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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에 대한 거의 모든것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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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김장은 겨울농사 장은 일년농사


요즘 한창 시골에서는 겨우내 띄어낸 메주로 된장 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도심에서는 대부분 된장이나 간장을 마트에서 사먹지만, 여전히 시골에서는 된장 담는 일이 요맘때 가장 큰 집안 행사나 다름없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음력 동짓달에 메주를 띄워 이듬해 정월이나 이월에 간장과 된장을 담아 먹어 왔다. 콩을 주원료로 하는 장은 우리 식생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품으로, 장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이 장은 바로 메주로부터 시작된다.


천장이나 처마 끝에서 겨우내 띄운 메주에서는 희고 고운 곰팡이가 생기게 되며, 사실상 이 곰팡이가 장맛을 결정하게 된다. 겨우내 메주가 잘 떠야 장맛도 좋은 것이다. 옛날 궁중에서는 메주가 잘 뜨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섣달 그믐날 왕과 왕비가 날메주국을 먹는 무장풍속까지 있었다. 잘 뜬 메주는 거죽이 마르고, 속은 말랑말랑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겉에 푸른색이나 검은색 곰팡이가 핀 것보다 흰 곰팡이가 곱게 퍼져 있는 것이 좋다. 또 거죽이 말라 있고 색깔이 노르스름하며 들어서 가벼운 메주가 잘 뜬 것이다. 거죽이 거무스름하고 끈적거리며 축축해 보이면 제대로 뜬 것이 아니다. 메주의 색깔이 노르스름하되, 약간 붉은색이 섞여 있어야 하고, 쪼갰을 때 속은 검붉게 보여야 잘 뜬 메주라 할 수 있다.


두미도에서 만난 빨랫줄에 메주를 달아놓은 풍경.

 

장독에 고추와 숯을 넣는 이유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는 일을 침장이라 하는데, 장물을 마련하는 것 또한 메주 띄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장물이 나쁘면 가시(구더기)가 생기거나 장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동짓달 첫눈을 받아서 장물로 쓰거나 해안지방에서는 바닷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규합총서>에는 “장 담그는 물은 특별히 좋은 물을 가려야 장맛이 좋다. 여름에 비가 갓 갠 우물물을 쓰지 말고, 좋은 물을 길어 큰 시루를 독에 안치고 간수가 다 빠진 좋은 소금 한 말을 시루에 붓거든 물은 큰 동이로 가득 붓는다”고 하여 물맛이 장맛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한편 장을 담기에 좋은 물로는 청명일과 곡우일의 강물, 가을철에 받은 이슬물, 눈 녹인 납설수를 들고 있다.


장을 담글 때 붉은 고추와 숯을 넣는 이유는 장맛이 불같이 일라는 주술적 기원과 함께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숯을 띄우면 잡신이 숯구멍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한다고 믿었고, 고추의 붉은색은 음한 귀신을 쫓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장독대 주변에 붉은 꽃이 피는 맨드라미를 심는 것도 마찬가지로 귀신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장독 모가지에 금줄을 치거나 항아리 배에 버선을 그려넣는 것도 잡신을 막기 위함이었다. 고추와 더불어 장독에 넣었던 대추는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이며, 아울러 액을 막는 의미도 있다. 이런 주술적 행위에는 과학적인 근거도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숯은 냄새와 곰팡이 등을 흡입하는 작용을 하고, 고추는 그 매운 맛으로 소독작용을 하며, 장의 맛과 영양에 보탬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조상들이 말하기를 김장은 겨울농사, 장은 일년농사라고 부를 만큼 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 장맛을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장은 우리 음식문화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는“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는 말도 있으며, “한 고을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는 말도 있다. 또 “집안 식구가 죽는다든지 몹쓸 병에 걸리는 해에는 장에 벌레가 생기고 변질된다”는 속신과 “장맛 보고 딸 준다”는 말까지 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장맛을 좋게 하기 위해 길일을 택해 장을 담가왔다. <규합총서>에는 병인, 정묘일과 제길신일, 정월 우수일, 입동날, 황도일이 장 담그기에 좋은 날이라 하였다. 또 해돋기 전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없으며, 그믐날 얼굴을 북으로 향해 담그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기록도 보인다. 장 담그기에 나쁜 날에는 수흔일과 육신일로, 수흔일에 담그면 가시가 꾀고, 육신일에는 맛이 사납게 된다고 하였다. 수흔일에 속하는 날은 큰 달 초하루, 초이레, 열하루, 열이레, 스무하루, 스무사흘, 그믐날, 작은 달에 초사흘, 초이레, 열이틀, 스무하루, 스무엿세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산림경제>에도 “장은 정월 우수일과 입동날에 담그는 것이 좋다. 삼복일에 장을 합하면 벌레가 생기지 않고 해 뜨기 전과 해 진 뒤에 장을 뜨면 파리가 생긴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도 “서울 풍속에 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항아리에 장을 담가 겨울나기 계획을 세운다. 온갖 것을 꺼리는 날인 신일은 장을 담그는 데 맞지 않으므로 신일만은 피한다”고 하였다. 신일을 꺼리는 이유는 ‘신’이라는 음이 ‘시다’라는 음과 같아 신일에 장을 담그면 장맛이 시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에 대한 관념은 장에 신비한 힘이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는데, 때문에 장을 담글 때는 여러 금기가 있었다. 장을 담그는 사람은 사흘간 부정을 타거나 외출을 하면 안되었으며, 가축을 꾸짖어도 안되었다. 또 생리기간에도 장 담그는 것을 피했다. 일단 장을 담근 뒤에는 장독대를 극진히 여겨 해가 뜨면 뚜껑을 열어놓고 해가 지면 덮었으며, 항아리의 아가리에는 금줄 새끼를 둘러쳐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았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만난 장독대.

