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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6 보름은 머물러도 좋다, 볼음도 6

보름은 머물러도 좋다, 볼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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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은 머물러도 좋다, 볼음도






겨울 바다는 사납다. 사나운 물살이 배를 밀어간다. 앞바다의 물빛은 흙빛이고, 먼바다로 나아갈수록 갈색 찻빛으로 빛난다. 이것이 뭍의 잔해와 자양분을 끌어안은 서해의 빛깔이다. 저 뿌연 물 아래 튼실하고 옹골찬 갯벌이 바다의 밑을 받치고, 사람의 생업을 떠받치고 있다. 바다에 배를 부려 어부들은 뭍에 남은 식구를 위한 가장의 힘으로 낮물잡이 그물을 드리운다. 갯벌에 나간 아낙은 바다의 모성이 낳은 갯것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먼바다 갈매기는 어부와 아낙이 몸 푼 바다와 갯벌에서 야성과 본능의 먹이다툼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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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음도(乶音島)는 서해4도(말도,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황해도 연백군과 불과 5.5킬로미터 떨어진 서해 최북단 섬이다. 볼음도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과 인연이 깊다. 장군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름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때 이 섬에서 보름달을 보았다고 만월도(滿月島)라 하였는데, 섬사람들이 편하게 보름도라 한 것이 오늘날 볼음도가 되었다. 그러나 몇 십년 전만 해도 이 섬은 북한 땅과 마주하고 있어 왕래가 쉽지 않은데다 배편이라고는 인천항에서 여러 섬을 거쳐 운항하는 통통배가 전부였던지라 한번 섬에 내려 일기라도 나쁘면 보통 보름쯤은 머물러야 했다. 이래저래 볼음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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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지역이므로 이 곳 주민들은 어업보다는 갯벌에 생계를 기대고 산다. 북쪽과 인접해 있다는 것이 배를 맘대로 부릴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도 섬에는 어선이라고는 달랑 한 척이 전부이다. 강화도 갯벌이 그러하듯 이 곳의 갯벌도 기름지며 끝이 안보일 정도로 넓다. 특히 섬 남서쪽에 펼쳐진 영뜰 해변과 조개골 해수욕장의 갯벌은 우리 땅에서 오염이 안된 가장 옹골찬 갯벌로 통한다. 썰물 때가 되면 영뜰 해변에는 탈탈거리며 대여섯 대의 경운기가 섬 사람들의 생활고를 싣고 갯벌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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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타고 30여 분(약 6킬로미터)을 달려서 가면 밑천 없이도 이문이 남는 상합밭이 나온다. 볼음도에서는 대합을 일러 상합이라고 부른다.
갯벌에는 뿌리지도 않은 갯것들이 차고 넘친다. 가무잡잡한 가무락(모시조개)도 있고, 금은빛으로 빛나는 서해비단고둥과 왕좁쌀무늬고둥, 희고 누런 동죽과 굴, 소라도 볼음도 갯벌이 내어주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서너 시간쯤 갯일을 하고 밀물 들기 전에 돌아온다. 더러 갯벌에 쳐놓은 뻘그물을 거두거나 낚시를 하는 이들도 있는데, 뻘그물에는 병어나 밴댕이가 많이 들고, 낚시로는 대부분 망둥이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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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둥이가 흔한 볼음도에서는 이것을 잡아 꼬챙이에 꿰어 내어 말리는 집을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건드리면 시치미 뚝 떼고 죽은 척하는 밤게도 갯벌을 따라 난 물길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다. 밤게 이 녀석 참 재미있게 생겼다. 몸뚱이는 알밤처럼 둥그렇고 매끈하며, 다른 발에 비해 집게발이 유난히 크다. 그리고 이 게는 대부분의 게가 옆으로 걷는다는 상식을 무시한다. 집게발을 비스듬히 쳐들고 앞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 느리게 걸어서 답답할 정도다. 거기에다 슬쩍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무 뻔하게 죽은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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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드러난 갯벌은 빼곡한 숨구멍으로 가득하고, 물결이 만들어놓은 무늬로 아름다우며, 뭍에서 흘러내리는 구불구불한 물길로 어여쁘다. 무언가가 늘 꾸물거리고, 숨쉬고, 먹고 먹히는, 삶의 전쟁과 휴식을 동시에 치러내는 날것 그대로의 생명밭, 그게 갯벌이다. 갯벌의 차고 넘치는 갯것들은 새들에게도 풍요한 먹이처 노릇을 한다. 드넓은 갯벌을 두고 한쪽에서는 사람이, 한쪽에서는 새들이 부지런히 갯일을 한다. 새들에게는 볼음도가 행복한 곳간이요, 평화로운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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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민통선 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새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서식환경을 만들어준 셈이다. 선창에 내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안내판도 세계적인 희귀조류이자 천연기념물 제205호인 저어새 번식지 팻말이다. 전세계 1,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저어새는 볼음도 인근의 무인도(석도)와 북한의 몇몇 섬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볼음도 갯벌이 주요 먹이처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저어새 서식지인 볼음도에서도 저어새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워낙에 개체수가 적은데다 볼음도 갯벌을 중심으로 강화도 갯벌에 두루 흩어져 먹이활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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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음도 안말에는 서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라 불리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 약 25미터, 수령 800여 년을 자랑하는 이 은행나무는 볼음저수지를 바라보며 갯가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 과거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해마다 이곳에 음식을 차려놓고 풍어제를 지내왔지만, 섬사람들이 예배당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중단되었다. 섬사람들은 이 나무가 석모도 보문사 은행나무와 부부사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북쪽인 황해도 연백에 암나무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안말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여기 있는 게 숫나무고, 저 바다 건너 연백에 있는 게 암나무”라고 말한다. 분단의 현실이 나무마저 이산가족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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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 강화도 외포리 포구에서는 볼음도까지 가는 배(1시간 30분)가 하루 두 번(09:00, 16:00) 있다. 하절기와 동절기 뱃시간이 다르고, 겨울철에는 배가 뜨지 않을 때도 있어 배편 문의를 하고 떠나야 한다. 요금 6200원. 문의: 서도면 사무소 032-932-6801. ※ 신분증 지참.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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