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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6 하늘과 동업하는 일, 천일염전 9

하늘과 동업하는 일, 천일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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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동업하는 일, 천일염전


“다른 데는 물소금 찌껍으라도(간수를 빼내지 않은 소금) 막 실어나가는디, 여기 소금은 안 그라요. 깨끗허고, 꼬실꼬실허고, 물이 질질 흘리지 않고, 쓴물이 쏙 빠지면 나가니까 여 소금을 알아주지라. 여름 소금에 비해 가을 소금은 약간 더 쓴 편이요. 날이 좋으면 시월 말까장만 내게 허고, 11월부텀은 안허요. 이것도 이제 끝물이요. 올해는 소금값이 좀 괜찮은디 그동안은 소금값이 없었어라. 내가 20년 동안 이걸 힜어도 이게 참 어렵소.” 증도의 태평염전에서 20년 넘게 소금꾼으로 살아온 채판심 씨(65)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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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으로 물든 저녁 노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사옥도의 천일염전 풍경. 아직도 소금꾼이 남아서 저녁 노을 속에서 소금을 거두고 있다. 

증도는 소금 섬으로도 유명하다. 포구가 있는 버지 주변은 온통 소금밭이다. 유명한 태평염전이 바로 이 곳에 자리해 있다. 가을인데도 염전에는 소금을 거두는 작업이 한창이다. 태평염전은 앞사리 뒷사리를 메운 버지 방조제 안쪽에서부터 서쪽의 우전 해수욕장 인근까지, 남쪽으로 등선마을에서 북쪽으로는 곡도마을까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웃 섬인 임자도나 사옥도, 병풍도 등에도 크고 작은 염전이 흩어져 있으며, 좀더 떨어진 비금도에는 국내 최대의 소금밭이 펼쳐져 있어 증도와 인근의 섬들은 대부분 소금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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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태평염전의 소금꾼이 소금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비금도는 소금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천일염전도 바로 비금도에 있다. 가산 선착장에서 배를 내려 덕산리 쪽으로 오다 보면, 지당리, 구림리, 덕산리로 이어지는 길이 내내 천일염전이다. 길 양편으로 펼쳐진 염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어 여기서 저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하긴 4~5개 마을에 걸쳐 온통 염전지대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곳곳에 염생식물이 웃자란 폐염전도 상당수에 이른다. 워낙에 지금은 염전이 많이 생겨난 데다 중국산 소금값을 당해낼 수가 없어 많은 이들이 염전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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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결정지에서 햇볕에 반짝거리는 소금 결정체.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을 생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옛날에는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 얻어내는 화렴이 있었고, 비금도에도 옛 화렴터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근대적인 염전이 생겨난 것은 1946년 비금도 구림염전이 최초다. 구림염전을 처음으로 개척한 인물은 박삼만 씨라고 하는데, 그는 일제시대에 북한 땅인 평안도 용강군 주을염전에서 징용살이를 했는데, 해방이 되어 돌아온 뒤, 구림리 갯벌을 막아 염전으로 개척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리하여 1948년에는 400여 세대가 넘는 섬 사람들이 힘을 합쳐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오늘날의 드넓은 염전지대의 토대가 될 만한 염전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비금도에 들어선 염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소금 판매가 호황을 띠면서 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법은 점차 주변의 섬에서, 뭍으로 퍼져나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아주 옛날에는 전부 화렴식으로 가마솥에 물을 넣고 불로 땝답디다. 저 아래 구염전이라카는데 거기 화렴터가 있었소. 지끔은 거기도 논 되야 부렀소. 바닥에 흙판이나 옹편 깔고 이런 염전은 해방 되고 나서 생기부렀소. 내가 이 염전을 한 것도 35년은 넘을 것이요.” 비금도 지당리 신유마을에서 만난 강종원 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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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창고에 가득 쌓인 소금. 여기서 간수를 빼고 보관한다.

바닷물이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정은 바닷물을 끌어올려 해주(함수구, 물을 저장하는 곳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소금창고를 해주라 부르는 곳도 있다)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해주에 저장했던 물을 증발지로 옮기는 물대기 과정이다. 물대기가 끝나면 증발지에서 어느 정도 증발을 시킨 다음 결정지로 물을 옮겨댄다. 여기서는 소금 결정이 될 때까지 물을 가두어두는데, 볕과 바람이 좋은 여름 날씨에는 이틀 정도면 소금 결정이 된다고 한다. 이 소금 결정체가 하얗게 바닥에 내려쌓이면 이제 채렴 대패로 거두어 소금창고로 옮기면 된다. 보통 바닷물이 소금 알갱이가 되기 위해서는 섭씨 25도가 넘어야 하며, 30도 안팎으로 올라가는 여름 날씨가 제격이다. 그러나 햇빛만 좋아서는 좋은 소금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한다. 바람이 실랑실랑 불어줄수록 결정체의 크기도 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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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먹은 사람은 염전 일을 못히여. 또 젊은 사람들은 염전 일을 안히여." 씁쓸한 말이다.

“나이 먹은 사람은 염전 일을 못히여. 또 젊은 사람들은 염전 일을 안히여. 우리도 이것을 부업으로 하지, 본업으로는 못히여. 이제는 시세가 없어 논께 어쩔 수가 없어.” 비금도 덕산리에서 만난 권선배 씨의 말이다. 염전의 수가 늘어나고 중국산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염전업자가 많아짐에 따라 요즘은 당국에서 일정 정도의 보상을 해 주고 폐렴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비금도의 폐염전은 이런 당국의 정책에 따라 폐염시킨 사람이 대부분이다. 최초로 생긴 구림리 1호 염전에서 만난 명진남 씨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거 해서는 빚도 못갚고, 용돈도 못해요. 이거 시설비 하는데 들어가는 장판도 한 자락에 15만원 넘는디, 소금금은 싸고, 전체 중에 폐염전이 10프로가 훨씬 넘어요. 농사를 지어도 안되고 하니, 이 짓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갑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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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소금창고.

사실 천일염이란 말 그대로 친환경 소금이다. 수입 소금에 비해 염도가 낮아 짜고 쓴맛이 덜하며, 김장이나 장아찌 같은 절임과 장류 식품을 담기에도 적당하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 바닷물을 끌어올려 유해성분이 없는 갯벌 소금밭에서 깨끗한 바람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소금을 생산해내고, 여기에 정성까지 녹아 있으니 천일염전의 소금은 정성의 맛이 반이요, 자연의 맛이 반이다. 천일염은 하늘과 동업하는 일이다. 날이 궂어 비가 많이 오면 천일염은 공을 치고, 날이 맑아 하늘이 쨍하면 천일염은 그만큼 질 좋고 양 많은 소금이 나온다. 그러나 이제껏 소금꾼은 날이 좋지 않다고 하늘을 탓한 적이 없다. 하늘이 주는 만큼만 소금을 받아내는 것. 그것이 소금꾼의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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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에서는 천일염전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뒤늦게 천일염전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 염전지역인 신안군의 섬들을 비롯해 영광, 무안, 해남 등에 산재한 염전(1002곳)의 현장조사도 벌였다. 전라남도는 조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우선 국내 문화재 등록을 신청하고,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신청 서류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천일염전에 대한 세계생태보전지역 지정도 추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1~2년 전까지만 해도 염전 업주들에게 폐염전 신청을 받더니, 이제 와서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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