 

된장은 되게 만든 장, 간장은 간이 들어간 장, 청국장은 전란중 먹었던 장


특히 장독대는 여인네들에게 있어 가장 신성시하는 성역 중의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이를테면 집안에 무슨 동티가 나거나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정화수를 떠놓고 수없이 빌고 절을 하는 곳도 바로 장독대였다. 또 옛날의 여인네들은 온갖 정성을 바쳐 장독대를 손질하고 가꾸었는데, 한 해 혹은 몇 년을 저장해 두고 먹어야 했던 장이 제맛을 잃고 변질해 버리면 주부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되었으니, 과거에는 한 집안의 흥망성쇠가 장독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장은 특히 온도에 민감하여, 햇볕이 너무 들어도 안되고, 햇볕이 아예 없어도 안되는데, 한마디로 반양반암의 장소가 제격이다. 장독대를 주로 뒷뜰에 두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옛날 궁중에서는 ‘장고마마’(드라마 대장금에도 등장했다) 상궁을 두어 장을 담당하고 장독대를 보살피게 하였다. 보통 궁중에서는 자하문 밖에 살던 메주 전문가가 공물로 바치던 ‘절 메주’로 장을 만들었는데, 이 메주는 새봄 풀이 날 때 검은콩을 쑤어 만든 것으로 집메주보다 네 배 가량 넓적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메주를 띄울 때는 새로 돋는 풀을 베어다 메주 사이사이에 넣고 단시일에 까맣게 띄웠다고 한다. 대개 궁중에서는 5월에 절 메주가 들어오면 장고마마의 지휘 아래 장을 담았다. 궁중의 장은 숙성되어도 간장과 된장으로 가르지 않았고, 간장을 퍼서 달이지도 않았으며, 햇볕만 쪼여 몇 해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메주의 진이 다 빠진 뒤에야 장을 떠냈다. 장독은 장고에 두어 관리하였는데, 장고의 바닥은 평평하게 되어 있었고, 장독 자리에는 전돌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으며, 장독으로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회색빛 말뚝 항아리를 썼다고 한다.


보통 간장과 된장은 침장 후 한달 반 정도 숙성시킨 끝에 나온다. 장을 크게 나누면 간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간장은 장물을 퍼내 달여서 만들고, 간장을 퍼내고 남은 찌꺼기가 된장이 된다. 간장이란 말 그대로 ‘간이 들어간 장’이란 뜻으로, 소금이 들어간 물에 메주의 성분이 우러나오면서 숙성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간장을 청장이라고도 했는데, 된장이나 고추장에 비해 액체이면서 발그스름하고 아주 맑게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된장은 말 그대로 ‘되게 만들어진 장’이다. 된장의 종류에는 일반적으로 불리는 된장을 비롯해 담북장, 청국장, 막장, 집장, 청태장, 팥장, 가루장, 무장, 거름장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딸이 시집을 가기 전에 반드시 서른여섯 가지 정도의 장 담그는 법을 배워 가야 했다.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아왔던 우리나라는 전쟁 때엔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기가 어려웠는데, 이 때 된장 대용으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은 것이 청국장이다. 전란에 만들어 먹는 장이라는 뜻에서 전국장이라 불리다가 결국 청국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된장과 달리 청국장에는 발효하게 되면 메주에서의 누룩곰팡이가 아닌 고초균이라는 발효균이 생기는데, 이 균은 장내 부패균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콜레라균이나 티푸스균과 같은 병원균에 대한 항균작용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효력은 한마디로 요구르트의 유산균보다 훨씬 뛰어난 작용을 한다. 보통 청국장이 뜨게 되면 끈끈이 실이 만들어지는데, 숟가락으로 떠보아 실이 길게 늘어나는 것일수록 잘 뜬 것이다. 청국장에 생기는 이 끈끈이는 유산균이나 비피더스균과 마찬가지로 면역력을 높여 주며, 혈전을 녹이는 작용뿐만 아니라 심근경색과 뇌혈전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주 신륵사 메주 빚는 풍경.

