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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3 배고파서 휴지 먹는 길고양이 42

배고파서 휴지 먹는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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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휴지 먹는 길고양이


얼마 전 겨울비가 흩뿌리던 날이었습니다.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새끼 노랑이 한 마리가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충격적이게도 그것은 휴지였습니다.

집냥이들이 휴지를 뜯어내는 장난을 치는 경우는 많아도
길고양이가 휴지를 장난이 아닌,
실제로 먹는 경우는 나도 처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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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없어 휴지를 먹었던 새끼 노랑이가 먹이를 얻어먹은 뒤 잠시 따뜻한 겨울 햇살을 쬐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장난을 치며 조금 뜯어내고 말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그 휴지 조각을 절반 이상이나 뜯어서
정말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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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노랑이 앞에 먹다 만 휴지 조각이 놓여 있다.

지난 1년 넘게 길고양이를 관찰해온 나로서도 참 당혹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녀석은 배가 너무 고팠던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누군가 버린 컵라면을 향해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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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노랑이가 휴지를 뜯어먹고 있다. 집냥이들처럼 그냥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배가 고파서 휴지를 뜯어먹고 있다. 녀석은 이 휴지를 거의 3분의 2나 뜯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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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에 찌꺼기가 조금 남았는지,
녀석은 아예 머리를 들이밀고 그 안에 남은 찌꺼기를 다 핥아먹습니다.
이 겨울에 길고양이는 추워서 겨울이 힘든 것도 있지만,
먹을 것이 없어 겨울을 더 힘들어 합니다.
어쩌다 버려진 음식조차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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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녀석은 길을 건너 누군가 버린 컵라면을 발견하고 한동안 그 안의 찌꺼기를 핥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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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나는 네티즌들이 보내준 파우치와 고양이캔을 챙겨들고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 보았습니다.
녀석이 이번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는 똑같이 생긴 노랑이 새끼들이 4마리나 있는 것이었어요.
삼색 아기냥도 한 마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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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에게 집에서 가져간 파우치를 건네주자 거의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무려 5마리의 아기냥이 한 식구였던 겁니다.
가져온 것들을 몽땅 내놓자 녀석들은 거의 걸신들린 것처럼
순식간에 파우치와 캔을 해치우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만족해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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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얻어먹고 힘이 난 녀석이 내 앞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러더니 처음 보는 내 근처로 다가와
뒹굴고 눕고 그루밍을 하면서 귀염작렬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겁니다.
일종의 고맙다는 표시랄까요.
길고양이를 관찰하면서 이렇게 쉽게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녀석들도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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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두달 반 정도의 새끼 노랑이. 이 녀석은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자주 5마리 노랑이 식구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먹이도 주고 놀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녀석들을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죠.
태어난 지 두달 반이 넘어 보이는 녀석들은 얼마 뒤면
분가를 하게 될 것이고,
어떤 녀석은 이 겨울을 온전하게 버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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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둥이는 언제나 옳다, 라는 말이 있지만, 언제나 옳은 녀석들에게도 어쩔 수 없이 겨울의 시련은 찾아오고, 언제나 옳지 않은 현실도 찾아온다.

오늘은 제법 따뜻한 겨울 햇살이 쏟아지지만,
내일은 살을 에는 강추위와 눈보라가 엄습할지도...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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