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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22 평사리 최참판댁에 찾아온 봄 10
평사리 최참판댁에 찾아온 봄
하동 평사리에 봄이 와서 매화 가지마다 매향이 가득하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을 벗어나 악양 평사리로 길을 잡는다.
알다시피 이곳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서희가 아들 환국과 함께 거닐며 해방의 기쁨을 맞았던 강둑은
넓고 곧은 아스팔트 길이 된 지 오래다.
악양 개치나루에서 배를 타고 화심리를 오르내리던 배도
더 이상 오르내리지 못한다.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악양의 너른 무딤이들 풍경.
다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너른 들판(무딤이들)이
악양의 넉넉함을 대변해 준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무려 25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는 <토지>에서 평사리와 간도, 서울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무대로
삶에 대한 끈질긴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활짝 핀 매화 너머로 최참판댁 기와지붕과 별당채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박경리 선생은
한번도 평사리 땅을 밟아보지 않고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평사리 민초들의 삶을 그려냈는데,
놀라운 것은 소설에 나오는 그네들의 삶이
실제로 평사리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하긴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어디에선들 삶이 비슷하지 않았으랴.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아온 상춘객들.
이렇게 역사적인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평사리에는
현재 소설 속에 나오는 최참판댁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담은 초가와 시장판 등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평사리 전체가 이제는 <토지>의 세트장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와 담장 너머에도 초가 정자 너머에도 매화가 흐드러졌다.
평사리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은 본래
중국 악양의 아름다운 경치와 비슷하다 하여
악양이란 땅이름이 붙었다.
또 평사리 강변 모래밭도 금당이라 하여
역시 중국 악양의 땅이름을 빌려 왔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의 영춘화(迎春花)는 매화보다 먼저 피었다.
악양의 넓은 들을 ‘무딤이들’이라 하는데,
이 또한 중국 땅 안의 바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예부터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만한 기름진 땅이었던 탓에
악양은 그리 평온하지가 못했다.
악양 들판을 놓고 신라와 백제가 언제나 물고 물리는 싸움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최참판댁의 멋진 와편 굴뚝.
그 때는 악양을 차지한다는 것이 곧 섬진강을 차지하는 것이요,
섬진강을 차지한다는 것은 바닷길과 물길을 함께 차지하는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악양은 곡창지대라는 까닭으로
빨치산이 수확기를 맞아 해방구로 만들었고,
토벌대는 악양을 되찾기 위해 토벌작전을 벌였다.
그 때 빨치산은 토벌대에 쫒겨 그 옛날 남명 조식 선생이 넘었다는
회남재를 넘어 청암으로 후퇴했다.
평사리 야생차밭에도 매화가 가지를 늘어뜨렸다.
그 모든 과거사를 뒤로 하고 평사리의 너른 들판은
다만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때마침 봄이 와서 평사리 최참판댁에는 매향으로 가득하다.
볕이 좋은 자리마다 홍매화 청매화가 활짝 피었고,
후원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한창이다.
봄 하늘과 매화.
새순이 돋기 시작한 차밭에도 매화가 만발했고,
담장 아래에는 은밀하게 영춘화(迎春花)가 피어서
봄볕과 봄바람에 실랑이고 있다.
영춘화는 말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 중 하나이다.
평사리는 산수유마을보다 일주일 먼저 산수유꽃이 핀다.
봄볕 속을 걸어 나들이 온 상춘객들은
최참판댁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하고,
우물에서 시원한 물로 목도 축이고,
후원에 핀 홍매화와 집앞에 만개한 청매화로 몰려가
꽃같은 표정으로 사진도 찍는다.
암탉의 외출. 텃밭을 뒤지고 있다.
나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꽃구경도 하다가
사랑채 누마루에 걸터앉아
오래오래 매향을 맡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봄바람이 실랑실랑 마당에 핀 매화를 흔들어
은은하고 그윽한 매향을 실어온다.
이대로 여기서 한 석달 열흘은 살아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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