 

중국에까지 알려진 고구려의 장, 발해의 메주


장에 대한 효능은 최근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된장에 발암억제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십오륙 년 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국립암센터 연구소에서는 몇 년 전 매일 된장국을 먹은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메주를 띄울 때 발생하는 흰 곰팡이(지방산 에틸에스테로라는 물질)가 항암효과를 돕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식품개발연구원에서도 장류와 같은 전통발효식품이 발암억제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들에 따르면, 돌연변이 억제율 또한 된장이 70%로 가장 높았고, 고추장이 40~50%, 간장이 30%로 나타났다.


미국의 머시의료재단 암센터에서도 된장을 신비한 식품으로 섬유질이 채소보다 많으며 항암성분과 세포를 보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변비를 비롯해 췌장암, 고혈압을 완치시키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된장 속에 함유된 리노레익산을 비롯한 여러 물질에 발암물질을 구십 퍼센트 이상 억제하는 항암효능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 열린 전통장류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과 같은 장류가 돌연변이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암 발생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이미 발생한 암 세포에 대해서도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우리의 재래식 된장이 일본 된장보다 항암효과가 훨씬 뛰어나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장이야말로 쌀단백질에서 부족되는 리신(필수 아미노산) 함유량이 높아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겐 더없이 중요한 식품이라 할 수 있다. 


장에 대한 기록은 이미 중국 후위 시대 농서 가운데 하나인 <제민요술>에 그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으며, <논어>에도 “부득기장불식”이라 하여 이미 기원전에 장류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 민족이 된장을 담아 먹은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고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이 발효식품인 장을 잘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고구려시대 안악 고분벽화에도 장을 담아놓은 듯한 독이 우물가에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당서>에도 “발해의 서울 메주는 유명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발해의 명산물이 메주라는 기록은 조선시대 <해동역사>에도 나온다.


우리 문헌에는 <삼국사기>에 처음 장이 등장하는데, 신라 신문왕 3년(683)에 김흠운의 딸이 왕비에 간택되어 입궐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술, 장, 시, 포, 혜 들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이 가운데 시는 배염유숙이라 설명하고 있으며, 여기서 숙은 콩이고, 유는 어둡다는 뜻으로 콩을 삶아 어둡고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켜 소금을 섞은 것을 일컫는다. <고려사>에도 현종 9년(1018)에 지금의 의주 지방인 홍화진에 전란으로 인하여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백성에게 옷감과 소금과 장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현종 6년(1052)에도 개경에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삼만여 백성에게 쌀과 조와 된장을 내렸다고 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여름철에는 장을, 겨울철에는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이미 장이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미소’ 고려 ‘막장’에서 왔다


조선시대 명종 때 발간된 <구황취요>는 우리나라 장류 제조 기술을 수록한 가장 오래된 고전으로, 여기에는 모두 여덟 종의 장류 제조법이 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콩을 가려서 황증하고 콩 한 말당 소금 네 근, 산초 네 량을 같이 담고, 봄 가을에는 사흘, 여름에는 이틀, 겨울에는 닷새 동안 반숙하고 세절한 생강 다섯 량을 고루 섞은 뒤 밀봉하여 두엄 속 혹은 마분 중에 깊이 묻어 숙성시키면 이레 혹은 열나흘 뒤에는 식용이 가능하다.” 조선 중엽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도 무려 45종에 이르는 다채로운 장류 제조법이 분류, 정리돼 있다.


역시 조선 중엽 <증보산림경제>에는 “장은 장이요, 모든 맛의 으뜸이다.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해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침장에 뜻을 두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기록해 놓아 새삼 장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가운데도 장 담그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된장은 우리 민족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먹었으며, 일본의 미소는 고려시대 막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삼월령

 

인간의 요긴한 일 장 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갓추하소.

 

유월령

 

장독을 살펴보아 제맛을 잃지 말고

맑은 장 따로 모아 익는족족 떠내어라

비오면 덮겠은즉 독전을 정히하소.

 

십일월령

 

부녀야 네 할 일이 며주 쓸일 남았도다

익게 삼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와두소.


문헌으로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국가에서 그 맛을 인정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육류 섭취량이 많지 않은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장류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장류문화는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장이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한나라시대 이후로 여겨지며, 약 1200여 년 전 고려시대의 막장은 일본에까지 전해서 ‘미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소’는 막장의 일본식 발음인 셈이다. 그러므로 장의 종주국은 역시 우리나라였음을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실 메주의 원료가 되는 콩의 원산지도 만주와 한반도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원래 야생에서 자라던 콩을 밭작물로 재배해 훌륭한 발효식품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한 나라의 음식문화 수준을 가늠할 때 대개 학자들은 발효식품을 꼽는다. 서양의 음식문화에서 치즈나 요구르트가 발효식품의 대명사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김치와 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900년 이후 음식 개발의 부진과 일제시대 일본 장류가 상륙하면서 일본식 간장과 된장이 보급되어 조금씩 우리네 부엌을 잠식해왔다. 게다가 젊은 세대의 서구식 입맛 변화로 인해 장류식품의 소비 또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껏 우리 식생활은 서구음식문화의 물결을 타고 많은 변천을 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장류는 여전히 우리 식탁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위치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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