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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4 이랴이랴 어뎌어뎌, 소 몰고 오다 6

이랴이랴 어뎌어뎌, 소 몰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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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이랴 어뎌어뎌, 소 몰고 오다




푸짐하게 눈이 내린 논두렁길에 덕석을 씌운 암소가 앞장을 서고, 아직 코뚜레도 하지 않은 송아지가 줄레줄레 뒤따른다. 그 뒤에는 고삐를 쥔 농부가 이랴이랴, 어뎌어뎌, 하면서 소를 몰아오고 있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소몰이 풍경이다. 소는 집안에 두고 키웠지만, 날이 따뜻해지고 들판이 푸릇한 잡풀로 우거지면 되도록 풀밭에 내다 매었다. 겨우내 먹은 여물죽이 지겨웠던 소로서는 향긋한 풀먹이를 맘껏 먹을 수 있고, 농가에서는 따로 여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이래저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이렇게 매어둔 소는 해거름이 되면 다시 집으로 몰아와야 하는데, 옛날에는 이 이일이 주로 아이들 몫이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도 날이 어둑해지면 하나 둘 흩어져 소 내어 맨 풀밭으로 향했다. 그러나 종종 소가 날뛰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발정기에 눈 맞은 소들이 간혹 고삐를 쥔 아이의 조막손을 팽개치고 펄쩍펄쩍 도망을 쳤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온 동네 사람이 나서 소 잡는 날이 되곤 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웃미래에서 만난 풍경. 덕석을 해입힌 송아지와 어미소가 집으로 향하고 있다.

모내기철과 추수철이 되면 소는 덩달아 바빠졌다. 논갈이와 논삼기, 볏섬 나르기가 모두 소가 해야 할 몫이었다. 소가 힘을 쓰는 날이면 농부는 쇠죽에 겻가루와 쭉정이콩을 듬뿍 넣은 특별식을 해 주곤 하였다. 옥수숫대나 수숫대궁도 덤으로 먹였는데, 이는 소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나면 소 팔자도 한결 좋아졌는데, 농부도 농사 밑천인 소를 어여삐 여겨 추위가 심해지면 소의 등에 덕석을 덮어 춥지 않게 해 주었다.

지역에 따라 덥석, 덕새기라고도 불리는 이 덕석은 짚으로 엮은 겨울용 소옷이었는데, 겨울 나들이를 나서는 소의 모습은 이 덕석으로 인해 더 운치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식구처럼 여겼던 소도 언젠가는 팔아치워야 한다. 힘이 다해 농사를 질 수 없거나, 새끼를 낳아 두 마리를 다 먹일 수 없을 때는 둘 중 한 마리는 우시장에 내놓아야 했다. 우시장에 소 팔러 가는 날이면, 소도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여물도 먹지 않고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다 결국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움머 움머 우는 소를 외양간에서 억지로 끌어내는 농부의 마음도 편치 못해 우시장까지 가는 길이 그저 허허롭고 안쓰러워 가다 쉬고, 가다 쉬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과거 이름난 우시장에는 소만 전문으로 팔러 다니는 직업 소몰이꾼들도 많았는데, 노련한 소몰이꾼은 한번에 열 마리 정도의 소를 몰고도 수십 리를 걸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소를 팔고 온 농부의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와 쇠고기 한 근이 들려 있었지만, 마음에는 내내 봉투보다 더 두툼하고 쇠고기보다도 더 묵직한 허전함이 짓누르고 있었다.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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