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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07 남해 낭만 포구기행 Best 5 11
남해 낭만 포구기행 Best 5
봄 땅은 향기롭다. 겨우내 얼었던 땅거죽도 단 한번의 봄비에 맨살을 풀고, 숨구멍을 열어 젖힌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흙은 메마름과 딱딱함에서 부드러움과 보슬보슬함으로 제 몸을 바꾼다. 농부는 흙의 속살만 들여다봐도 밭갈이를 언제 하고, 씨를 언제 뿌릴지 다 안다. 농부가 흙에 몸을 부리며 일손을 바투잡는 동안 봄볕이 내리쬐는 땅에서는 푸른 날것들이 고개를 내민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땅 속의 작은 씨앗이 헐거운 흙을 떠밀고 삐죽 고개를 내미는 소리가 들린다. 남해 포구에도 봄이 한창이다. 포구의 봄은 꽃 피고 새 우는 들판과 달리 포구에 생기가 도는 것으로 온다. 포구에 드리운 방풍림에는 어느덧 새 혓바닥같은 속잎이 피어난다.
1. 환상적인 방풍림 실루엣-구미포구
저물기 시작한 바다 끝에서 슬로모션으로 붉은 해가 떨어진다. 노을이 번진 구미포구의 하늘과 바다. 이걸 관능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노골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낮과 저녁의 경계에서 노을은 현실이 구현해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색채를 뿌린다. 마치 그것은 노란 유채꽃과 붉은 동백꽃이 어울린 야릇한 풍경과도 같다. 요란했던 하늘이 잠잠해지자 포구의 방풍림 사이로 파란 어둠이 내려앉는다.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뻗어 올라간 팽나무와 느티나무(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365그루란다)가 우주에 그려내는 이 카오스적인 실루엣들.
삼각대를 받쳐놓고 나는 그 나무들의 불규칙한 무늬에 필름 한 통을 다 소비했다. 늦은 저녁의 파란 어둠은 금세 무채색 어둠으로 돌변한다. 나는 카메라를 거두고 민박집으로 철수했다. 이른 아침 민박집에서 창틈으로 스며드는 비릿한 해풍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짐을 챙겨 바닷가로 나갔다. 방파제에 부서지는 흰 파도. 포구를 맴도는 갈매기들의 찍찍, 꼬꼬, 끄억거리는 울음소리들. 해송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는 해풍과 청량음료보다도 시원한 공기. 여기서 한 석달 열흘은 살아도 좋으리라.
2. 이런 데도 있었네-홍현리 포구
다랭이마을로 유명한 가천마을을 지나면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구가 있는 홍현리가 나온다. 남해의 해안도로인 1024번 도로를 달리다가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포구. 보는 순간, 아!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본 홍현리 풍경은 마치 지중해의 한 귀퉁이를 떼어다놓은 듯도 하고, 남태평양의 섬나라 풍경을 구경하는 듯도 하다. 이국적이고 한적하고 적막한 포구.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는 멀리 도심에 두고 온 일상과 먼지 낀 기억을 잊고 한동안 시간의 미아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매캐한 도심의 시간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새로운 안개 속의 시간을 거닐면서 망가진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3.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미조항
상주 해수욕장을 에도는 19번 국도와 창선도에서 내려온 3번 국도는 그 끝자락을 미조항에 두고 있다. 남해에서 멸치잡이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 조선시대 때만 해도 미조항은 왜구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던 터라 남해에서 가장 큰 수군기지를 두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에 참전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첫 출전한 곳도 바로 미조항이다. 이 항구에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물고기를 팔고 사려는 사람들이 활어 위판장에 모여 한바탕 손가락 싸움을 하는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의 손가락이 어지럽게 움직일 때마다 고깃금이 매겨져 순식간에 활어의 주인이 결정된다. 이렇게 경매가 끝나면 위판장 앞에 몰려들었던 활어 운반차들은 썰물처럼 빠져버린다.
항구에서 나는 공짜 숭어회를 얻어먹었다. 인근에서 온 낚시꾼들은 숭어를 잡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불러들여 인심을 쓴다. 난전에 앉아 방금 잡은 숭어 살점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 기막힌 바다의 맛이다. 바닷물에 얼비치는 흰 등대와 해초옷을 입은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떼를 바라보며 게눈 감추듯 숭어회를 해치운다. 항구를 벗어난 바닷가에는 바지락 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갈이 섞인 갯벌을 갈고리로 한번 뒤집을 때마다 여남은 개의 바지락이 올라온다. 봄볕 속의 노동. 여행자의 이 심란한 구경.
