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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남친, 26세 캣맘의 고양이 쉼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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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친은 고양이", 26세 캣맘의 고양이 쉼터에는



얼마전 EBS 다큐프라임 <인간과 고양이> 편에서 ‘공원의 해코지당한 길고양이’를 기억하십니까. 관악구 놀이터 3형제로 불리는 시도, 흰둥, 랑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 시도는 놀이터에 온 한 남자에게 돌로 머리를 맞아서 피를 철철 흘렸던 녀석인데, 다행히 올 6월 구조되어 신길동 고양이 쉼터에서 임보하고 있습니다. 관악구 놀이터의 고양이 학대사건은 끔찍했습니다. 아빠인 시도(수컷)를 따라나니던 새끼 고양이는 한 남자가 잔인하게 개를 시켜 물어죽이게 했다는군요. 랑이는 구조되기 전날 술 취한 남자에게 빗자루로 구타를 당해 다리를 다쳐 한동안 절며 다녀야 했답니다. 흰둥이는 3형제 중 가장 짧게 거리생활을 한 녀석인데, 아파트 단지에 누군가 내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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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놀이터 3형제 중 랑이. 지금은 26세 캣맘이 운영하는 고양이 쉼터에 살고 있다.

TV에 나온 관악구 놀이터 3형제는 지금

사실 이 3형제는 놀이터에서 늘 어울려 다니기 때문에 ‘3형제’라 불리는 것일 뿐, 실제로는 어미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출신지도 모두 다른 녀석들입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형제처럼 놀이터에서 어울려 살았더랬죠. 구조되기 전에도 시도는 8년 동안 여러 차례 버림받은 적이 있지만, 관악구 캣맘과 캣대디의 도움으로 놀이터 ‘왕초’ 노릇을 하며 놀이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도 받았습니다. 흰둥이도 놀이터에 살 때 나무타기를 좋아해서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장난을 수시로 치는가 하면 놀이터를 전력질주하며 우다다를 하던 개구쟁이였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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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쉼터에서 9마리 길고양이를 보호중인 감자칩 님이 랑이를 안고 있다.

랑이는 수컷이지만 성격이 섬세하고 예민해서 ‘공주님’이라는 별명이 있었답니다. 빗자루에 맞아 다치기 전까지는 사람을 잘 따르던 아이였으나, 다친 후 임보되어 와서까지 한동안은 앞집 남자의 재채기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후유증이 심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야 녀석은 마음을 열고 다시 사람을 잘 따르던 예전의 아이로 돌아갔습니다. 이 녀석의 이력 중 특이한 것은 올 6월 27일자 <시사 IN> ‘길고양이와 함께 춤을’이란 특집기사의 표지모델 경력이 있군요. 착한 눈망울이 매력인 녀석입니다. 현재 이 놀이터 3형제는 ‘감자칩’(본명 박선미, 26세) 님이 쉼터를 제공, 임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놀이터 3형제를 돌봐왔던 캣맘 ‘막내’ 님이 요즘에도 매일같이 쉼터를 찾아와 녀석들을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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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한 남자에게 돌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렸던 시도(턱시도)와 아파트 단지에 버려졌떤 흰둥(흰냥이)이도 이제 고양이 쉼터 식구가 되었다.

