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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6 차마고도의 위험하고 아름다운 길 (15)
차마고도의 위험하고 아름다운 길: 느림과 불편, 덜컹과 으악!
“짤막한 섬광이지만, 충분하다”
이 말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인생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말은
부적절하고 충분하지 않게 들린다.
그들은 삶을 즐길 새도 없이 평생이 지나갔다, 고 여긴다.
즐기지 못한 인생의 ‘뼈아픈 후회’는 뒤늦게 찾아온다.
한번쯤 지나간 인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여행을 통해서라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한번쯤 나를 묶어놓은 시간으로부터 탈출해 보는 것이다.
평생에 한번은 가봐야 할 여행지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나는 차마고도를 꼽겠다.
느림과 불편, 덜컹거림과 으악!이 당신을 기다릴 테지만,
경탄과 감동, 발밑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온갖 지구적인 생각 또한
그곳에 존재한다.
나는 차마고도에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책도 펴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알려진 차마고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제야 차마고도는 오랜 동안의 베일을 벗고,
그 참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곳을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험한 문명통로라고 부르며,
누군가는 실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선 고대 무역로라고 부른다.
그러나 또다른 누군가가 차마고도를 여행한다면,
전혀 다른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줄지도 모른다.
차마고도에서 나는 숱한 ‘길의 미학’을 보고 느꼈다.
속도와 경쟁만이 남아 있는 도시의 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나는 차마고도에서 경험했다.
유럽과 중국의 여행자들이 왜 그토록 그곳을 가려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곳에는 지구의 순진함과 역사의 아픔이 공존했다.
신의 길과 인간의 길이 함께 놓여 있었고,
생존의 길과 죽음의 길이 함께 가고 있었다.
어떤 길은 험난하고 위험했으며, 어떤 길은 평화롭고 적막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 엄청난 황토 먼지가 고원에 휘날렸지만,
먼지 너머의 하늘과 구름은 그지없이 파랗고 하얗게 펼쳐졌다.
차마고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가장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낮은 것들을 신에게 기원했다.
때때로 산사태로 길이 막혀 하루나 이틀쯤 기다려도
차마고도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서두르거나 조바심내지 않았다.
그들은 기다릴 줄 알았다.
아이는 부모를 기다렸고, 남자는 여자를 기다렸으며,
순례자는 신을 기다렸다.
운전자는 길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오체투지하는 승려는 라싸의 날들을 기다렸다.
이곳에서의 기다림은 값진 것이었다.
그렇게 차마고도는 ‘인생은 기다리는 것이다’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어떤날은 새벽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달렸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산사태 난 마을에서 빈둥거렸다.
달릴 때는 지나가는 풍경이 고마웠고,
빈둥거릴 때는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샹그리라에서부터 라싸까지 나는 기다림과 고마움을 느끼며,
차마고도의 낯선 것들을 마음에 담았다.
그것을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다.
카메라는 기록을 위한 도구일 뿐,
그 때의 감정과 느낌을 받아적을 수는 없다.
그것을 글로 옮겨적는 것 또한 기억나는 것들만 기록될 뿐,
마음에 담은 것들은 오롯이 마음에만 남는다.
그것을 나는 오래오래 마음에 남겨둘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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