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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3 티베트 차마고도 마지막 마방 5

티베트 차마고도 마지막 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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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차마고도 마지막 마방




아침 일찍 소금계곡을 향해 내려간다. 강 건너 산등성이에 자리한 루띵마을은 아직도 안개에 휘감겨 있다. 까마득한 절벽과 벼랑 아래로 황토색 란창강은 란창란창 흘러간다. 건너편 벼랑을 보니 실오라기처럼 이어진 차마고도의 옛길이 아찔하게 걸려 있다. 도무지 사람이 다닐 것같지 않은, 설령 다닌다고 해도 한발만 삐끗하면 곧바로 란창강이 집어삼키는 위험천만한 길. 오금이 저리는 그 위태로운 길을 강 건너에서 구경하는데, 무언가 움직이는 물체가 보인다. 망원렌즈를 통해 바라보니, 소금계곡에서 소금을 싣고 오는 마방의 행렬이었다.




실낱같은 벼랑길로 3명의 마부가 10여 마리의 말을 앞세워 소금짐을 싣고 가는 풍경. 바로 차마고도의 오랜 상인조직인 마방(말이나 노새, 당나귀를 이용해 차와 소금 등을 거래하고 운반하던 상인조직)의 무리였다. 사실상 옌징에 남아 있는 마방의 무리는 차마고도 교역로를 오가는 마지막 마방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옌징을 마지막 근거지로 삼고 있는데, 당연히 옌징의 소금이 이들의 전통을 아직까지 유지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소금 짐을 싣고 아슬아슬하게 뻗친 오르막을 다 올라온 마방의 행렬은 루띵마을로 이어진 낭떠러지 벼랑길을 위태롭게 옮겨가고 있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벼랑길에서 마방들은 짐을 싣지 않은 말일지라도 절대로 올라타는 법이 없다. 고원과 협곡에 부는 잦은 회오리바람에 말이 몸을 가누지 못해 마부를 벼랑으로 떨어뜨리는 사건이 이 곳에서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저런 벼랑길에서 맞바람이라도 맞닥뜨리게 되면, 멀쩡하게 두발로 걸어가는 것조차 어렵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방의 행렬이 루띵마을까지 무사히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소금계곡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리막길 에움길을 돌아서자 말로만 듣던 소금계곡의 진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S자로 휘돌아나가는 란창강을 사이에 두고 다랑논처럼 양쪽 계곡에 빼곡히 들어선 것들은 모두 염전이다. 나도 천천히 말이 걷는 속도로 염전에 도착한다. 금방 마방이 소금을 싣고 떠난 뒤라 그런지, 염전에는 사내들이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염전지대에 고작해야 몇 명의 아낙들만 남아서 소금밭을 손질하고 있다.




란창강 협곡에 자리한 소금계곡의 소금밭은 마치 계단식으로 펼쳐진 다랑논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건 그냥 다랑논이 아니라 오랜 세월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눈물의 소금밭이다. 하나의 염전은 수많은 나무기둥과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다. 빼곡하게 세운 나무받침 위에 돌과 흙을 깔고, 그 위에 또 고운 진흙을 이겨 미장을 하고 두렁을 높여 염전을 만드는데, 이 염전들이 수백여 개 어울려 다랑이진 모습이 오늘날 볼 수 있는 소금 계곡의 진풍경이다. 더욱 값진 것은 이 곳의 오래된 소금 생산 방식이다. 그 옛날 해저에 잠겨 있던 소금지대는 란창강 협곡의 몇몇 곳에 샘솟는 온천수에 의해 지표로 솟아나는데, 이 물을 증발시키거나 여과시킨 것이 바로 이 곳의 소금이다.



사실상 오늘날 남아 있는 마지막 마방은 소금계곡의 소금을 주요 거래 품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란창강 하류에 댐 건설을 계획하고 있어, 소금계곡과 마방의 운명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차마고도 박물관’에 다름아닌 소금계곡과 마방이 사라지면 벼랑길을 따라 이어온 차마고도의 역사도 빛이 바랠 것이 뻔하다. 




지난해 여름 내가 차마고도를 여행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소금계곡과 마방을 만났던 시간들이다. 그것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특히 옌징을 벗어나 만난 미라 씨(53) 일행은 내게 차마고도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미라 씨가 이끄는 마방의 행렬은 규모가 아주 작아서 3명의 마부와 6마리의 말로 이루어졌다. 내가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때마침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말에서 소금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말에 싣고 온 갈색 마포자루를 내려놓고, 안장과 마구도 다 풀어 내린 뒤, 6마리의 말을 근처의 풀밭으로 내몰았다. 마방의 휴식은 차를 끓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명의 마부가 땔나무를 주워오면, 다른 마부는 돌을 가져다 임시 아궁이를 만들고 불을 때기 시작한다. 일행의 우두머리인 미라 씨는 찌그러지고 때가 시커멓게 낀 양재기에 물을 붓고는 칼로 덩어리차를 숭덩숭덩 잘라넣는다. 




“이렇게 다니면서 늘 차를 마시는가?” “그렇다. 차는 지친 몸을 풀어주고, 영혼을 맑게 한다.” “하루에 어느 정도의 차를 마시는가?” “열잔 이상은 보통으로 마신다.” “아까 말에서 내린 짐은 무엇인가?” “옌빠(소금)다.” “이걸 싣고 어디까지 가는가?” “망캄까지 간다. 이렇게 말을 끌고 가면 4일쯤 걸린다.” “이걸 가져가면 거기서 얼마나 받는가?” “100근(한근에 600그램)에 45~50위안쯤 받는다.” “그것밖엔 안되나. 그런데도 망캄까지 가야 하나?” “가야 한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



미라 씨 일행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보따리에서 내게 빠바(티벳 빵)와 양유(나물무침)를 건넸다. 하지만 모래와 먼지가 아작아작 씹혀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이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식량이다. 사실 마방은 대상을 떠날 때 길에서 먹고 길에서 잔다. 그러다 길에서 죽는 게 마방의 운명이다. 옛날 마방에 의해 운반된 윈난의 차가 유난히 맛있는 까닭이 말 등에 실려오는 동안 말땀 냄새가 배고, 그것이 고원의 바람에 섞여 차의 발효를 도와 그렇다는 얘기는 믿을만한 사실이다. 말이 차를 실어오는 동안 차는 발효가 더해지는 셈이다.



사실상 마지막 마방은 소금계곡을 근거지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티베트에서조차 미라 씨처럼 그의 아들이 마방의 대를 잇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거의 없다. 얼마 전 거얼무와 라싸를 오가던 차마북로의 마방은 완전히 해체되었고, 라싸와 시가체 등의 마방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말을 이끌고 가던 길은 포장이 되었고, 포장된 길로 트럭이 오가며 그들의 교역 품목을 실어날랐다. 소금 계곡이 있는 옌징도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마방도 오랜 역사를 마감해야 할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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