4. 고기를 불러들이는 숲, 방조어부림이 있는 곳-물건리 포구
미조항에서 3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은 남해의 동해안이다. 흔히 이 도로를 물미도로라 부른다. 물건리와 미조를 잇는 도로의 뜻과 함께 남해의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통하는 곳이다. 물건리에는 방조어부림이 있다. 방조어부림이란 태풍이나 해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불러들인다는 뜻을 지녔다. 일종의 방풍림인 셈인데, 그 길이가 무려 1.5킬로미터, 1만여 그루의 나무가 해안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을 이룬 나무들은 팽나무가 대표적인 수종이며, 푸조나무, 느티나무, 느릎나무, 상수리나무, 후박나무 등 다양한 수종(40여 종)이 분포한다. 이 곳에 방풍림이 들어선 것은 약 350여 년 전이라고 한다. 그것을 지키고 가꿔온 수백 년의 정성이 더해져 오늘날의 아름다운 방풍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망가뜨리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가꾸는 것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분명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자연과 인간이 어울린 행복한 풍경이다. 옛날에는 자연이란 것이 결코 개척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의지하고 받들어야 할 경외의 대상이었다.
5. 드는 고기는 잡고, 나는 고기는 두고-지족해협의 죽방렴
어느덧 나는 3번 해안도로의 끝인 창선교에 와 있다. 창선교는 남해 본섬과 창선도를 잇는 다리다. 다리 아래는 물살이 센 지족해협이다. 이 지족해협에는 원시적인 어업 형태인 ‘죽방렴’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죽방렴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그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쥘부채를 편 모양처럼 생겼다. 그 부채꼴 모양이 끝나는 꼭지 부분이 불통(원통형 대나무 통발)이고, 부채살을 펼친 부분이 고기를 유인하는 삼각살(참나무 말목을 연이어 세워놓았다)이다. 불통의 문짝은 썰물 때 저절로 열렸다가 밀물 때 저절로 닫힌다.
이는 썰물 때 불통 안으로 들어온 물고기가 밀물 때 저절로 갇힌다는 얘기다. 어부는 재수없이 불통에 갇힌 녀석들만 잡는다. 이 죽방렴으로는 주로 멸치를 잡는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비늘이 고스란히 붙어있고, 맛도 더해 그물로 잡은 멸치보다 값을 훨씬 더 쳐준다. 죽방렴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친환경적인 고기잡이다. 드는 고기만 잡고, 나는 고기는 그대로 둔다. 밑바닥부터 싹쓸이로 건져올리는 어망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 은밀한 여행:: http://gurum.tistory.com/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땅 속의 작은 씨앗이 헐거운 흙을 떠밀고 삐죽 고개를 내미는 소리가 들린다. 남해 포구에도 봄이 한창이다. 포구의 봄은 꽃 피고 새 우는 들판과 달리 포구에 생기가 도는 것으로 온다. 포구에 드리운 방풍림에는 어느덧 새 혓바닥같은 속잎이 피어난다.
1. 환상적인 방풍림 실루엣-구미포구
저물기 시작한 바다 끝에서 슬로모션으로 붉은 해가 떨어진다. 노을이 번진 구미포구의 하늘과 바다. 이걸 관능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노골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낮과 저녁의 경계에서 노을은 현실이 구현해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색채를 뿌린다. 마치 그것은 노란 유채꽃과 붉은 동백꽃이 어울린 야릇한 풍경과도 같다. 요란했던 하늘이 잠잠해지자 포구의 방풍림 사이로 파란 어둠이 내려앉는다.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뻗어 올라간 팽나무와 느티나무(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365그루란다)가 우주에 그려내는 이 카오스적인 실루엣들.
삼각대를 받쳐놓고 나는 그 나무들의 불규칙한 무늬에 필름 한 통을 다 소비했다. 늦은 저녁의 파란 어둠은 금세 무채색 어둠으로 돌변한다. 나는 카메라를 거두고 민박집으로 철수했다. 이른 아침 민박집에서 창틈으로 스며드는 비릿한 해풍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짐을 챙겨 바닷가로 나갔다. 방파제에 부서지는 흰 파도. 포구를 맴도는 갈매기들의 찍찍, 꼬꼬, 끄억거리는 울음소리들. 해송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는 해풍과 청량음료보다도 시원한 공기. 여기서 한 석달 열흘은 살아도 좋으리라.