엊그제
감자칩 님이 운영하고 있는 길고양이 쉼터를 다녀왔습니다. 보라매역에 도착해 전화를 하자 감자칩 님과 천랑 님이 역까지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신길동 주택가의 단독주택이 감자칩 님이 사는 곳입니다. 집으로 들어서자 2마리의 길고양이가 밥을 먹다 화들짝 놀라 차 밑으로 몸을 숨깁니다. 감자칩 님이 먹이를 주는 고양이들인데, 늘 네댓 마리의 길고양이가 이곳을 찾는다는군요. 동네에서는 만날 고양이가 이 집을 들락거리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1층 방으로 들어섭니다. 문을 열자마자 4마리의 고양이가 달려나옵니다. 꼬마, 휘루, 에노, 깨물이. 꼬마는 매력적인 치즈캣인데, 어느 고등학생이 길에서 데려와 키우려 했으나, 아버지가 오늘 내로 버리지 않으면 지붕으로 던져버린다고 협박해 이곳에 임보로 맡겨졌습니다. 나와는 첫 대면인데도 내 무릎 위로 올라서는가 하면 내 머리를 빗어주겠다고 미용실 언니 노릇까지 하는군요. 언제 봤다고 함께 있는 내내 발라당을 하고 부비부비를 하고 나와 눈을 맞추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초절정 어메이징 애교를 선보이는 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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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놀이터 3형제는 이렇게 고양이 쉼터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휘루는 지자체 보호소에서 안락사하기 하루 전날 호두맘 님이 데리고 온 녀석으로 이 집에 왔을 때 칼리시라는 독감에 걸려 감자칩 님이 하루 세 번 죽밥과 생식을 먹이고 약과 소독으로 치료를 해 살아난 녀석입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감자칩 님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강아지처럼 울면서 뛰쳐나온다는군요.
에노는 일본으로 이민을 가게 된 어느 캣맘이 데리고 온 녀석입니다. 이곳에서 한번 입양을 했다가 잃어버렸다는 연락을 받고 울면서 다시 찾아온 녀석이라고 합니다. 깨물이는 가양동 아파트 단지에 박스채 버려진 녀석이었는데, 한 고등학생의 눈에 띄어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지금도 매일같이 감자칩 님네 쉼터를 찾아와 한두 시간씩 깨물이와 놀다가 갑니다. 그 은혜를 아는지 녀석은 오빠가 오는 소리만 나도 문앞까지 한달음에 뛰쳐나가 오빠를 마중한답니다. 각자 사연도 다르고 출신도 다르지만 4마리의 고양이는 한 방에서 너무나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4마리 모두 상처를 지녔지만,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녀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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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 내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것은 물론 내 머리를 손질해 주겠다고 미용실 언니 흉내를 내며 내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꼬마.

"내 남친은 고양이"

4마리의 고양이 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때마침 깨물이를 데리고 왔다는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깨물이가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는군요.
사실 감자칩 님이 길고양이 쉼터를 열어 임보를 시작한 것은 올 3월부터입니다. 본래 중학교 때부터 집에서 고양이를 키웠는데, 그것이 인연이 돼 마당에도 길고양이 밥을 놓아주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점보’라는 수컷 길고양이가 영역싸움을 하다 다쳐서 괴사한 상태로 내 앞에 와 쓰러지는 거예요. 고보협(고양이보호협회)의 도움을 받아 구조한 뒤 치료를 해서 다시 집으로 데려왔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임보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점보는 현재 감자칩 님의 둘도 없는 든든한 남친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남친은 웬만하면 사람으로 사귀는 게....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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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이민을 간 어느 캣맘이 맡기고 간 에노. 한번 파양된 아픈 기억이 있다.

이날 함께 한 천랑 님은 바로 점보를 구조할 때 알게 된 사이라고. 참고로 천랑 님은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길고양이 보고서>를 통해 고양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고, 지금은 길고양이 구조활동에다 TNR 감시까지... ‘행동하는 캣맘’이 다 되었습니다. “구름 님 때문에 이제 시집은 다 갔어요...” 천랑 님은 내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하더군요. 본의 아니게 제가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감자칩 님 또한 집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인간 남친 사귀기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것같아 걱정이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심지어는 2명의 캣맘과 2명의 캣대디가 둘러앉아 “차라리 고양이를 몰랐을 때가 더 행복했다.”고 신세한탄을 합니다. 고양이를 알게 된 이상 그 시절로 되돌아가기는 글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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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에서 안락사 하루 전날 구조해 온 휘루. 올 때 칼리시에 걸려 거의 죽다 살아난 녀석이다.

지구를 지키는 일도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캣맘으로 사는 게 왜 이리도 벅찬 일인지. 그래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요즘 들어 실감한다고... 해서 어떤 이들은 따뜻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건네기도 한다고... 캣맘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고... 누군가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때려치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알게 된 이상 그들은 누구 하나 때려치울 마음이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한국의 길고양이를 알게 된 이상 그 녀석들을 모른척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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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동 아파트 단지에 박스채 버려졌던 깨물이. 한 고등학생이 이곳에 데려왔고, 그 학생은 지금도 거의 매일같이 쉼터를 찾아와 깨물이와 놀아주곤 한다.

