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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6 고양이 파 씹은 표정 28

고양이 파 씹은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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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봄고양이



 

오랜 기다림 끝에 봄이 와서
축사 언저리 파밭에도 대파가 새파랗다.
4월의 때아닌 눈과 한파에도 대파는 두 뼘 남짓 웃자랐다.
날씨가 풀리고 봄 햇살이 따뜻하게 논두렁에 쏟아져 내리면
축사고양이들은 어슬렁어슬렁 습하고 어두운 축사를 벗어나
논두렁과 파밭을 거닐며 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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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맛일까?" "우아~앙 뭔 맛이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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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역시 고양이의 계절이다.
봄이 되면 모든 고양이들은 생기에 넘친다.
골목이나 들판에서 마주치는 고양이의 눈동자마다 봄 햇살이 그득하다.
어떤 고양이의 눈에는 꽃다지가 일렁이고
어떤 고양이의 눈에는 제비꽃이 초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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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을 거닐다 파밭가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여리(앗, 파를 깔고 앉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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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축사고양이의 눈에도 푸른 파밭이 넘실거린다.
특히 생애 첫 봄을 맞는 여리에겐
봄의 모든 변화가 궁금하기만 하다.
파밭을 따라 종종종 걷다가도 ‘이게 먹는 건가’ 하고
잠시 파 끝을 혀에 대보기도 하고,
용감하게 앞니로 아사삭 한입 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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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경계에서 파랗게 일렁이는 파밭을 바라보는 미랑이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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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바로 ‘우앙, 뭔 맛이 이러냐’ 하면서
혀를 날름 내민다.
나는 파밭 가에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 파 씹은 표정을 웃으며 본다.
봄이 되면서 축사고양이 가족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혹독했던 지난 겨울 제리와 노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다른 고양이들은 무사히 겨울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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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고양이 대모와 미랑이가 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위). "밥은 갖고 왔어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대모의 모습(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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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햇살이 따뜻한 봄이 되면서
몇 마리는 분가를 시킨 듯하다.
어미인 대모가 배가 불룩한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장차 태어날 새끼들을 위해
어미는 이곳의 고양이 밀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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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을 거니는 대모(위). 파밭 속으로 들어가려는 가만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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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축사에 붙박이로 정착하고 있는 고양이는
어미인 대모를 비롯해 장나니와 여리, 미랑이, 가만이 등 다섯 마리다.
보리와 소리는 이따금 찾아와 허기를 채우고 간다.
뜨문이와 나리는 최근 1개월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에 흰털노랑이가 한 마리 대모의 낭군으로 자주 찾아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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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 위의 식사? 파밭 너머로 보이는 축사냥이의 식사시간.

여리가 파밭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반면
대모와 장나니, 미랑이와 가만이는 그저 시큰둥하다.
녀석들은 ‘저건 못 먹는 거야’ 하면서 관심도 없이 지나치곤 한다.
그래도 파밭에 가지런히 대파가 솟아난 봄 풍경 속에 앉아 있는
녀석들은 천상 봄고양이다.
그래서 싫든좋든 녀석들은 파밭과 꽤나 잘 어울린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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