2. 이런 데도 있었네-홍현리 포구
다랭이마을로 유명한 가천마을을 지나면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구가 있는 홍현리가 나온다. 남해의 해안도로인 1024번 도로를 달리다가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포구. 보는 순간, 아!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본 홍현리 풍경은 마치 지중해의 한 귀퉁이를 떼어다놓은 듯도 하고, 남태평양의 섬나라 풍경을 구경하는 듯도 하다. 이국적이고 한적하고 적막한 포구.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는 멀리 도심에 두고 온 일상과 먼지 낀 기억을 잊고 한동안 시간의 미아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매캐한 도심의 시간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새로운 안개 속의 시간을 거닐면서 망가진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3.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미조항
상주 해수욕장을 에도는 19번 국도와 창선도에서 내려온 3번 국도는 그 끝자락을 미조항에 두고 있다. 남해에서 멸치잡이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 조선시대 때만 해도 미조항은 왜구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던 터라 남해에서 가장 큰 수군기지를 두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에 참전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첫 출전한 곳도 바로 미조항이다. 이 항구에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물고기를 팔고 사려는 사람들이 활어 위판장에 모여 한바탕 손가락 싸움을 하는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의 손가락이 어지럽게 움직일 때마다 고깃금이 매겨져 순식간에 활어의 주인이 결정된다. 이렇게 경매가 끝나면 위판장 앞에 몰려들었던 활어 운반차들은 썰물처럼 빠져버린다.
항구에서 나는 공짜 숭어회를 얻어먹었다. 인근에서 온 낚시꾼들은 숭어를 잡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불러들여 인심을 쓴다. 난전에 앉아 방금 잡은 숭어 살점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 기막힌 바다의 맛이다. 바닷물에 얼비치는 흰 등대와 해초옷을 입은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떼를 바라보며 게눈 감추듯 숭어회를 해치운다. 항구를 벗어난 바닷가에는 바지락 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갈이 섞인 갯벌을 갈고리로 한번 뒤집을 때마다 여남은 개의 바지락이 올라온다. 봄볕 속의 노동. 여행자의 이 심란한 구경.
4. 고기를 불러들이는 숲, 방조어부림이 있는 곳-물건리 포구
미조항에서 3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은 남해의 동해안이다. 흔히 이 도로를 물미도로라 부른다. 물건리와 미조를 잇는 도로의 뜻과 함께 남해의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통하는 곳이다. 물건리에는 방조어부림이 있다. 방조어부림이란 태풍이나 해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불러들인다는 뜻을 지녔다. 일종의 방풍림인 셈인데, 그 길이가 무려 1.5킬로미터, 1만여 그루의 나무가 해안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을 이룬 나무들은 팽나무가 대표적인 수종이며, 푸조나무, 느티나무, 느릎나무, 상수리나무, 후박나무 등 다양한 수종(40여 종)이 분포한다. 이 곳에 방풍림이 들어선 것은 약 350여 년 전이라고 한다. 그것을 지키고 가꿔온 수백 년의 정성이 더해져 오늘날의 아름다운 방풍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망가뜨리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가꾸는 것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분명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자연과 인간이 어울린 행복한 풍경이다. 옛날에는 자연이란 것이 결코 개척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의지하고 받들어야 할 경외의 대상이었다.
5. 드는 고기는 잡고, 나는 고기는 두고-지족해협의 죽방렴
어느덧 나는 3번 해안도로의 끝인 창선교에 와 있다. 창선교는 남해 본섬과 창선도를 잇는 다리다. 다리 아래는 물살이 센 지족해협이다. 이 지족해협에는 원시적인 어업 형태인 ‘죽방렴’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죽방렴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그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쥘부채를 편 모양처럼 생겼다. 그 부채꼴 모양이 끝나는 꼭지 부분이 불통(원통형 대나무 통발)이고, 부채살을 펼친 부분이 고기를 유인하는 삼각살(참나무 말목을 연이어 세워놓았다)이다. 불통의 문짝은 썰물 때 저절로 열렸다가 밀물 때 저절로 닫힌다.
이는 썰물 때 불통 안으로 들어온 물고기가 밀물 때 저절로 갇힌다는 얘기다. 어부는 재수없이 불통에 갇힌 녀석들만 잡는다. 이 죽방렴으로는 주로 멸치를 잡는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비늘이 고스란히 붙어있고, 맛도 더해 그물로 잡은 멸치보다 값을 훨씬 더 쳐준다. 죽방렴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친환경적인 고기잡이다. 드는 고기만 잡고, 나는 고기는 그대로 둔다. 밑바닥부터 싹쓸이로 건져올리는 어망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 은밀한 여행::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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