감자칩 님 부모님도 처음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조차 반대를 했다는군요.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에도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면서 아픈 고양이를 치료하고 사료값 보태고, 결국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자 부모님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 길고양이 쉼터로 사용하는 1층의 방 4개와 지하에 방 2개도 부모님이 내어준 것입니다. 전세나 월세를 놓아도 되는 공간을 ‘쉼터’로 선뜻 내주신 감자칩 부모님께 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기는군요. 감자칩 님은 길고양이 쉼터만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쉼터만 운영해도 벅찰텐데 직장은 직장대로 다니면서 길고양이 구조활동에다 협력병원(고보협 협력병원) 봉사활동도 다닙니다. 구조활동은 알겠는데, 동물병원 봉사활동이라 함은?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구조해온 길고양이가 다리 절단 수술을 받거나 무리한 수술을 받았을 때 완쾌될 때까지 먹을 것을 해다 주고, 눈을 맞추며 함께 시간도 보내는 겁니다. 영양상태가 안좋은 녀석들을 위해 가끔 닭을 삶아가기도 합니다. 이거 아무래도 울트라 슈퍼 캣맘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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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에 살다 온 안양이. 녀석을 보살피던 캣맘이 안전한 곳을 찾아 이곳으로 데려왔다.

14마리 고양이를 돌보며 사는 여자

한창 캣맘, 캣대디의 넋두리가 끝나고 놀이터 3형제가 거주하는 옆방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공주님’ 랑이는 침대 밑으로 몸을 숨깁니다. 시도는 문앞에서 대자로 누워 ‘너 누구냐?’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봅니다. 흰둥이는 처음 몇 번 경계심을 보이더니 도리어 관심을 끌기 위해 눈앞을 왔다갔다 알짱거립니다. 이 녀석들이 바로 EBS <인간과 고양이>에 나왔던 바로 그 녀석들입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3마리 다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하로 내려갑니다. 여기에는 안양이와 ‘이쁜이’가 살고 있습니다. 안양이는 안양천에 살던 고양이로, 캣맘이 2년이나 밥을 주며 보살펴왔는데, 주변 환경이 워낙 열악한데다 방범초소에서 툭하면 개를 끌고 나와 고양이를 쫓는 바람에 안전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쁜이 또한 안양이를 보살피던 캣맘이 집앞 공사장에서 데려왔다는군요. 원래 이 녀석은 아파트 단지에 버려졌는데, 인근 교회 공사장 인부들이 집기를 집어던지며 해코지를 해 발가락이 부러졌고, 지금도 그때의 상처로 발이 기형으로 자라 있는 아이입니다. 당시 캣맘에게 안긴 채 떨어지지 않아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이곳에 온 길고양이 사연을 하나하나 듣다보니 우리나라에 왜 이다지도 길고양이에 대한 학대가 심한지 분통이 터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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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사장 인부들이 집기를 집어던져 발가락이 부러졌던 이쁜이. 역시 고양이 쉼터에서 '이쁜짓'을 하며 살고 있다.

감자칩 님이 쉼터에 임보로 데리고 있는 녀석은 현재 모두 9마리입니다. 말 그대로 임보는 임시보호지만, 입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맡아서 키워야 하는 겁니다. 3층 집에는 오래 전부터 길러온 8살 큰나비와 7살 된 4마리의 새끼들까지 모두 14마리의 고양이가 매일같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물론 지금 나도 먹이를 나눠주는 길고양이가 20여 마리에 이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길에서 먹이를 주는 게 고작입니다. 집에서 보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웬만한 사람은 며칠만 해도 지치겠습니다. 아마 말로 내뱉진 않아도 어지간히 힘이 들 겁니다. 그런데도 자꾸 아니라고 하네요. “오히려 고양이가 힘의 원천인걸요. 힘들고 지쳐 있을 때에도 구조 요청이 오면 통덫을 들고 나가게 되더라구요.” 할말을 없게 만드는군요. 그날 저는 보았습니다. 고양이들이 당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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