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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6 어느 철거고양이 식구의 겨울나기 50
어느 철거냥 식구의 겨울나기
지난 12월 20일 블로그에 올린 <우린 이렇게 놀아요>는
까뮈네 4남매가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을 올린 것이다.
사실 이 사진은 12월 16일 쯤 찍은 것으로 그날 이후 까뮈네 식구들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20여 일 전 까뮈네 식구들의 거처가 있던 빈집이 철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까뮈네 4남매는 어쩔 수 없이 지붕 위의 둥지를 떠나야 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이 엄동설한에 마음의 준비도 없이 녀석들은 정든 집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20여 일만에 다시 만난 까뮈네 식구는 먹을 게 없어서 누군가 내다버린 총각무 하나를 나눠먹고 있었다.
그날 이후 20여 일 동안 단 한번도 나는 까뮈네 식구를 만나지 못했다.
여러 번 까뮈네 식구가 살던 영역 주변을 기웃거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까뮈는 이 추운 날씨에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무사하긴 한 걸까.
어딘가에서 잘 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 편했다.
그리고 조금씩 나는 녀석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까뮈네 다섯 식구가 살던 빈집은 지난 달 중순 철거가 되었다. 그 바람에 이곳을 둥지로 삼았던 까뮈네 식구는 엄동설한에 철거냥이 되어 어디론가 떠났다(위). 둥지가 있던 빈집의 뒤란 공터에서 놀던 까뮈네 식구들. 철거 직전 마지막으로 둥지 인근에서 놀던 모습을 찍은 것이다(아래).
그런데 어제 오후였다.
축사냥이와 봉달이, 덩달이에게 사료를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 저쪽에 낯익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거였다.
까뮈였다.
옆에는 턱시도 새끼와 삼색이 새끼도 있었다.
녀석들은 선반 위에 얹힌 플라스틱 양동이를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까뮈는 누군가 내놓은지 얼마 안되는 총각무를 입에 물고 새끼 앞에 내려놓았다.
고춧가루와 양념이 범벅된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20여 일 만에 다시 만난 까뮈네 식구들. 새끼 턱시도 녀석은 플라스틱 양동이에 올라가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위). 어미인 까뮈는 양동이에서 총각무 하나를 꺼내 새끼들 앞에 내려놓았다(아래).
턱시도 새끼는 그 맵고 짠 총각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앉은자리에서 거의 절반이나 그것을 먹어치웠다.
새끼 삼색이는 옆에서 입맛만 다셨다.
어미 또한 배가 고팠는지 나머지 절반을 아그작아그작 씹어댔다.
새끼 턱시도는 어미가 나머지를 다 먹어치우자
야속하다는듯 선반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서럽게 울었다.
새끼 턱시도는 어미가 내려놓은 총각무를 단숨에 절반 가량 먹어치웠다(위). 어미 또한 배가 많이 고팠는지, 나머지 절반을 금세 먹어치웠다(아래).
그때쯤 내가 앞에서 인기척을 하자
까뮈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냐아앙, 하고 아는체를 한다.
새끼 턱시도도 나를 기억하는지.
바닥까지 뛰어내려와 앙냥냥 울어댔다.
방금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만으로도 녀석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이 갔다.
그걸 다 먹으면 어떡하냐고, 새끼 턱시도가 선반 아래서 어미를 원망하며 서럽게 울고 있다(위). 내가 멀리서 인기척을 하자 어미가 먼저 돌아보며 냐아앙, 아는체를 한다(아래).
비상용 사료가 차에 있는 바람에 내가 아는체만 하고
돌아서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는 먹을 것 좀 주고 가라며 목놓아 운다.
잠시 후 사료를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자
두 마리의 새끼는 걸신들린듯 허겁지겁, 숨도 쉬도 않고 그것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미도 체면 따위 던져버린 채 달려들어 우적우적 씹어댔다.
바닥까지 내려와 먹을 것 좀 내려놓고 가라고 앙냥냥거리는 새끼 턱시도(위). 건물 구석에 앉아서 칼바람을 피하고 있는 새끼 턱시도와 삼색이(아래).
새끼 턱시도의 얼굴이 벌건 김치 국물로 얼룩이 져있다(아래).
그런데 가만...
또다른 삼색이 새끼와 고등어 새끼가 보이지 않았다.
20여 일 전 철거가 된 이후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면,
나머지 두 마리의 생사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엄청난 한파와 폭설을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모름지기 배가 든든해야 추위도 이겨내는 법이다.
결국 둥지가 철거되면서 까뮈네 다섯 식구는 거리로 나앉았고,
영역을 옮겼거나 떠돌이 생활로 이제껏 살았을 터이다.
설상가상 혹한과 칼바람이 몰아치고 폭설이 내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내가 내려놓은 사료로 배를 채운 뒤, 이제야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새끼 삼색이와 턱시도. 어미는 여전히 돌아앉아 사료를 먹고 있다(위). 사료를 다 먹은 뒤 까뮈네 세 식구가 눈 녹은 물로 목을 축이고 있다(아래). 까뮈네 4남매 가운데 이 두 녀석만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30% 안팎의 생존율이라는 길고양이의 세계에서
4마리 중 2마리가 살아남은 것도 어쩌면 다행인지 모르겠다.
옮겨간 둥지라도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산 녀석들만이라도 살아남아야지.
두 마리의 새끼는 코를 박고 한참이나 사료를 먹은 뒤에야
좀 살겠다는 듯 눈빛이 평온해졌다.
골목의 눈밭에 앉아 있는 새끼 삼색이. 녀석이 감당하기에는 이번 겨울이 너무나 혹독하기만 하다.
뒤늦게 어미도 큰길로 나와 눈 녹은 물로 목을 축였다.
새끼들도 따라서 골목의 눈 녹은 물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으니 이렇게라도 목을 축이는 수밖에 없다.
골목 저쪽에서 또다시 칼바람이 불어 눈보라가 인다.
이번 겨울은 길고양이에게 유난히도 혹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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