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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오디 한 움큼 선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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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오디 한 움큼 선물하다



벌써 시골에는 오디가 끝물이다.
오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오디는 뽕나무 열매를 가리킨다.
이맘때 까맣게 익는 오디는 맛도 좋고 향도 좋아
오디가 잔뜩 떨어진 뽕나무 근처에만 가도 침이 고인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오디에 관한 추억도 많다.
어린시절에 나는 이맘때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상엿집(상여를 보관하는 곳)을 지나가는 뽕나무밭으로 오디를 따러 가곤 했다.
뽕나무밭으로 가는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빈 주전자가 들려 있었고,
바가지를 들고 온 녀석도 있었다.
입술과 손이 새카매질 때까지 오디를 따먹고,
더러 친구 녀석의 얼굴에 오디로 낙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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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달콤시큼, 향긋했던 오디의 맛!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오디밭에서 주전자까지 가득 채우고 나면 저마다 시커먼 입술과 손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꼭 친구 녀석 중 한두 명이 먼저 사라져 상엿집에 숨어 있곤 했다.
집으로 가자면 반드시 그곳을 지나쳐야 하는데,
숨어 있는 녀석이 귀신소리를 내는 바람에 우리는 혼비백산 달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까 오디는 나에게 어린시절의 추억 그 자체다.
하지만 요즘 시골에서도 누에를 치는 집이 사라져
뽕나무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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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오랜만에 시골 처가댁에 갔다가
산자락에 자리한 10여 그루의 뽕나무를 발견하고는
불현듯 옛날 생각에 뽕나무밭으로 들어갔다.
이미 오디는 끝물이어서 흐드러졌던 오디는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중 성한 열매들을 하나씩 따서 입에 넣는데,
햐아, 역시 오디 맛은 변한 게 없었다.
나 혼자서 먹기가 아까워 나는 오디를 한 움큼 따서는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아내에게 불쑥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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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오디다!"
아내는 눈이 똥그래져서 아이처럼 좋아하며 그것을 하나씩 아껴가며 먹었다.
어느 새 오디 한 주먹을 다 먹은 아내의 입술은 새카맣게 변해서
'마녀입술'이 다 되었지만,
오디를 먹고 신이 난 아내의 모습은 영락없이 순진한 아이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깟 오디 한 주먹이 뭐라고, 저리도 좋아할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다음에는 아내가 가장 좋아한다는 산딸기 한 그릇 따다가 줘야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뽕나무밭에서 부는 바람에도 오디 냄새가 나는 그런 날이었다.

* Slow Life::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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