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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9 떠돌이 길고양이 가족 26

떠돌이 길고양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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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길고양이 가족

 

지난 1월 초 철거 고양이 식구의 겨울나기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4마리의 새끼를 낳아 빈집 지붕의 둥지에 살고 있던 까뮈네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엄동설한에 빈집이 철거되면서
졸지에 철거고양이가 되었고,
지속된 한파로 2마리의 새끼마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후 까뮈네 가족을 다시 만난 건 20여 일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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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흑, 엄마! 배고파요. 우린 왜 집도 없이 이케 맨날 떠돌아요?" "좀만 더 참아라. 저쪽 골목에 방을 구하고 있으니..."

사실 까뮈네 가족을 만난 뒤로 ‘만남의 장소’를 일 삼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까뮈네 가족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서 뒷산으로 올라가는 밭둔덕에서 까뮈네 가족을 만났다.
일가족은 밭둔덕 고사목 그루터기 아래 잠시 은신하고 있었다.
그동안 떠돌이 생활을 해온 탓에 녀석들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봉달이와 덩달이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발자국 소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까뮈네 턱시도 새끼 녀석이 고사목 그루터기에 올라앉아
으냐앙~ 으냐앙, 목청이 터질세라 울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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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이런 훌륭한 은신처를 구해 다행이야. 놀이터로는 정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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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리 나는 곳을 찾아 올라가보니
고사목 아래 숨어 있던 까뮈와 삼색이 새끼도 으야옹거리며 그루터기 위로 올라왔다.
20일 전에 만났을 때, 먹을 게 없어 총각무 하나를 나눠먹던 녀석들이
용케도 지금까지 먹이 도움 없이 살아남았다.
거듭된 폭설과 한파 속에서도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나는 단지 그게 고마웠다.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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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아저씨 밥 주는 아저씨 아니에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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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야 안봐도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동안 녀석들은 거처도 없이 떠돌며 동가식서가숙했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먹어야 했을 것이다.
밤중에는 몰래 개울냥이네 급식소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한뎃잠을 자면서도 그 모진 날들을 견뎠다는 거.
그게 더없이 갸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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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여기에 밥상을 차려 내놓지 못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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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에 올라앉은 일가족 중에서도 턱시도 새끼냥은
내내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먹이를 내놓으라고 당돌하게 큰소리를 쳤다.
그 모습은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다.
해서 나는 녀석을 그 자리에서 ‘당돌이’라고 불렀다.
반면 삼색이 새끼냥은 어미 뒤에 숨거나 그루터기 밑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바깥 동정을 살폈다.
눈망울이 순하게 생긴 아이.
그래서 ‘순둥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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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채우니 좀 살만하네... 엄마 오늘은 우리 여기서 자는 거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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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이는 당돌하게 내 발밑까지 근접해 냥냥거렸다.
순둥이는 근처에는 못오고 그루터기 위에서만 앙냥거렸다.
녀석들이 은신처로 삼은 그루터기야말로 야생 들고양이다운 임시 거처였다.
나는 까뮈네 일가족의 포한이라도 풀어줄 양으로
차에 두었던 비상사료 소용량 반포대를 아예 녀석들에게 다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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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튿날 같은 시각에 다시 그루터기를 찾았을 때,
나는 녀석들이 또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은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는데,
그루터기는 비를 가려줄 은신처가 되지 못했다.
그루터기 아래에는 전날 내가 내놓았던 사료가 한 움큼 정도만 남아서
빗물에 불어 있었다.
철거냥에서 떠돌이 유랑묘가 되어버린 일가족은 그렇게 또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었다.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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