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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4 더 춥다 3남매 고양이의 겨울 56

더 춥다 3남매 고양이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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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춥다 3남매 고양이의 겨울



 

 

영역동물인 고양이가 한 영역에 평생을 머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새끼를 낳은 어미는 대체로 가장 약한 새끼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지난 늦봄과 초여름 사이 여섯 마리 아기고양이를 낳았던
여울이는 두어 달 전 3남매만을 이곳에 두고 영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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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인 천막집 지붕에 올라가 있는 노을이와 여울이네 3남매. 

그러나 영역을 떠나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한 바가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거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약 일주일 전 나는 여울이와 아기고양이 6남매에게 그동안 급식을 해온
캣맘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영역을 옮긴 줄로만 알았던 여울이가
사실은 쥐약 때문에 죽은 것이라는 얘기였다.
세 마리의 새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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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언제나 함께 무리를 이루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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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여울이네 고양이들이 텃밭을 파헤친다고 쥐약을 놓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바로 그 아주머니가
결국엔 쥐약을 놓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제 이곳에는 개울냥이 중 유일하게 노을이만 남았고,
여울이네 새끼들 중에는 6남매 중 3남매만이 남았다.
삼색이 한 마리에 고등어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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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노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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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았다.
6남매 아기고양이를 위해 꽁치를 물어나르던 여울이.
임신을 하고도 아랫배 동생들과 주변의 고양이들에게 늘 구박을 받아왔던 여울이.
그래도 꿋꿋하게 새끼를 낳아서 건강하게 키워냈던 여울이.
늘 밝은 표정으로 묘생을 살던 여울이.
오래 전 봉달이가 살아 있을 때 자주 봉달이와 어울렸던 성격 좋은 고양이.
이제 여울이는 없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울아! 고양이별에서 지금쯤 너는 엄마인 까뮈도 만나고 친하게 지내던 봉달이도 만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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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위). 무럭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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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나은 고양이의 현실을 위해 캣대디도 하고, 고양이책도 내고,
블로그에 길고양이 보고서도 올리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참 절망스럽다.
사람들은 길고양이의 현실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런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어쨌든 살아남은 고양이는 살아남은 고양이의 슬픔으로 떠난 고양이의 묘생까지 짊어지고
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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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위). 무심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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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춥다 이번 겨울은 녀석들에게 엄마가 없는 데다
첫 번째 겨울이라서.
씩씩하게 명랑하게 무던하게 무심하게 무럭무럭 잘 살길 바라는 뜻에서
나는 살아남은 3남매에게 각각 무럭이, 무던이, 무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무럭이는 꽤 살가운 고양이로 얼굴에 흰털무늬가 좀더 많은 고등어이고,
무던이는 무럭이보다 입가에 짜장이 좀더 묻은 고등어이다.
등짝이 절반무늬가 있는 삼색이는 무심이다.
다행히 이들 3남매 곁에는 아직 노을이가 남아서 보디가드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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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풍경을 바라보는 무럭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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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이 녀석 어미를 닮아서 발랄하고 발라당도 잘한다. 아윌비백 발라당(위). 만세 발라당(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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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는 녀석들과 친족관계는 아니지만,
여울이의 단짝으로 이제껏 함께 살아온 고양이다.
어미가 떠나고 난 뒤, 3남매는 부쩍 노을이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다.
눈이 내린 들판으로 나설 때에도
근처에 있는 가만이네 영역으로 나들이를 갈 때도
녀석들은 언제나 노을이와 함께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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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 너머로 보이는 골목(위). 천막집 위에서의 그루밍(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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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무 3남매는 생각보다 의연하고, 생각보다 씩씩하다.
개구쟁이였던 여울이의 성격을 이어받아
이 녀석들 또한 장난꾸러기에 호기심이 충만하다.
노을이는 녀석들의 보디가드로써 여간 든든한 게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침입하는 고양이들에게도 엄격한 편이다.
이웃 영역의 승냥이나 가만이(약 달포 전 돌담집에서 정비소 근처로 영역을 옮겼다)의
영역 출입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하지만,
승냥이의 새끼들이나 가만이의 새끼인 카오스, 여울이의 아랫배 동생인 당돌이와 순둥이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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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에 앉아 있는 노을이와 무럭이, 무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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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 3남매는 이제껏 살아온 길가의 천막집보다
주황대문집 헛간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다.
그곳이 해가 더 잘 드는데다 바닥에 이부자리까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녀석들을 보살펴온 개울집 캣맘은
여울이 사고로 상심이 크고, 이웃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쥐약’ 협박으로 고충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급식만큼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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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와 함께 외출에 나선 3남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시골 사람들은 고양이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는다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자기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동물이면
새가 됐든 고양이가 됐든 죽여도 상관없고, 도리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고양이의 목숨 따위 쌀 한 톨보다도 못하다.
먹고 살게 없어서 굶어죽는 세상도 아닌데,
여전히 그들의 인정은 참 고약하기만 하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 트위터:: @dal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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