등어, 소심한 성격이라서 소미)도
꼬미를 친형제처럼 대했습니다.
"발이 시려워요!"
함께 장난도 치고, 함께 먹이원정도 가고, 함께 눈밭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꼬미는 소미보다는 재미와 어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장난을 칠 때도 유독 꼬미와 재미가 어울리고
소미는 소심하게 뒤에서 구경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장독대에 앉아 있는, 그리고 그 앞의 은행나무를 긁어보는 소미.
어디를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꼬미는 대모가 아니면 꼭 재미와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꼬미와 소미의 사이가 안좋은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옛 축사 앞집 한뎃부엌 아궁이에서
꼬미와 재미, 소미가 사이좋게 어울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소심하다구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또 얼마 전에는 논자락 짚더미에서
세 마리가 뒤엉켜 노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겨울이 한창일 무렵 대모네 식구는 옛 축사자리로 다시 이사를 왔습니다.
옛 축사자리는 이제 텃밭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철망 담장 아래엔 옛날에 쓰던 집기와 농기구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대모네 식구가 이사한 새 보금자리입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앉아서 봄을 기다려요."
녀석들은 높이 쌓아놓은 모종포트 위에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경운기 짐칸에 들어가 낮잠을 자곤 합니다.
재미와 소미, 꼬미에겐 이곳이 낯선 공간이겠지만,
대모에겐 그리움과 아픔이 동시에 서린 추억의 장소입니다.
축사가 사라진 자리에 밭이 들어서고
오래전 떠났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돌담집 장독대는 대모네 식구들의 쉼터.
모르긴 해도 11마리의 대가족이 올망졸망 모여 살던
그 옛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겠지요?
대모는 겨울이 깊어지고 눈이 여러 번 내리면서
아마도 급식소에서 먼 영역의 둥지를 떠나야 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폭설이 내리면 푹푹 빠지는 눈밭을 한참이나 걸어와야 급식소에 올 수 있었으므로
그 원정길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눈밭에서 옹기종기 사료를 먹는 녀석들(위). 대모와 소미(아래).
반면 옛 축사자리는 급식소에서 100여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으니
급식차 엔진소리만 듣고도 금세 찾아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래저래 끝날것 같지 않았던 겨울은
그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식을 기다리는 대모와 소미(위). 옛 축사자리에 모인 온 가족(아래).
몇 번 더 눈이 내리고 추위가 닥칠지 모르지만,
엄연히 봄은 코앞까지 와 있습니다.
겨우내 녀석들을 보면서 속으로 나는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 거야!” 하면서 영화제목같은 대사를 되뇌곤 했는데,
기원처럼 녀석들은 훌륭하게 이 겨울을 견뎠습니다.
참으로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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